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생긴 일

목욕탕에서 사색에 잠기다

by 미세스쏭작가

바가지는 인당 한 개씩만 사용.

염색 금지.

물품으로 자리 맡기 금지.

안마탕 자리 넘겨주기 금지.


목욕탕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문구다. 낯이 뜨거울 정도로 일차원적이고 유치한 문구지만 지켜지는 항목은 거의 없다. 사 년 만에 홀로 찾은 목욕탕. 앉아서 씻는 자리에는 역시나 사람은 없고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들만 가득했다. 때 타월, 샴푸, 비닐봉지, 목욕 가방 등. 좋은 자리를 맡고 있는 물건들을 피해 구석진 곳에 의자를 비치했다. 물건이 있는 자리에 앉았다가 "여기 제 자리거든요?" 눈을 부릅뜨고 따지는 사람을 만나면 난감하다. 나 홀로 가서 "여기 자리 맡기 금지라고 쓰여 있는데요?" 입바른 소리를 했다간 어떤 불쾌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 목욕탕이야 말로 약육강식의 세계다.


샤워를 하고 가장 사람이 없는 탕으로 가서 스르륵 몸을 담갔다. 뭉친 근육이 풀리는 느낌에 마음도 한껏 여유로워졌다. 수증기가 가득 낀 주변이 환히 보이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목욕탕에 상주하고 있는 아주머니 집단이 가장 눈에 띄었다. 형형 색색의 머리 두건을 하고 있는 그들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시종일관 웃고 떠들며 목욕탕의 감초 역할을 했다. 여탕 안의 또 하나의 출입문 같은 존재감이 독보적이었다. "어이. 왔어?", "안녕. 왜 이제 와." 거의 모두를 알고 있는 듯했지만 그들의 울타리는 완고했다. 아무나 낄 수 없는 목욕탕 왕언니들 집단을 보며 '뭣이 저렇게 즐겁고 재미날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가장 큰 탕을 차지하고 있던 왕언니들의 소음으로 인해 옆에 계신 어르신이 몇 번이고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의 수다는 계속 됐다. 이런 사소한 반응에 신경 쓰는 자는 결코 왕언니 집단의 멤버가 될 수 없으리라.


십 대 때 함께 했던 나의 목욕탕 친구들이 떠올랐다. 홀로 목욕탕에 가는 건 발상조차 불가능에 가까운 핵인싸(여러 집단과 매우 잘 어울리는 사람)의 시절이 있었다. "목욕탕 갈래?" 다섯 글자면 사랑하는 친구들이 후다닥 모여들었다. 그들 앞에서 발가벗는 건 일도 아니었다. 돌얼음 가득 사발로 나온 음료를 시켜 놓고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목욕탕까지 원정을 가는 날도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목욕을 하고 나면 마음의 때도 보송보송하게 벗겨졌다.

요즘엔 함께 목욕탕에 갈 친구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에게 함께 목욕탕에 가자고 하면 그건 너무 민망해서 안 된다고 한다. 그놈의 뱃살 때문에도 안 된다고 한다. 혼자서 목욕탕에 와도 바쁘게 잘 놀지만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역시 목욕탕 친구가 있었으면 싶다. 집에서 하는 반신욕과는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 해소가 가능할 텐데 말이다.


헬스장과 사우나를 함께 이용하는 회원권을 끊은 적이 있다. 그런데 운동보다 힘든 건 탈의실이나 사우나에서 여자들의 기싸움을 요리조리 피하는 일이었다. 내가 회원권을 끊고 다니던 사우나는 반신욕 탕이 총 여섯 개였다. 하루는 안마탕에서 허리 근육을 풀고 있는데 싸움이 벌어졌다. 아줌마들끼리 물이 튀네 마네 하다가 고성방가가 오갔는데 급기야 탕 속에서 첨벙첨벙 물질을 하며 싸우는 게 아닌가. 안마탕머물던 사람들은 싸움 구경을 하느라 바빴다. 맙소사.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내 얼굴로 물이 막 튀어 댔다. 불쾌한 물벼락을 맞은 나는 가까스로 탕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싸움의 근원을 찾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안마탕 계단에 오른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맑은 눈의 광인들이 한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었다. '어마마? 나 아닌데. 다시 들어가. 말아?'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물 폭탄을 뒤집어쓰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눈총 세례를 받은 나는 그 길로 사우나에 발길을 끊었다. 사 년 만에 찾은 동네 목욕탕은 걱정과 달리 도리어 정겨웠다.


손님들의 때를 밀어주는 세신사 분들의 모습은 언제나 활기차다. "백구십칠 번, 백구십칠 번, 백구십칠 번 손님 오세요." 세신 손님을 부르는 방송이 탕에 울려 퍼지자 왠지 웃음이 나왔다. 나도 한 번쯤은 목욕탕에서 세신 서비스를 받아 보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생업의 현장이고 누군가에게는 쉼터인 목욕탕. 나에겐 목욕탕에 서린 추억과 일화가 많다.

어렸을 때 나와 여동생은 늘 여탕 출입문이 바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곤 했다. 일 때문에 바쁜 엄마는 "너희들끼리 먼저 가서 놀고 있으렴. 엄가가 얼른 일 끝내고 너희한테 갈게." 하시며 우리를 먼저 목욕탕으로 들여보내셨다. "엄마. 빨리 와야 돼."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뿌연 수증기 속에서 눈을 크게 떴다. '엄만가?', '우리 엄마인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다 보면 목욕탕에서 살다시피 하는 아주머니들의 시간적 여유가 몹시 부러웠다. '우리 엄마도 저 사람들처럼 편안하게 목욕탕에 올 수 있으면 좋겠다.' 목욕탕 단골 아주머니들처럼 엄마도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우리와 함께 목욕탕에도 오고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기도는 뒤늦게 엄마가 아닌 내게서 이루어진 것 같다. 여탕 출입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리던 내가 어느새 평일 낮, 목욕탕에서 한가로이 사색을 즐기는 그런 주부가 돼 있으니 말이다.


목욕을 마치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헤르만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읽었다. 친구와 함께 아름다운 노을을 구경했고, 남편까지 합세하여 셋이서 맛있는 우동을 먹으러 갔다. 남편과 오손도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어쩌다 한 번 찾아온다는 슈퍼문이 환히 밝혀 주었다. 백 원짜리가 없어 탈의실 내 드라이기를 사용하지 못한 것만 빼면 완벽한 하루였다. 아니. 오늘이 내 생일인가 싶을 만큼 소소한 행복이 가득한 하루였다. ("여탕에서는 드라이기를 사용하려면 동전이 필요해?" 몹시 놀라는 남편에게, "남자들은 드라이기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어?" 놀라서 되물었다. 하늘 아래 같은 목욕탕이지만 이토록 다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