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후각을 잃었다

후각 상실에도 장단점이 존재했다

by 미세스쏭작가

코로나 후유증 또는 비염으로 인해 냄새를 못 맡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냄새를 못 맡으면 음식 맛도 잘 안 느껴진다는데 어때?", "엄청 답답하겠다. 많이 힘들지?" 안타까운 심정으로 질문하면 정작 후각을 잃은 상대방 모두가 그냥저냥 먹고 마시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했다. '냄새를 못 맡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다니. 세상 무던한 사람이구나.' 절대 그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다.


크게 몸살을 앓은 후 가족들과 일주일 동안 펜션으로 여행을 갔을 때 벌어진 일이다. "음식 냄새가 가득 차서 환기를 좀 시켜야겠어." 여동생이 거실 창을 활짝 열었다. '난 괜찮은데?' 길을 걷다가 음식물 쓰레기장을 지날 때였다. "냄새가 너무 고약해. 숨 쉬지 마." 앞서 걷던 가족들이 다급하게 알려 주었다. '난 괜찮은데?' 지나가는 아저씨가 옆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에도 어쩐지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여행 셋째 날 좋아하는 화장품을 바르다가 비로소 깨달았다. 킁킁. 어? 왜 내가 좋아하는 장미 향이 안 나지? 아무리 콧구멍을 벌름거려도 향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 내가 후각을 잃었구나!' 자려고 누웠는데 불안함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동생들이 감탄하며 먹었던 엄마의 찌개가 그저 그랬던 이유도, 악취가 나는데 무던했던 이유도, 화장품이 갑자기 무향으로 변질된 현상도 모두 다 내 후각 문제였다니! 기가 막혔다. 냄새가 안나는 걸 며칠씩이나 모르고 지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다.


앞으로도 영영 냄새를 못 맡게 된다면? 여태 한 번도 걸린 적 없었는데 기어코 코로나에 감염된 걸까? 뇌에 이상이 생겼나? 별별 생각을 다 하며 뒤척이다가 겨우들었다.


그런데 후각을 잃은 사람의 일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냄새를 못 맡음으로써 겪는 불편보다 얻는 이점이 더 많았다. 내가 사는 세상은 향기보다는 원치 않는 냄새로 가득 차 있기에.

매연, 공해, 땀냄새, 온갖 자극적인 냄새들로부터 해방되자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확연히 줄었다. 무엇보다도 길거리를 장악하는 타인의 담배 연기에 숨이 막히지 않아서 좋았다. 나를 둘러싼 환경의 실태가 이러한지라 "냄새를 못 맡으니까 너무 좋아. 앞으로도 계속 이런 상태로 살고 싶어."라고 말했을 정도다.


후각을 잃으니 자연히 무던한 사람이 되었다. 예민한 감각을 타고난 나는 언제 어디에 놓여도 남들보다 빨리 주변 현상을 알아채고 크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너 엄청 예민하구나." 나를 예민하단 네 글자로 평가하고 편협한 시선에 가두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할 때가 더러 있었는데 감각이 둔해지자 이런 소리를 듣는 경우도 사라졌다. 예민한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성과 감각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었다. 감각의 피로가 덜한 곳으로 나를 인도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계기였다.


냄새를 못 맡는 증상은 한 달이 넘게 지속됐다. 맛있는 게 많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잘 먹는 부류에 속했다. 그러나 맛을 덜 느끼자 군것질이 줄었고 음식은 적당히 먹게 되었다. 좋아하는 커피도 약처럼 쓴 맛만 나서 멀리하게 됐다. 먹순이의 식탐에서 탈출하자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큰 노력 없이도 불편한 자극과 식탐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뜻밖의 이득. 오히려 좋다. 냄새를 못 맡는 일상이 이토록 평화롭고 불편하지 않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보다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될 때도 있지만 먹기 힘들면 안 먹으면 그만이었다.


내가 냄새를 못 맡는 사람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던 것처럼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후각은 회복되었다. 일단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다. 커피의 향기가 자꾸만 그리워서 한 잔으론 성에 차지도 않는다. 세상이 온통 맛있는 것 천지다. 건강과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성해진 식욕과 싸우는 실정이다. 원치 않는 냄새들이 다시금 내 코를 공격하는 것 또한 고단하다.


그러나 글은 역시나 냄새를 잘 맡아야 더 깊고 풍부하게 쓸 수 있다고 본다. 창조주가 피워낸 꽃 향기, 여름 끝자락의 시원한 공기, 일용한 양식의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마음껏 들이켜며 이 또한 감사하다고 되뇐다. 후각을 상실했을 때 '냄새를 못 맡는 나를 관찰하고 글로 써야겠다.' 무릎을 탁 쳤다.

하나 더욱 못 말리는 글쟁이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냄새를 맡으며 다양한 감각을 깨우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냄새와 향기가 없던 세상에서 다시 남들보다 냄새와 향기가 풍부한 나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내 글에도 나만의 향기가 묻어나면 좋겠다. 익숙하면서도 신선하고 자꾸만 당기는 그런 내음이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사람들이 마음으로 킁킁대며 읽는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며, 돌아온 사냥개의 후각을 자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