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팔. 층. 그리고 귀. 트. 임.
층간소음 일타강사 1
무슨 복인지 위아래 이웃들이 출근도, 외출도 삼가고 집에만 콕 박혀 삽니다.
거주 시간이 긴 이웃들이 우리 집에 밤낮으로 쏟아붓는 층간소음.
그중 가장 힘든 건 다 큰 어른들의 발망치 소리입니다.
쿵꽝쿵꽝. 오늘도 인간 공룡의 발꿈치 소리를 들으며 글을 씁니다.
층간소음. 이 극성스러운 존재를 구슬리며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와 함께 수다 떨며 스트레스 해소하고 싶은 분들 어서 오세요!
층간소음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며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씁니다.
그들은 결국 저를 층간소음 일타강사로 길러 냈습니다.
드라마 한 편이 나올 법한 미세스쏭작가의 층간소음 표류기 렛츠기릿!
하필 그들은 18층에 거주했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십팔 층에.
우리 집은 17층이었다. 그들의 발아래 우리 가족들의 머리가 존재했다. 18층 아이들은 힘이 좋았다. 딱 봐도 다부지고 장사처럼 보이는 네 식구가 윗집 실거주자들이었다.
아이들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정없이 뛰었다. 덩치 좋은 18층 부부의 발소리는 그보다 더했다.
그들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 소음의 대환장 파티였다. 날이면 날마다 다른 집의 아이들까지 와서 뛰고 구르고 바닥을 찍어 댔다. 가히 폭발적인 위력이었다.
쿵쿵쿵쿵 쿵! 다다다다다 땅!
꺄하하하. 엉엉흐엉.
우리 가족들은 소음을 피해 밤낮으로 도망 다녔다. 내 집이 있는데도 집에서 쉬지 못하고 카페, 도서관, 공원 곳곳으로 떠돌며 도피 생활을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살고자 항의했다. 층간소음이 너무 심하다고 18층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제야 아랫집에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인지했을까? 아이 엄마가 과일 한 상자를 들고서 17층 우리 집을 방문했다. 아이들이 많이 뛰어서 죄송하다며 여름 과일을 건넸다. 내키지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과일이 아니라 상식이 있는 이웃이었다. 적어도 저녁엔 사람이 잘 수 있기를, 남의 집 아이들까지 합세하여 어린이집을 꾸리지 않길 바랐다. 엄마와 나는 과일을 선뜻 받아 들지 못했다.
"어휴. 뭐 이런 걸 사 오셨어요. 과일은 괜찮아요. 받기가 좀 그렇네요." 정말로 하고픈 말들을 삼키고 있던 우리에게 기어코 과일 꾸러미를 안긴 후, 그녀는 유유히 사라졌다.
그 후로 소음은 더더욱 심해졌다. 전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예상대로였다. 그녀가 우리 품에 안긴 건 과일이 아니었다. 무조건적 이해를 구하는 뇌물이었을 뿐.
몹쓸 촌지를 받은 대가로 우리는 제대로 항의도 못한 채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미친 듯이 뛰는 아이들 때문에 17층에는 갖가지 진동과 충격이 그대로 전달 됐다. 내 집에서 뛰는지 네 집에서 뛰는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극심한 소음을 견디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쿵쾅쿵쾅 꽝꽝!
기록적인 달리기 소리와 동시에 전등불이 꺼졌다가 켜졌다. "딸깍. 깜빡깜빡." 폭격과도 같은 소음이었다. 아빠와 나는 어이가 없어서 얼굴을 마주 보고 허탈한 표정으로 웃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든 날은 아빠께서 베란다 문을 열고 포효하듯 외치셨다.
“십팔~ 층~~!!!”
불쌍한 우리 아빠.
그들 아래 사는 우리 가족들 모두가 안쓰러웠다. 관리실에 찾아가 도움을 구해 봤다.
“몇 번 경찰이 다녀간 집도 있어요. 싸움만 더 커졌지 조금도 나아지는 게 없더라고요.” 관리실 직원분의 설명이었다.
