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일 등에 당첨되면 뭘 하고 싶어?" 남편이 내게 자주 던지는 단골 질문이다. "여보랑 여행 다니면서 글 쓸래." 내 대답은 언제나 소박하고 단조롭다. 남편은 해외여행과 야구단 창설을 상상하며 천진하게 웃었다. 글을 말하는 나와 야구를 말하는 그의 눈빛은 같은 의미로 반짝였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면 누구나 선물 상자를 여는 어린아이의 얼굴이 된다.
부자가 되면 더욱 마음 편하게, 평생 글쓰기에 집중하며 살고 싶다. 글쓰기에 이토록 진심인 내가 이젠 익숙하다는 남편. 나는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는 글쓰기가 왜 이리도 좋을까. 이유야 많다. 한글이 좋고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좋고 정제된 감정이 글로 태어나는 과정 역시 소중하다. 예전에는 글을 통해 타인에게 위로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데 그릇에 차고 넘치는 소망을 품었더니 글쓰기가 나를 자꾸만 초라하게 만들었다. 일단 진심을 담아 쓰는 데 의의를 두자고 마음먹은 후론 글쓰기가 즐거운 취미이자 특기가 되었다. 내가 내 글을 읽는 재미가 불어오는 요즘이다.
작가가 되고 싶은 나를 책임지기 위해 가장 싫어하는 숫자를 다루고 글쓰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공학 기관에서 일했던 적도 있다. 일부러 단기 계약직 작장만 찾아서 취업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든 출퇴근 시간과 근무시간을 합하면 여덟 시간에서 열 시간 이상을 직장에 반납해야 했으므로 글쓰기에 보탤 여력이 없었다.
"책을 읽고 오타를 찾아주면 돈 주는 아르바이트 없나?", "독서한 만큼 월급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워낙에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업무 시간에 엉뚱한 상상도 자주 했다. 적은 돈을 버는 월급쟁이에 불과했지만 글을 써서 매달 돈을 벌 수 있다면 기급여의 반토막만큼만 받는 대도 남부럽지 않게 행복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꿈도 과유불급이다. 간절할수록 완벽주의 성향은 나를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독특한 커리어를 쌓으면, 인플루언서가 되면, 공신력 있는 문예 기관에 등단하면, 그땐 책을 내도 좋겠지라는 생각이 언제나 작가의 꿈을 가로막았다. 출근하는 길엔 버스 창가의 풍경도 보이지 않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절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고 월급날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난 하고 싶은 게 따로 있는데.' 바람과 달리 용기는 지지리도 없고 핑계만 많은 나란 사람. 작가의 자아를 오랫동안 서재에 묻어 두고 직장에서 심신의 피로를 잔뜩 안은 채 집에 돌아오면 덩그러니 외로웠다. 더없이 따뜻하고 포용력이 넓은 남편이 있고, 왁자지껄 친구 같은 가족들이 가까이에 있어도 작가의 꿈이 자주 나를 초라하고 외롭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그저 묵묵히 쓰면 되는 것을.
브런치 플랫폼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생각보다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변덕이 심하고 싫증을 잘 내는 나에게 남편은 "계속 꾸준히 써 봐." 알람시계처럼 자주 격려하고 충고한다. "알았어. 알았다고." 새침하게 답하면서도 남편의 관심과 응원이 고맙다.
가난하면 간절한 꿈을 품고 글을 쓸 수 있어서 좋고, 부자가 되면 여유로운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어 좋겠지. 물론 후자가 욕심나지만 형편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오래 글을 쓰는 사람이 되련다. 꿈이 동반하는 외로움의 부피는 점차 줄어 간다. 글을 쓰기 위해 치열하게 생각하고 바쁘게 손을 움직이다 보면 쓸쓸할 틈이 없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욕심을 비우고 평온한 마음으로 글을 쓰니 꿈이 대수냐는 생각도든다. 지금 내가 행복하면, 그런 하루가 반복된다면 그게 성공한 삶인 게지.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가는 안락한 집에서 글을 쓰며 얼음을 동동 띄운 녹차 한 잔을 마신다. 오늘도 착실히 글을 쓰자는 목표를 달성했다. 마음은 이미 부자가 되어 모히또에서 몰디브를 한 잔 하는 기분이다.
-사이좋은 부부의 치명적인 대화-
나: 여보. 드디어 브런치가 수익화된대.
남편: 그러게. 진짜 잘 됐네.
며칠 후.
나: 크리에이터에 선정되고 글이 뽑혀야지 후원받을 수 있는 거였어?
남편: 내가 말했잖아. 몰랐어?
나: 응. 몰랐어. 와. 근데 내가 지금 크리에이터가 안 된 거야?
남편: 그냥 꾸준히 써. 어.차.피.크리에이터 돼 봤자 후원을 받아야 하는 거라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
나: !!!???
(어차피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거나 남편 덕분에 상황파악 쁘라쓰 주제파악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