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가장 좋아하는 요일은?

정답: 월화수목금토일

by 미세스쏭작가

월요병이 돋는 주일 저녁. 내일 출근해야 한다며 타격감을 느끼고 있는 남편과 달리 하루를 마무리하는 백수의 마음은 가벼웠다. 남편에게 미안할 정도로 월요일이 기대되기까지 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드레스룸을 정리하고 독서를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내일은 월요일이니까 평일의 한적함을 만끽하러 카페에 가볼까? 아니야. 도서 반납일이니까 카페 말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자.’ 한가로운 평일을 기대하며 혼자만의 부푼 계획을 짰다.

퇴사의 꿈을 안고 회사에 다닐 때면 막연하게 이런 상상을 했다. 백수가 돼도 과연 월요일이 싫을까. 백수도 좋아하는 요일이 따로 있을까.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백수가 되어보니 월요일이 싫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백수가 가장 사랑하는 요일은 역시나 금요일이과 토요일이다. 남편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은 물론 마음까지 여유로운 때이기에 더불어 사랑하게 되는 요일이다. 금요일 저녁이면 침대에 누워 각자 핸드폰을 가지고 놀면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 “내일 날씨 좋으면 오랫동안 산책하면서 그때 카이막 먹었던 카페에 갈래?” “좋아 좋아.” 토요일의 기대를 누르며 뒤척이다 잠드는 금요일 밤. 좋다. 모든 것이 좋은 요즘이다.


회사에 가지 않으니 딱히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고 내 시간이 많아져서 하루하루가 만족스럽다. 집안일, 독서, 서평 쓰기, 글쓰기 네 가지가 그나마 요즘 내게 중압감을 주는 미션이지만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일이므로 즐기면서 하고 있다.

평일의 시작인 월요일 오전. 한가롭게 일어나 중간중간 집안일을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일곱 권이나 빌려왔는데 아직 네 권을 읽지 못한 상태였다. 하루 종일 시간을 투자하여 두 권을 마저 읽었고 두 권은 각각 절반씩만 읽은 상태라 연장 신청을 했다. 독서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에 저녁이 돼서야 책을 반납하고자 외출했다. 카페고 뭐고 빌려온 책을 읽느라 뜻밖의 무지출 데이를 보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깨끗한 집과 완독 한 책들과 지출이 없는 계좌 내역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백수 주제에 자꾸 월요일마저 행복하다 콧노래를 부르는 본새가 영 밉상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얄미워도 어쩔 수 없다. 이 행복을 누리기 위해 작고 소중한 월급을 포기하고 백수가 됐으니 누릴 수 있을 때 팍팍 누려야지. 백수가 됐는데도 ‘평일은 싫어’를 외치면서 게으름에 압도된 나를 맞딱들인다면 너무 한심해서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나름 부지런히 지내고 있으므로 내게 주어진 시간들이 기쁨으로 채워지는 것이라고 멋대로 결론지어 본다.


직장인이었을 때 가장 많이 했던 말들은 아마도 “뭘 했다고 주말이 다 갔냐.” “오늘이 화요일밖에 안 된 게 실화냐.”였을 것이다. 싫은 요일이 반복되는 것이 괴로워서 김신지 작가의 ‘평일도 인생이니까 ‘라는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던 적이 있다. 책 제목처럼 평일도 인생의 일부이므로 평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달리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에세이였다. 특히 격려와 위로로 다가왔던 글귀를 누고 싶다.

-"잎을 다 떨군 나무에게 겨울은 버리는 시간일까? 벚나무는 꽃이 지고 난 뒤 사람들이 무슨 나무인지도 몰라주는 나머지 세 계절을 버리며 살까? 그렇지 않다. 나무는 나무의 시간을 살뿐이다. 벚나무는 한 철만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인생은 수많은 월화수목금토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백수의 인생도 직장인의 인생도 수많은 월화수목금토일로 이루어져 있다. 일 년이 365일이라는 사실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그럼에도 직장인의 평일은 너무나 무겁고 무료하고 피로하다. 지금이 몹시 만족스럽고 행복한 나머지 다시 직장인으로서의 나날들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직장인이 되더라도 평일을 의미 있게 살고 싶다는 소망은 간절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힘든 점들과 인내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꿈과 전혀 다른 일을 했으니 늘 버팀을 넘어 존버(매우 힘들게 버티는 상태를 이르는 속어)의 연속이었을 수밖에. 한땐 스타 강사가 되고 싶었다. 전업 작가의 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평범한 행복을 느끼 줄 아는 오늘이 아닐까 싶다. 조금씩 현실과 꿈의 괴리를 좁혀나가면 될 것을 왜 항상 한방에 모든 것을 이루려고 했을까. 심지어 금의환향을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지인들에게 숨어 지내기까지 했으니 격한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백수도 생산성 있는 월화수목금토일을 축적하면 언젠가는 직장인 부럽지 않은 날을 맞지 않까. 이상과 달리 현실에서는 무작위로 선발하는 시 주관의 자리에 지원 신청을 해두었다. 다음 주에 발표가 나는데 부디 내가 뽑히기를! 이건 뭐 복권 당첨도 아니고 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백수 인생에는 나름 재미가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