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나 자신에게 닿기를
알을 깨고 나오는 글쓰기 여정
여름의 문턱을 넘었다. 추풍이 코끝에 닿으니 쓸쓸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이 인다. 푸릇함이 물러가는 계절이 되면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펼친다. 데미안은 백 년도 전에 쓰인 책이지만 나의 현 스승이자 길라잡이이다. 헤르만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그의 소설에 푹 빠져 곧장 데미안도 읽었다. 처음으로 번역가라는 직업에 깊은 감사를 느꼈을 정도로 헤세의 글은 내게 여러모로 소중했다. 문학이 주는 순수한 감동과 좋은 문장을 읽는 기쁨, 통렬한 청춘의 여정에 공감하며 울고 웃고 동했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경우가 드문 내가 데미안은 네 번이나 다시 읽었다. 네 번째 읽는 데미안은 천천히 소리 내고 귀로 들으며 읽었다. 모두가 잠든 저녁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한 장씩 음미하는 데미안은 내게 여전히 소중한 청춘 지침서였다. 탄탄한 서사와 개성이 뚜렷한 등장인물, 작가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문장, 전쟁의 비극, 파란만장했던 작가의 연대기. 모든 것이 잘 어우러져 나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청춘이 괴로웠고, 쉬운 것 하나 없었던 시간들의 연속이었기에 데미안이 내 인생 도서가 됐으리라.
주인공 싱클레어처럼 나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찾고자 발버둥을 쳤다. 보통 사람처럼 사는 게 가장 어려웠다. 크고 작은 시련을 겪으면서 숨이 막히도록 외로웠고 방황도 많이 했지만 차라리 그게 나답게 사는 방식이었고 덜 힘들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책의 첫 장에서 만난 작가의 문장을 통해 이미 반쯤의 해답과 위로를 얻었던 나였다. '그래서 내가 힘들었던 거구나.' 지각과 동시에 안도가 됐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라고 말하는 이 책과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를 아끼는 사람들, 나와 이해관계가 얕은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모두들 내게 쉽게 생각하고 어렵게 살지 말 것을 명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러려니 해.", "그냥 남들 하듯이 똑같이 하고 살아." 대다수의 조언을 따라 살지 못하는 나를 미워했고 원망했다. 불의에 직면할 때, 나와 맞지 않는 일을 할 때, 남을 곤경에 빠뜨리는 사람과 살을 부딪칠 때 나는 남들보다 훨씬 괴로워했다. 나를 지켜보는 이들은 반쯤 감은 눈으로 이렇게 충고했다. '원래 세상 사는 게 다 그래.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라.' 남들은 세상에 쉽게 녹아들고 인간관계에 적당히 발 담그며 잘만 사는데 나는 들끓는 진심과 열정 때문에 많이 다치고 아프기를 반복했다. 남들을 좇아 사는 건 너무나 지루하고 고달팠다. 스물넷의 나이에 비로소 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를 처음 만날 날 이렇게 인사했다. "싱클레어, 그때 어느 날 내 아들이 학교에서 오더니 말했지요. 이마에 표적을 지닌 소년이 하나 있어. 그 애는 분명 내 친구가 될 거야, 라고요. 그것이 당신이었어요. 사는 게 쉽지 않았겠지요." 사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에바 부인의 인사말은 뜨겁게 내 가슴에 녹아들었다. 내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로 느껴졌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획일화된 목적과 꿈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타인이 부러워하는 목표를 가질수록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은 어렵고 하찮은 숙제가 된다. 그런 길이 있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정치인도, 회사원도, 주부도, 아이들도 자신에게 이르는 길은 어렵고 소중하다.
제 마음을 진정으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데미안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정확히 알아. 사람 하나 죽이는 데 화약이 몇 그램 필요한지. 그러나 어떻게 신에게 기도해야 하는지는 모르지, 어떻게 한 시간을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걸." 진정한 명랑함을 찾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방황이다.
데미안 제5장에 이런 글귀가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을 여러 번 읽자 명문이 내게 또 다른 가르침을 시사했다. 새는 단 한 번만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지만, 인간은 몇 번이고 새로운 알을 깨뜨려야 한다. 부모, 친구, 연인, 고향, 시련, 습관, 꿈... 다양한 세계의 알을 깨뜨리고 거듭나야 비로소 진짜 자신이 될 수 있다.
처음 데미안을 읽고선 데미안처럼 따뜻하고 총명한 멘토를 만나길 소원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데미안을 읽으며 알았다. 나조차 나를 하염없이 기다려 주고 늘 같은 열정으로 응원해 주지는 않는다. 데미안 같은 멘토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책을 펼치면 그곳에 길이 있고 멘토가 있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내면을 공부하고 싶을 때, 나의 글이 무르익기를 바랄 때면 데미안을 읽는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데미안을 읽게 될지 모르겠다. 성장의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다섯 번째 읽게 될 데미안 또한 기대된다. 데미안을 읽으며 더욱 나에게 닿기를, 앞으로도 이것이 내가 읽고 쓰는 이유이기를 바란다.
미세스쏭작가 네 번째 데미안을 읽다(23.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