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면 글이 잘 써질까?

이제는 답할 수 있다

by 미세스쏭작가

이 년 전에 남편에게 가볍기로 유명한 그램 노트북을 선물 받았다. 작가가 꿈인 내겐 의미 깊은 선물이었다. “여보. 정말 고마워. 나 이 노트북 가지고 다니면서 글 열심히 쓸게!” 내 꿈을 응원해 주는 남편의 마음이 고마워서, 새하얀 노트북이 예뻐서, 창작의 세계로 연결해 줄 도구가 생겨 무척 설렜다. 휴대가 편한 노트북도 생겼겠다 언제 어디서든 꾸준히 글을 쓸 나를 상상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록 작가의 꿈도 노트북도 방치되었다. ‘이게 아닌데.’ 쓰임을 잃은 노트북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꺾이지 않는 게으름과 쉽사리 꺾이는 체력 덕분에 퇴근 후 집에 오면 글쓰기가 영 쉽지 않았다. 그렇게 아까운 시간이 흐르고 내가 글을 쓰기 위해 본격적으로 노트북을 찾기 시작한 신형이었던 전자기기가 구형이 돼 버린 퇴사 후였다.


퇴사를 고민하던 당시 에세이 장르에 흠뻑 빠져 글쓰기와 퇴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아이러니하게 회사 도서관에서 퇴사를 소재로 다룬 책을 빌려 읽으면서 탈직장인의 삶을 기획했다.

깊은 고민 끝에 드디어 퇴사했으나 막상 글을 쓰려니 막만 가득했다. 블로그에 글을 연재했으나 반응이 좋은 글도 금세 온라인의 망망대해에 묻히는 느낌이 들었다. 또다시 읽기만 하고 글은 거의 쓰지 않는 나로 돌아갔다.

다만,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며 나와 소통하는 시간이 몇 배로 늘어났고 그에 따라 쓰고픈 글도 더욱 풍성해졌다. 열망을 실천하기 위해 브런치에 도전했고 드디어 글을 쓸 명목과 매체를 확보했다. 나에겐 그 무엇보다도 글을 공개할 좋은 매체와 내 글을 읽어 줄 독자 분들이 필요했다.

홀로 있는 공간과 시간이 보장된 환경은 쓰기에 주력하는 나를 만들었다. 초경량 노트북마저 무겁다는 이유로 소지를 꺼렸던 내가 가까운 곳에 갈 때도 필수로 노트북과 읽을 책을 챙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공개함으로써 깊이 있는 글 수양도 시작했다. 조만간 수험을 치를 사람처럼 틈틈이 도서를 읽고 메모하고 글을 외울 정도로 열심히 다듬는다. 내가 쓴 글을 읽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글은 쓰면서 배운다'라는 말을 체감다. 쓰는 만큼 실력이 향상되고 있지만 여전히 외롭고 허전한 구석이 있는 무명 작자의 세계. 흔들리지 않고 루틴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마음을 다잡는다. 외줄 타는 심정으로 내놓은 글로 나를 고무할 뿐이다.


퇴사한다고 글이 잘 써질까?


가장 걱정하고 의심스러웠던 난제였다. 우려와 달리 체력은 필력과 협력하는 관계인지라 몸 상태가 좋으니 글쓰기에도 근력이 붙었다. 시간과 마음과 체력까지 여유가 생기자 쓰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상황에 맞게 돈은 덜 쓰고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 됐달까. 수입이 끊기고 나의 쓸모를 확인하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를 통해 많은 성장과 성취감을 얻었다.

퇴사 후 남의 에세이를 읽기만 하던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는 에세이를 쓰고 있다. 전에 없던 변화와 루틴을 만들었으니 이제는 답할 수 있다. 퇴사하니 글이 어느 때보다도 잘 써진고 말이다. 직장과 집필 활동을 겸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몹시 부끄럽지만 이 또한 나 것을 인정할 수밖에.

미세스쏭작가의 꿈을 응원하며 남편이 사 준 노트북. 여기에도 가오나시가 있다!(가오나시 출현 히트작:구 남친이자 현 남편이 사준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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