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자신감이 돼 준 독서
쓸모 가득한 재미, 독서
필연이었을까. 초등학생 때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늘 집 근처에 몸집 큰 도서관이 있었다. 장서가 가득한 도서관까지 도보로 10분 이내면 도세권이요, 5분 미만이 걸릴 경우 초도세권이란다. 현재의 신혼집은 시립 도서관까지 꽉 찬 십 분이 소요되지만 이전에는 걸어서 오 분이면 책의 천국에 다다랐다. 초역세권에 살고 있지만 집순이인 나로서는 초도세권이 훨씬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 독서가 유튜브 시청 급으로 재밌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공감하는 사람이 많진 않을 것 같다.
엄마는 나를 독서 광으로 키우기 위해 항상 책 읽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학원 배웅은 드물었지만 도서관은 출퇴근하듯 나와 동행해 주셨던 엄마. 독서를 중요시 여기셨던 엄마는 일하는 도중에도 틈틈이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자 도서관을 방문하셨다.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열심히 읽었던 책은 곧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초등 저학년 때는 동화, 만화, 소설을 주로 읽었다. 그러다 문득 희곡을 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곡 문학이 빼곡한 책꽂이에서 가장 두꺼워 보이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펼쳤다. 비슷한 두께의 그림동화 1, 2권과 달리 4대 비극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읽는 데 의의를 뒀을 뿐 명작을 미처 소화하지 못한 채 마지막 장을 덮었다. 초등학생인 내게는 너무나 자극적이고 파멸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두꺼운 책을 끝내 정독했다는 뿌듯함만 남았을 뿐. 4대 비극 덕분에 희곡은 나와 맞지 않는 장르가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피의 혼례라는 희곡을 빌려 오는 길, 책과 결투하던 열 살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남편과 산책하듯 도서관에 간다. 그는 내가 맘에 드는 책을 다 고를 때까지 말없이 기다린다. 신청 도서 두 권만 가져오겠다던 내가 일곱 권의 장서를 꽉꽉 채워 가방에 담았다. "또 욕심 냈네." 남편은 못 말린다는 듯 실소하며 가방이 무거우니 본인에게 달라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 나눠서 들자고 해도 전혀 무겁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는 남편. 나를 대신해 책 꾸러미를 짊어진 그의 등판은 언제 봐도 사랑스럽고 듬직하다.
이처럼 나는 다독하는 편이지만 요즘 뜨는 책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기 있는 책, 권장 도서, 베스트셀러보다는 그저 그날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맞는 책 읽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저명한 작가인지, 몇 쇄를 찍었는지 등은 내게 전혀 중요치 않다. 책을 읽을 땐 첫 장부터 마음을 활짝 열어젖힌다. 마음의 눈을 부릅뜨고 작가의 문장과 반짝이는 생각을 흡수한다. 읽고자 하는 열의, 책 욕심만큼은 버리고 싶지도 덜어 내고 싶지도 않다.
워낙에 많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히 글쓰기와 친해졌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기에 글쓰기가 내겐 돈 안 드는 취미이자 놀이다. 이는 독서가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물론 여전히 부족함이 많음을 잘 알기에 낙망할 시간에 꾸준히 쓰기를 택한다. 나날이 읽고 쓰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작문 수업이다. 많은 책을 읽을수록 자신감도 생기고 글쓰기도 수월해진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말을 유창하게 하기 위해, 유식한 사람이 되려고.
내가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이다. 유익한데 재밌기까지 해서 다독한다. 눈과 어깨의 뻐근함을 모두 이겨 낼 만큼 독서가 좋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의 한마디가 독서를 북돋는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새로운 앎을 얻었다면, 작은 변화라도 추구하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책의 역할은 충분하다.
책의 인기는 나날이 식고 있다. 독서가 취미라고 하면 "책 읽는 게 취미라고? 풉." 몹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내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서라는 건 못 받아들임.) 읽으려는 사람이 쓰려는 사람보다 많아지면 좋겠다. 읽고 쓰는 게 너무 어렵다면 관심사가 통하는 편하고 쉬운 책부터 읽으면 된다. 말을 잘하고 싶다면? 또한 독서를 통해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타인 앞에서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은 물론 자신과 대화하는 최고의 창구가 되어 줄 책을 가까이 두자.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신보다도 더 나를 잘 아는 책 한 권을 마주할 때의 기쁨을 모두가 만끽하면 좋겠다. 화려한 스펙도 없고 내로라한 경력도 없지만 오늘도 독서를 통해 나만의 이력을 쌓아간다. 책은 나의 지혜로운 스승이자 자신감의 원천이다.
두 권만 대여하기로 했던 책은 다시 일곱 권이 되었다. 그날그날의 이끌림이 책을 고르는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