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아래까지 다 담아와.
여행. 오롯이 나 혼자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내 몫이었다.
그 결정의 과정에서 늘 혼자라고 느꼈다.
여행을 위한 무급휴가는 단순히 생각하면 급여 안 받고 정당히 누리는 시간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한자리가 비는 만큼 그 빈자리를 나머지 사람들이 채워야 하는 불편한 시간이다.
나는 지극히 이기적인 선택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미안하고 염치없지만 가야 했다.
미안함으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에 대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에.
가장 가깝게 지냈던 한 직장동료는 나란 사람을 나보다 잘 알았기에
고맙게도 내 결정에 기뻐해 주고 축하해주었다.
떠나기 하루 전이었다. 나는 내일 떠나지 않을 사람처럼 직장에서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점심시간 내내 딱풀에, 가위에, 잡지를 요리조리 오려 붙이며 난리통이었다.
그리고 1시간이나 지났을까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직접 만들어 코팅까지 한 카드에 나를 묘사해 그린 그림, 굳이 그 작은 공간에 빼곡히 채워간 글씨들.
그리고 공항에서 밥 한 그릇 하고 가라며 넣어준 "5만원"
마음에서 뭐가 울렁 했다. 그녀 역시 당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듯할 때였기에 쉽지 않은 지출이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더 미안하고 고마웠다.
또 한 분의 상사는 퇴근 전에 부르시더니 "거기는 식당에서도 물 사 먹어야 돼. 물값 해야지"하며 봉투를 손에 쥐어주셨다. 미안해하지 말라고 농담처럼 건네주신 마음이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또 다른 상사분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래저래 해서 다녀오게 됐습니다."
정말 어렵게 꺼낸 말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 역시 넌 현명하다. 젊을 때 다녀오는 여행은 그 어떤 걸로도 바꾸지 못하는 재산이래. 너 아직 만으로 20대잖아. 나는 못했거든. 너는 꼭 후회 없이 다 하고 돌아와. 정말 잘했다. 잘한 결정이야 "
눈 속에 머릿속에 마음속에 피부 아래까지 다 담아와. 오래도록 이야기할 수 있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생각지 못한 큰 응원과 지지에 감정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자동이체 통장을 정리하려고 간 은행에서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 가방 속에 몰래 넣어둔 또 다른 편지 봉투 하나.
"(중략)... 인생에 있어 오기 힘든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즐겁게 다녀와.
건강관리 잘하고, 뭐든 잘하는 너니까 걱정 안 하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잘 다녀와."
누군가는 하고 싶어도 당장 하지 못하기에 그러한 선택을 한 나의 용기에 응원을 보내줬고
또 누군가는 지나간 시절에 미처 하지 못했던 그것을 대신 실컷 하고 오라며 지지를 보내줬다.
안 그래도 여행 하루 전날이라 잠이 안 올 거 같은데
이 사람들 덕에 가슴이 벅차서 잠자기는 글렀다.
무엇보다 잘한 선택이라고 건네준 그 한마디.
감사하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