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또 훌쩍 떠날 수 있을까?

여행자의 눈으로 즐긴 5박 6일

by 미세스쏭작가

이번 여름에도 출발 이틀 전에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서둘러 짐을 쌌다. 5박 6일 동안 교토와 오사카를 여행하기로 했는데 목적지 외에 모든 것이 무계획이었다. 출발 하루 전날 아슬아슬하게 유심 택배가 도착했다. 이렇게 대책 없이 떠나는 여행도 건강하고 젊을 때나 가능하겠구나 싶었다. 환전을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부랴부랴 은행으로 갔더니 온통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기분까지 뽀송뽀송해졌다. 내 차례가 되자 젊은 여성 직원이 밝은 목소리로 “언제 출발하시나요? 며칠이나 여행하세요?” 하고 물었다. 내 짧은 대답에도 연신 "좋으시겠어요, 부러워요."를 반복하는 그녀. 덕분에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건네고 은행을 나오는데 역시 타인의 삶은 실제보다도 반짝이게 보이는 것 같다는 심오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공항 근처에 무료 주차장을 야심 차게 알아 놓은 남편 덕분에 더욱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인터넷 정보와 달리 이른 새벽부터 단 한 칸의 주차 공간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여행의 참 묘미. 개미소굴 같은 주차장을 빠져나와 겨우 공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일본의 도시는 지금부터 마음껏 설레도 좋다고 우리에게 속삭였다. 전과 비하면 돈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넘고 우린 조금 더 성장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오 년 전에 남편과 일본을 여행할 때도 비가 왔는데 이번에도 이따금 비가 내렸다. 우리는 그때와 똑같이 우산을 두 개 샀고 비 내리는 거리를 한가로이 걸었다.

아는 이 한 명 없는 낯선 땅을 여행할 때면 더욱 살뜰히 서로를 의지하고 챙기게 된다. “뭐 먹고 싶어?”, “이거 사줄까?”, “몸 상태 괜찮아?”, “어디 가고 싶어?” 세심한 배려와 질문들 덕분에 여행의 행복은 배가 된다. 나는 남편에게, 남편은 나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즐겁게 노력하면서 5박 6일의 시간을 보냈다. 특별할 것 없이 이렇다 할 계획도 없이 현지인 흉내를 내며 유유자적는 하루하루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식도락으로 단단히 벼른 일본 여행이었는데 어째 먹는 음식마다 입에 잘 맞지 않았다. 음식의 짠 맛이나 고기 냄새 때문에 조금 고생했더니 남편이 내게 음을 많이 썼다. 우리는 아무리 맛집일지언정 줄 서는 걸 지양하는 편이라 유명한 메뉴나 디저트도 거의 건너뛰었다. 대신 끌리는 대로 먹고 마시면서 우리만의 맛집을 발굴하고 시간도 절약했다.

예약한 호텔마다 음료를 제조해 주거나 커피를 제공했고 심지어 야식으로 소바를 주는 서비스까지 있었다. 저녁 9시가 되면 호텔 식당으로 가서 따뜻한 소바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밝고 친절한 직원들의 미소 덕분에 하루의 피로가 모두 풀리는 것은 물론 타지에 와있음에도 안정감이 들었다. 조용한 동네를 배경 삼아 한적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소바를 먹는 기쁨이란! 열심히 밖을 구경하면서 소바를 먹고 있는데 남편이 ‘이거 마시고 싶어 했잖아.’ 하며 시원한 녹차라테를 한 잔 타다 줬다. 정말 맛이 없으면서도 맛있었다. 원샷을 하고 나니 여행 내내 더 이상 녹차라테가 당기지 않았다. 흠.


교토와 오사카에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래도 여행 중에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한 존재는 맛있는 음식보다 시설 좋은 호텔 방보다 바로 사람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 내가 편하게 들어오도록 문을 잡아주는 사람, 예쁜 미소를 보이는 귀여운 아이, 포근한 사람들 덕분에 좋은 에너지를 많이 얻었다. 낯선 이들의 친절 덕분에 긴장을 풀고 한결 부드러운 마음으로 일본을 여행했다. 살아보면 막상 힘든 점도 많겠지만 여행자가 만나는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매너도 좋았다.

