오늘도 나답게 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언제부턴가 비행기의 이륙 전과 착륙 후에 기도를 한다.
몇 번의 터뷸런스(난기류)를 겪은 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기에.
이 여행에 담긴 많은 의미를 되새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고개를 드는데 옆자리에 앉은 나이 지긋한 여성분께서
눈을 마주치신다. 말을 걸고 싶은 눈치셨는데 아니다 다를까 여행 가는 길이냐며 물으셨다.
"사실 방금 기도하는 모습을 훔쳐봤는데, 그 모습이 예뻐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뭔가 들킨 거 같아 굉장히 쑥스러웠는데 곧바로 또 다른 질문을 해오셨다.
여행은 얼마나 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혹시 나이가 어떻게 돼요? 우리 아들이 미국에 있는데 장가를 가야 할 나이라 또래만 보면 유심히 보게 돼요.
혹시 미국에 갈 일은 없어요? 소개 시켜주고 싶은데. 우리 아들. 호호호"
말로만 듣던 어머니의 친아들 맞선 제안
좋게 봐주셔서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내 나이가 벌써 이런 질문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음을 체감하며 씁쓸했다.
우아하고 고상해 보이셨던 그 여성분은 30여 년 전에 남편이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서 스페인에 갔다가
지금까지 그곳에 살고 있다고 하셨다.
여자 혼자 여행을 한 달도 넘게 간다고 하니 걱정 어린 표정으로 이런저런 스토리를 들려주셨다.
스페인 유명 관광지에는 소매치기가 많아서 늘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파리는 더 심해서 소매치기들이 떼로 몰려와서 대놓고 지갑이나 귀중품을 주라고 한다, 안 다치면 다행이다 등등.
각종 무시무시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시곤 잠에 드셨다. 문제는 그걸 다 들은 나는 잠을 잘 수 가 없었다.
해보지 않은 것과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히 있지만 안 열어도 될 상자를 열어버린 느낌이랄까.
괜찮...겠....지? 나 알거지 되는 거 아니겠지...
걱정이 또 걱정을 부르는 줄줄이 소시지 걱정 세트가 몰려왔지만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두렵다고 방구석에만 틀여 박혀 있을 순 없지 않는가.
여행 전에 즐겨 보았던 책 "Find your courage(두려워도 앞으로 한걸음)"을 떠올렸다.
책의 저자 마지 워렐은 겨우 스물 한살의 나이에 배낭 하나 메고 1년 동안 세계여행을 했다.
우리는 예전의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배짱 있게 더 큰 꿈을 꾸고, 원대하고 모험적인 목표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
-마지 워렐-
그래서 선택했다. 나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단한 것이다.
대학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여행 간다는 내 한마디에 첫 반응은
"역시 너 답다"였다.
나답다는 것. 나답게 산다는 것..
나도 나답기 위해 요 근래 무던히도 애를 썼다.
모든 불안요소를 뒤로 하고 세상의 말에도 귀를 막고
내 말에 귀기울이려고, 조금 덜 현실적이라고 해도 내 안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어쩌면 '나답다'라는 것은 평생을 '나'를 만들어가는 여정인 듯 싶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나다운 모습으로 규정하고,
두렵고 뒷걸음치고 싶지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끊임없이 옮겨 보는 것.
닿지 않는 곳에 닿으려 노력하는 것.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
오랜 생각 끝에 정의 내린 "나답다는 것"
꿈이라고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남의 눈치도 볼 필요 없다. 그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고, 영혼을 오롯이 바칠 수 있으며, 자신이 바라는 인물상에 어울리는 일을 하며 살아가면 된다.
사람은 성장하면서(내겐 여행을 준비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여행 중) 다양한 경험을 하며 그로 인해 시야가 넓어질수록 (여행 후) 꿈도 진화한다.
걱정이 용기로 바뀔 때 즈음,
마드리드 시내가 반짝반짝 불을 밝히며 내 눈 속에 들어온다.
낯선 곳에 와서 눈을 반짝이는 어린아이 같은 내 모습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