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은 나를 쓰게 만든다

노을쟁이, 글쟁이 그리고 나

by 미세스쏭작가

열한 살 꼬맹이는 해 질 무렵이면 두꺼운 노트를 들고 도서관 옆 농구장으로 갔다. 아이는 초록색 농구장 바닥에 앉아 노을이 주변을 물들이는 풍경을 보며 시와 일기를 썼다. 초등 4학년 무렵부터 노을이 잘 보이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글을 썼던 나. 당시에 내가 어떤 글을 썼는지 너무 궁금해서 노트를 여러 차례 찾아봤지만 행방이 묘연하다. 아마 검은색 노트에는 지금보다 훨씬 실력이 나은 글이 담겨있을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노을은 내게 영감의 원천이다. 대자연 아래 놓인 사람은 발가벗겨지고 솔직해진다. 물멍과 불멍을 좋아하지만 노을과 함께할 때는 결코 멍 때리는 법이 없는 나. 붉은 노을과 푸른 하늘이 한데 어우러진 보랏빛 구름 특히나 엽서의 한 장면 같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자연은 자기의 때에 본연의 빛을 발하다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늘 여운이 남는다. 시시각각 바뀌는 노을의 빛깔과 풍경은 어제와 오늘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바라볼지라도 결코 동일한 모습을 보이는 법이 없다.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요리를 하고 있으면 주방의 작은 창으로 붉은빛이 비친다. 노을이 절정의 때에 이르면 방충망까지 모두 열어젖히고서 하늘을 감상한다. 여름 노을이 특히 예쁜 우리 집 풍경은 오후 일곱 시에 진가를 발휘한다. 가끔 깜박하고 있다가 침실방까지 뻗치는 노을의 붉은 인기척에 놀라 "아 맞다. 노을 봐야지." 하고 주방으로 달려갈 때도 있다. 어제는 요리 도중에 가스 불까지 모두 끈 채로 요리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노을을 즐겼다. 해를 가린 건물들마저 고운 빛깔로 안아주는 저녁놀이 찌나 따스하던지.

사라질 듯하다가 강렬하게 빛을 뿜기를 반복하다가 달과 별에게 제 자리를 양보하는 노을을 보면 '나도 저렇게 살고 싶어.'라는 생각이 든다. 요술 부리듯 다양한 농도의 빛을 뽐내는 노을은 질 때마저 아름답다. 황홀감에 젖어 감탄하는 내게 오랜 짝사랑의 대상이었던 노을이 감을 건넸다. "너도 이렇게 살면 되잖아." 어떻게 하면 노을처럼 살 수 있을까? 프라이팬에 쓸 뒤집개를 들고 한참 생각하다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어쩌면 우리는 노을보다도 더 노을처럼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원하는 색깔을 직접 고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고, 나만의 빛깔로 타인을 포용할 수도 있는데 내가 나를 몰라줄 뿐. 나의 색깔과 고유성을 외면하기 때문에 세상을 물들일 기회를 놓치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노을이 타고 지는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시간이 짧고 유한하다는 사실을 절로 인지하게 된다. 잠깐 타다가 가버리는 노을처럼 나도 세상을 잠깐 살다 하늘로 돌아가겠지. 영원을 살 것 같던 열한 살짜리 꼬마는 눈 깜짝할 새에 삼십 대 중반의 어른이 되었다. 금세 또 시간이 흐르면 노년기에 접어든 나는 아마 재를 이렇게 회상할 것이다. '신혼집 창으로 노을을 보던 그때의 나는 참으로 젊고 풋풋했데.'


젊은이라고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배웠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최대한으로 즐기며 살아가려 한다. 오늘도 노을 아래 일렁이는 마음을 마주한다. 한 번뿐인 삶, 무얼 위해 자신을 태울 것인가. 나의 오랜 소망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가. 어떤 것에 가장 소중한 시간과 돈과 마음을 쏟아 왔는가. 내겐 역시 글이다. 꿈이라는 거창한 단어도 필요치 않을 만큼 내가 쓰는 모든 글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비 온 뒤 거무죽죽 흐릿한 하늘을 보며 '오늘은 노을을 못 보겠네.' 지레짐작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어느 때보다도 더 뚜렷하고 강렬한 노을이 온 동네를 물들였다. 글을 써야만 하는 부푼 마음 상태가 되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시간에 나는 노을보다 빛나는 사람이 된다. 노을은 하고 싶은 일과, 되고 싶은 나를 떠올리게 만든다. 예나 지금이나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펜이 나를 잡아당긴다.

집집마다 창가에 노을 조명이 켜졌다. 아름답다. 영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