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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Oct 04. 2023

오래전에 쓴 투고 메일을 발견했다

씁쓸한 투고의 흑역사

매거진의 기존 글 18편은 <나에게 닿는 글쓰기> 브런치북으로 발행했습니다. 글을 통해 작은 과 공감이나마 드릴 수 있길 바라며, 꾸준히 쓰겠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어? 내가 이런 메일을 보냈었네?' 이메일을 정리하다가 케케묵은 투고 메일을 발견했다. 업무 외에 개인 메일을 이용하는 경우가 드문지라 2018년도 초에 출판사 보낸 메일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연애 관련 도서를 투고한 적이 있다. 부끄럽지만 책 제목(가제)은 '완벽한 연애는 없어도 좋은 상대는 있다'라는 원고였다.

 투고의 잿빛 추억. 잠깐 망설이다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보낸 메일을 열어 보았다. 연애가 취업만큼이나 힘든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니 출간을 부탁드린다는 오글거리는 내용 숨이 막혔다. 공익광고라도 되는 마냥 내 원고를 소개한 대목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때 책이 나오지 않았음 감사할 정도였다. 민망한 마음에 얼른 흑역사의 흔적을 지우려다가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참 열심히 도전하며 살았구나'라는 생각에 기특하면서도 연민이 어렸다.


 솔직한 심정으로 투고에 관한 경험은 누구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좋지 않은 일은 금방 털어 내고 해학적으로 승화해 버리는 성격이지만 나의 첫 투고는 어두운 기억으로 남았다. 방아쇠만 당기면 뭐든지 맞출 수 있을 거라고 나의 능력을 과신하던 이십 대 후반. 노력하기만 하면, 도전하기만 하면 못 이룰 게 없다고 믿었던 치기 어린 시절에 이 원고를 썼다. 10포인트로 A4용지 106장 분량의 글을 모두 쓰기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쓰고 또 썼다. 어떤 날은 밤을 새 가며 글을 썼고 한 달에 걸쳐 세 번 탈고했다.

 품에 안은 원고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투고했다.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내면서도 내 원고가 책이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몇 군데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냈고 어디서든 연락이 오리라 믿고 부푼 마음으로 기다렸다. 세 건 정도 "죄송", "아쉽게도"라는 인사로 시작하는 메일을 받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거절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단 하나의 거절 답변에도 바이킹을 타고 가장 높은 곳에서 전속력으로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충격느꼈다. '아. 내가 뭐라고 연애에 관한 자기 계발서를 썼지?'라는 자괴감과 '더 많은 출판사에 투고하면 돼. 기죽지 말자.'라는 희망이 팽팽하게 충돌했다. 훨씬 많은 실패를 맛봤던 선배 작가님들을 생각하며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게 완곡한 거절 메일을 보냈던 출판사카드뉴스를 보았다. 거기에 내 원고의 가제가 그대로 쓰여 있었다. 나름 수십 번을 고민했던 나의 이야기를 담은 문장이  타인의 책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과 내 것이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나 내 것 같은 을 보고 마음이 얼어붙었다. <완벽한 연애는 없어도 나에게 좋은 상대는 있습니다> 평서문에 높임 표현만 입혔을 뿐 그건 분명 내 안에서 나온 글이었다. 남편과 교제하면서 갖게 된 나의 연애 철학. 고작 한 줄의 문장이지만 투고 거절 메일을 받은 그 시점에 내 원고의 가제가 타인의 책을 홍보하는 데 이용 됐다니.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곧장 투고를 멈췄다. 그리고 해당 출판사의 카드뉴스를 캡처해서 남편에게 보냈다. 당시에 남자친구였던 그는 나를 다독이며 열심히 위로해 줬는데 그중 "아주 웃기는 놈들이다"라는 한마디만이 기억에 남다. 딱히 뭐 어찌할 수도 없는 유치한 상황을 지켜보며 허무하고 괴로웠다. '내 글도 이런 식으로 도둑맞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까지 엄습했다. 나의 출판 도전기는 그렇게 망하게 막을 내렸다.

 

 앞으로 다시는 웃기는(?) 출판사에 투고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하며 어딘가에 단단히 증거를 남겨뒀지만 반면 모두 잊고 싶었다. 대신 내가 나의 글을 믿고 더욱 사랑해 주기로 다. 휘황찬란한 나의 연애 경험을 토대로 쓰인 원고는 자기 계발서의 형식으로 엮다. 훗날 기회가 된다면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 보고 싶다. 지극히 사적인 연애 이야기를 이제 와서 공개하자니 낯간지럽고 여간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연애라는 단어마저 낯설어져 버린 지금, 솔직하고 풋풋한 원고가 긴긴 잠을 자는 현실이 오히려 편해졌달까.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투고에 관한 영상 하나를 보았다. 브런치나 블로그 등 글쓰기 플랫폼에 비슷한 성격의 글을 쌓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투고라는 내용 영상이었다. 출판사 관계자 분들이 직접 찍은 영상이라 신빙성도 있고 많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멀리 보고,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글을 련다. 그럼에도 나와 결이 맞는 좋은 책을 만나면 출판사의 이메일 주소를 기록해 둔다. 꿈을 위해서라면 거절에 익숙한 사람이 되는 것 역시  과정이리라. 거절을 통해서도 배움을 얻는 사람이 되고 싶다. 거절이 프러포즈가 될 때까지 내 글이 성장하길 바라며 오늘도 투고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투고 , 거절당하거나, 선택받거나.

#작가지망생 , WAY TO GO

 

투고했던 연애 도서 목차의 일부(당시에 나는 미세스쏭이 아닌 푸릇푸릇 미스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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