음. 앞으로 우린 뭘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거지? 아무런 수확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려 퀸 나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빠 성격 알지? 윗집하고 큰 싸움 날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 소음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말고 참고 살자. 알겠지? 무시하고 안 들린다고 생각해 버리자.”
그게 가능하다면 층간소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을 테지요. 어머니.
날로 심해지는 층간소음이 마음을 들쑤셨다. 이 상태로 과연 며칠이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우리는 표면적으론 사이가 좋은 이웃이니까 대화로 풀면 안 될 게 없다고 믿었다. 어린 손님들이 우리 집 천장을 요란하게 두들기던 날이었다. 음악을 틀어 놓았지만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소음으로 인해 집에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차라리 같이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심장이 팔딱이며 밖으로 튀어나오려 하는 걸 겨우 부여잡고 18층 아주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어요. 집이 너무 울립니다. 조금만 주의를 부탁드릴게요.”
그때였다.
18층 아주머니 입에서 예상 밖의 구린 인성이 튀어나왔다.
“애들이 뛰면 얼마나 뛴다고.”
허억!
나의 심장은 비트를 나노 단위로 쪼개며 살려달라 날뛰었다.
“네? 애들이 뛰면 얼마나 뛰냐니요? 저희 집에 와서 한 번 들어 보실래요? 애들이 심하게 뛰는 날은 전등까지 깜박거리거든요?”
그러자 안하무인 18층이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한다고 따졌다.
“우리 애들 잘 걷지도 못하는데 어이가 없어서.” 놀이터에서 땀에 흠뻑 젖어 사냥개처럼 달려 다니던 아이들은 뉘 집 자식들인고? 뻔뻔함에 속아서 순간 ‘아. 내가 그럼 아이들을 잘못 봤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 비틀비틀 계단을 내려왔다.
후들거리는 다리보다 더 무너져 내린 가슴은 재건이 힘든 상태가 됐다. 스트레스로 인해 몸도 마음도 너무 아팠다. 비바람이 불거나 도서관도 문을 닫는 날이면 더더욱 집 같은 집 생각이 간절했다.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집. 대화가 통하는 이웃이 사는 공동주택.
더운 여름날 엄마와 내가 아파트 놀이터를 지나칠 때였다.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튼튼한 다리로 열심히 뛰어다니는 두 아이를. 우리는 입을 모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렇게 잘 뛰는 아이들을 두고 어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아이들이 무슨 죄겠어." 상종 못 할 어른들이라고 결론지었다. 제 자식들 발소리는 제 귀에나 캔디겠지.
발뒤꿈치로 찍어 달리는 소리는 나이와 남녀 불문, 지독한 특수소음을 만들어 낸다. 발망치 소리는 가족도 못 고친다는 말이 있다. '내 집에서 내가 쿵쾅 거린다는데 뭐 어때?'라는 생각으론 더불어 살 수 없는 곳이 대한민국의 공동주택이다. 서로 간의 배려가 최고의 주거 환경을 만드는 셈이다. 어쨌거나 배려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아랫집 사람들이 항의를 하든, 인고의 나날을 겪든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윗집에 사는 18층 사람들은 일반적인 상식선에 놓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뛰는 소리보다 힘든 건 어른들의 발소리, 싸우는 소리였다. 남의 집 아이들까지 번번이 데려와 집을 운동장 삼는 행태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18층 사람들로 인해 결국 생애 첫 '귀 트임' 현상이 발생했다. (귀트임은 반복적인 소음 노출로 인해 청각이 손상을 입어 소음을 걸러내지 못하게 되는 증상을 말한다. -나무위키 참고-)
반복되는 소음에 시원하게 트인 귀는 결코 이전의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가지 못했다. 17층과 18층의 발라당 뒤바뀐 사이처럼.
"딩동. 딩동."
어느 날 윗집 남자가 우리 집 벨을 눌렀다.
아빠가 계시지 않는 틈을 타서.
우리 애는 잘 뛰지도 못하는데, 달리기는 물론 일 등 정도 하지만! (사진: 안녕자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