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솔직함의 줄다리기
솔직함의 정도와 기준선
솔직하단 소리를 자주 듣는 편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의 솔직함은 대게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솔직하고 재치 있는 면이 장점이라는 이야기를 오래 들어왔고 그러한 면은 내게서 분리되지 않는 속성이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솔직하다는 게 대체 뭔지,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고, 어떤 솔직함을 독자가 원하는지, 솔직함의 정도와 범위에 관해 깊은 고민을 거듭했다.
어떤 글을 읽고 있노라면 솔직함 한도초과로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고 어떤 솔직함은 자신을 넘어 타인까지 파멸로 끌고 가기도 한다. 남들이 전혀 궁금해하지도 않는 솔직함을 글 속에 탈탈 털어놓는 것 또한 자제해야 하고, 독자에게 쓰는 이의 피로감을 짐 지우지 않아야 한다. 이처럼 솔직함의 적정선을 찾고 편안히 읽히는 글을 쓰는 데는 여러 어려움이 동반된다.
솔직하다는 건 거짓이 없고 바르다는 뜻이다. 특히나 에세이를 쓸 때는 자신의 현실과 사건에 거짓의 옷을 입혀선 안 된다. 그렇게 쓴 글은 얼마 못 가 똑똑한 독자들에 의해 외면당한다. 반면 한 인간이 심히 솔직한 태세로 모든 껍데기를 벗고 내면을 훤히 보일 수 있는 상대는 신이라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무얼 어이하라는 것이냐 물으신다면 글의 솔직함이란 자고로 '바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주장하고 싶다.
우리가 민감한 주제를 다룬 후에 글이 남기는 것이 상처가 아닌 치유라야 하기 때문이다. 나름 솔직함의 적정선과 기준을 정해 두고 글을 쓴다. 뭇 타인은 나의 글에 너무하다 싶을 만큼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글을 쓸 때면 한 가지 전제를 가정한다. 내가 발행한 글을 결국 나의 모든 지인들이 보고, 심지어 안 봤으면 하는 상대도 본다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과연 솔직한 글을 쓸 수 있을까? 답은 긍정의 예스다.
솔직함에도 방향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글을 통한 치유는 쓰는 이와 읽는 이 쌍방에게 일어나야 한다. 나에게는 치유가 되고 타인에게는 상처가 되는 글은 일기장에 쓰는 것이 좋다. 글의 화살에 상처받아 쓰러지는 이가 없도록 하려면 감정이 절제된 상태에서 모두가 읽어도 되는 글을 쓰면 된다. 마음이 얽혀 갈피를 잡기 힘든 시점이라면 반발자국 떨어져 시간에 맡긴 후에 천천히 써내려 가는 편이 좋다.
솔직함에 안전장치를 거는 방법이 또 하나 있다. 이 글을 올리는 순간 기록으로 남아 공유되고 박제될 수 있단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물론 역시나 타인은 내게 별 관심이 없겠지만 온라인의 파급력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 한 편 쓰고 접을 계획이 아니라면 이 정도의 장치는 걸어 두고 오래오래 글을 쓰자는 취지다.
지인들이 다음 메인 페이지에서 내 글을 보고 연락해 올 때가 있다. "오늘 우연히 네 글을 봤어." 매체의 힘을 인식하는 순간이다.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구라도 언제든지 내가 쓴 글을 접할 수 있다. 헤어진 연인, 절교한 친구, 나를 괴롭히던 직장 상사 등등. 말을 할 때와는 또 다른 기록의 세계에서는 더욱 번거롭고 다채로운 솔직함의 세계를 마주해야 한다.
얼마 전에 『층간소음 일타강사』라는 브런치 북을 발간했는데 열두 편의 글이 20일 동안 14만 6,700회가량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23년 10월 26일 기준) 윗집 여자의 발망치 소리에 영감을 얻어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솔직함의 정도(正道)를 지키기 위해 모니터에 포스트잇을 한 장 붙여둔 상태로 글을 연재했다. 거주 중인 집의 층수를 바꿨고, 집 앞에 붙었던 항의 쪽지는 증거 사진을 그대로 쓰지 않고 나의 필체로 갈음했다. 이웃에게 받은 떡 역시 떡은 떡이되 그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진으로 대체했다. 글을 쓰면서 자꾸 층수가 헷갈려 틈틈이 노란색 포스트잇을 확인했다.
글을 쓴 취지는 결코 누군가 나를 힘들게 했다는 데 있지 않았다.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와 공감을 드리자는 소망으로 쓴 글이었다. 혹시 나의 이웃 중에서도 이 글을 읽는 이가 있을까? 불편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마음을 다잡고 써나갔다. 복잡한 심정을 잘 추스르고 솔직 담백하게 쓴 글이 종종 화재가 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소심한 나 역시 꿈틀꿈틀 성장을 거듭한다.
만일 내가 이웃을 저격하는 의도로 글을 썼다면, 스트레스를 쏟아낼 창구로 글을 연재했다면 뜨거운 반응 끝에 부끄러움과 후회만 남았을 것이다. 우리가 솔직하게 쓴 글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타인의 마음을 만지기도 한다. 모두가 웃는 글을 쓰기보다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어디까지 솔직할 것인지, 좋은 솔직함이란 과연 무엇일지 기준을 정했다면 이를 유념한 채 그저 부지런히 써나가자. 솔직함이 잘 버무려진 글에는 여러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한 번 뵌 적도 없는 독자 분들의 정확한 판단에 두 눈이 번쩍 뜨일 때가 많다. 나를 간파하고 꿰뚫어 보는 독자 앞에서 작아지고 주눅 들고 깨어지고 힘입고 담대해진다. 솔직함을 한 스푼 가미한 글은 여전히 나를 들었다 놨다 하며 쓰는 맛을 선사한다. 솔직함의 정도(程度)를 잘 정해 글의 순기능을 발현하고 정도(正道)를 향해 뚜벅뚜벅 걷겠다. 이를 위해 글로써 나를 반추하며 오늘도 발행 버튼을 '질끈'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