무거운 짐을 들고 전철을 탔는데 인파로 인해 남편과 멀리 떨어진 좌석에 앉았다. 점차 더 많은 사람이 타자 그의 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역에서 내리면 되느냐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남편이 폰을 확인하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 “일본은 대중교통 이용할 때 전화하면 안 돼. 메시지 보낼게.” 급히 속삭이며 통화를 종료하는 남편. 마지막 역에서 내리면 된다는 그의 메시지를 받고 '일본 대중교통 예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일본에선 버스나 지하철 이용 시 잠깐의 통화도 결례가 되니 주의하라는 당부가 많았다. 어떤 나라를 여행하든지 가장 먼저 주의할 행동이나 피해가 되는 규범을 숙지하는 남편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 내 남편이지만 이런 면이 참 직하고 지단 말이지.


남편의 가이드 덕분에 웅장한 건물도 많이 보았지만 흐르는 강이라든지 푸른 하늘, 대나무 숲이 우거진 아리시야마 등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가 가장 좋았다. 여름에만 들을 수 있는 우렁찬 매미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있으니 행복하단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만나는 일본 가옥과 바다는 여행의 볼거리를 풍성하게 더해 주었다.

도락에 있어서 시 나는 밥보단 디저트에 마음을 뺏겼다. 혼자서 생과일 모찌를 사는 데 성공했을 땐 생일 선물을 받은 양 기분이 좋다. 모찌를 한입 베어 물자 달콤하고 향긋한 딸기 과즙이 톡 터져 나왔다. 흰 앙금과 딸기가 무척 잘 어울려서 생과일 모찌가 가장 맛있는 디저트였다. 화이트 초콜릿이 들어 있는 쿠키나 샌드는 보이는 대로 집어 들었다. 자정이 다 될 때까지 군것질을 즐기면서 늘어날 몸무게가 걱정됐지만 일본에는 신기하고 맛있는 과자가 너무나 많았다. 멈출 수 없는 디저트 열정으로 마트, 편의점, 돈키호테 등을 배회하면서 과자를 쇼핑할 때가 가장 신나고 즐거웠다. 먹어보고 맛있는 건 더 사기로 계획했는데 출국 전날 저녁에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쇼핑센터를 못 찾았다. 뺑뺑이 훈련을 시키는 GPS로 인해 아쉬움로 물들어 버린 다섯째 날 저녁이었다.


너무 여유를 부렸는지 5박 6일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버렸다. "우리가 뭘 했다고 시간이 이렇게 훌쩍 가버렸지. 내 여행 돌려줘." 아쉬워하는 내게 몇 번이고 즐거웠냐, 일본 여행 또 오고 싶냐 묻는 남편. 여행 스타일도 잘 맞고 누구보다도 나를 잘 챙겨주는 남편이기에 그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언제든 어디든 다시 떠나고 싶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창가에 흩날리는 빗방울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불쑥 뒷사람의 지저분한 맨발이 내 의자를 침범했다. "이건 진짜 경우가 아니잖아요!?"라고 마음속으로만 몇 번 소리치다가 피로에 못 이겨 잠들었다. 불쾌했지만 어찌어찌 족발의 몹쓸 존재를 견디며 귀국했다. 역시 여행이 끝남과 동시에 맞는 현실은 타격감이 컸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힐끗힐끗 부러워하면서 공항을 빠져나와 휴게소에 들렀다. 담백한 한우 설렁탕 한 사발을 들이켜다시피 맛있 먹었다. 한국 사람에겐 역시 우리 음식이 최고구나 하는 K푸드 자부심이 솟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글을 써야지.' 오로지 이 생각으로 여행의 아쉬움을 달랬다. 우리의 5박 6일 여행 일정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져 버렸다. 이번 여행도 퍽이나 행복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