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과 맞지 않는 사람의 처방전

보약과도 같은 퇴사

by 미세스쏭작가

직장인이었을 때 나의 요일은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월, 화, 수, 목, 금, 퇼! 평일은 정확히 오 일인데 주말은 너무나 짧고 빠르게 사라져 버리는 허무함.

그런데 백수가 되고 나의 일주일은 완전히 달라졌다.

“토, 토, 토, 토, 토, 토, 일.” 토요일이 무려 여섯 날이요, 주일 하루까지 겸해진 최고의 주칠일 선물 세트를 누리며 살고 있다.


마음이 편안하니 주변의 모든 것이 재미있게 느껴지고 예뻐 보인다. 강아지와 집 앞 공원을 산책하면서 들리는 새소리에 ‘제주도가 따로 없네!’ 혼자 감격에 젖는가 하면, 부드러운 봄바람이 좋아서 강아지와 함께 벤치에 앉아 “진짜 행복하다. 자두도 좋지?” 묵언의 동의를 구하며 실실 웃기도 한다. 요 근래 내가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도 더불어 마음이 좋다고 했다.


공원 산책, 도서관에서 책 읽기, 카페에서 글 쓰기, 조카들 만나러 가기, 하루 종일 집에 있기, 가끔 지인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시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데리고 즐거운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최소한의 소비를 하며 별 것 아닌 것에 이토록 감사와 기쁨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흔치는 않으리라. 나는 혼자 있을 때도 즐겁고 바쁜 사람이다. 그러니 직장을 다니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살 맛이 난다.


대개 나란 사람은 직장에서는 책임감 있고 빠르게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통했다. 일터에서의 쓰임과 월급 또한 소중하고 감사했지만 내 꿈은 언제나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체력이 약한 나로서는 직장에서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내고 귀가하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몸이 피곤하니 정신이 몽롱하여 자주 멍 때리게 되고 이렇게 쳇바퀴 도는 삶이 슬펐다. 내가 받는 소정의 월급에는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재간이 없었다.


사회 초년생 때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 추가 수당도 없이 연장 근무를 하는 날들이 많았다. ‘이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심중에 가득했다. 직장 문을 박차고 나가 잠을 실컷 자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놀러 다니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싶은 나의 열망은 일종의 DNA와도 같았다.


그토록 바라던 퇴사인이 되고 내가 누리는 기쁨과 삶의 질의 상승은 월급의 다섯 배는 족히 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습관처럼 ‘일을 해야 돼. 벌 수 있을 때 돈을 벌어야 해.’라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쓰임 받지 못하는 백수구나.’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남편에게도 재정적으로 든든한 아내이고 싶었다.


부랴부랴 행정일을 했던 경력을 살려 세 군데의 일터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곳 모두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이메일과 전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어쩌면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겠구나.’ 20%의 안도와 80%의 우울감이 찾아왔다.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더 쉬라니까. 대체 왜 일을 하겠다는 거야? 돈 걱정은 하지 마.”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론적으로 가장 먼저 면접을 본 곳에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가지 않기로 했다. 나머지 두 곳의 직장에도 사정이 생겨 면접에 참석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했다. 몇 년 동안 난임 부부였지만 혹시라도 아기가 생기게 되면 직장에 누를 끼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섰다. 회사에 소속될 마음가짐도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일을 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고 가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 퇴사인으로 살기로 했다. (“휴. 하마터면 취직할 뻔했다.”)


힘든 결정 끝에 다시 “토, 토, 토, 토, 토, 토, 일요일”이 시작되었다.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암울하고 힘이 없었는데 충만한 기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리고 퇴사 후 받게 된 최고의 선물! 2023년 4월 6일.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꾸준히 글을 쓰고 공유하는 것이 목표이다. 무엇보다도 쓰고 싶은 천성 때문에 소재가 넘쳐나서 잠도 안 온다. 길을 걷다가도, 잠을 자려다가도 다시 노트를 꺼내드는 열정 때문에 백수가 과로사할 지경! 분주한 프리랜서가 되기 위해 나는 쓰고 또 쓸 것이다. 한 번쯤은 내 기쁨을 따라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토록 바라던 퇴사인이 된 지금 부러울 것이 없다. "일단 즐겨."


퇴사인의 평일 오후 만남
퇴사 후 평일 오후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