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일타강사 4
신혼집에 짐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물건들로 집을 채우고 나면 울림이 좀 덜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제발 그러길 바랐다. 우리는 조용히 이사했다. 송새댁이 이사 온 걸 아랫집도 앞집도 윗집도 몰랐다. 내 짐을 조금씩 부모님 댁에서 자가용으로 옮겨 왔고 가전 가구도 요란할 것 없이 들여왔다.
남편은 나보다 먼저 H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고 당시에 일이 너무 바빠 신혼집에서 거주하는 시간이 짧디 짧았다. 야근에, 주말 출근에, 결혼 준비까지 하느라 빈집이나 다름없었던 아랫집 덕분에 윗집은 공동주택의 예절을 잊은 지 오래였다. 결혼 전에 오가며 들었던 윗집 소음에 대한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밤낮은 물론 심지어 새벽에도 층간소음이 우리 집 천장을 두들겼다.
이사한 첫날 저녁부터 강력한 윗집의 신고식에 마음이 불안하고 두 귀가 고통스러웠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 부부는 층간소음에 대해 함구무언했다. 이제 막 부부가 된 우리 두 사람은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누가 먼저 판도라의 상자를 열 것인가. 그저 괜찮은 척, 안 들리는 척 연기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
윗집의 소음은 일반 가정집의 소음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들 소음이 대체 어느 정도로 심각했냐면 말이다.
첫째, 통화 중에 상대방이 놀라서 "집에 누가 있어?" 하고 물을 정도였다.
둘째, 기기에 녹음이 그대로 될 정도로 요란했다.
셋째, 집에 잠깐씩 놀러 오는 사람들마저 학을 뗐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랫집에 사는 우리들의 고충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다.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서 본인들도 힘들다는 식의 주장만 펼칠 뿐이었다.
"지금 이거 층간소음이야?" 집들이를 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들었다.
응. 어서 와. 이런 소음은 처음이지?
지인들은 경악하며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 보라 했다.
귀 트임 증상이 다시 도졌다. 증세가 심해진 나는 잠도 쉼도 건강도 잃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몸이 아팠다.
어느 날 밤, 층간소음 전쟁 속에서 남편과 저녁 식사를 하는데 체기가 올라왔다.
"요즘 층간소음 때문에 너무 힘들어. 방도가 없을까?"
"그러게. 저 집 진짜 왜 저렇게 사냐?" 문제를 인식하고 있던 남편도 인상을 찌푸렸다.
"밥 먹고 윗집 소음이 맞는지 확인하러 가 보자."
방화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는데 이미 소음의 근원지를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렸다. 윗집 문 틈으로 우렁찬 소음이 새 나왔다. 남녀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아악. 우다다다닥."
대문 앞에는 여러 대의 씽씽이가 놓여 있었다.
게다가 대문에는 '학원 운영'이라는 문패가 붙어 있었다.
샹. 이번엔 진짜 답도 없구나!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관리실에 전화해서 층간소음의 심각성을 알렸다.
그 후 윗집 여자가 내 인사를 무시하고 째려보기 시작했다.
이사를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닌지라 관계가 틀어지면 여러 모로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보복 소음도 두려웠다.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이번에도 그놈의 좋게 좋게를 다짐하며 인지상정을 믿었다.
'우리가 먼저 이웃을 배려하면 저들도 아랫집을 생각해 주는 날이 오겠지.'
윗집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편히 오르내리도록 엘리베이터를 잡아 주고, 웃으며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윗집 여자도 다시 이물감 없이 나를 대했다.
아니. 존재감 없이 우리를 대했다.
그들은 엘리베이터에서 우릴 만난 후에도 곧장 발망치를 찍으며 집안 곳곳을 헤집었다. 절망과 참담함이 마음을 짓이겼다.
여러 아이들이 모인 윗집에서는 마치 볼링장을 운영하는 듯한 소음이 났다.
다시 도피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 댁으로, 여동생 집으로, 회사로, 카페로.
남편은 밤이 되면 녹초가 된 채 집에 왔다.
나는 일부러라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남았다.
집에 도착하면 대문을 열기 전부터 극심한 소음이 들렸다.
'저 사람들은 뭐가 저렇게 날마다 재밌고 신날까? 난 죽도록 힘든데.'
남탓하는 내가 낯설었다.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들도 나를 괴롭히고 나도 스스로를 괴롭혔다.
소음이 가득한 집에서 울며 기도했다.
어떤 날은 그들이 이해 됐다.
어떤 날은 그들이 몹시 미웠다.
어쨌거나 소음은 계속해서 들렸다.
윗집 사람들은 남들 다 자는 새벽이면 열심히 청소를 했다. 청소 귀신이 붙었다 싶을 정도였다. 코로나 아직 없던 시절이었지만 크리스마스에도, 평일에도, 휴무에도 붙박이 장처럼 집에만 머물렀고 청소에 몹시 집착했다. 집이 곧 사업장이요, 직장이기 때문이었을까? 새벽에 남아 도는 힘으로 대청소를 하는 그들의 행태에 숱한 밤을 지새웠다.
내 집에서 뭘 하든 남이사 무슨 상관이냐고? 소음에 취약한 대한민국의 공동주택에 사는 이상 다 큰 어른들이 자유와 방종 정도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링거를 몇 대씩이나 맞으며 버텼다.
건강검진 결과 이상 소견을 받았다.
윗집 여자에게 예쁜 층간소음 슬리퍼와 가정용품을 선물했다. 몇 번을 지웠다가 다시 쓴 편지와 함께.
혹여 내가 드리는 선물이 오해가 되지 않길 바란다고, 나 또한 아랫집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층간소음 슬리퍼라고,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문고리에 걸어 놓은 종이상자를 다시 들고 와 말아?'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고민했는지 모른다.
그날 바로 윗집여자에게서 답장이 왔다. 선물 고맙다고 잘 신겠다고.
'휴. 다행이다.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을까?'
잘했다고 나를 다독이며 잠자리에 누웠다.
쿵!
쾅!
쿵!
쾅!
"슬리퍼 줬다고 하지 않았어? 전이랑 똑같네." 남편이 나직하게 허탈한 목소리로 물었다.
선물 공세 대실패.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열 마리, 양 십팔 마리...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새벽은 깊어가고 그들을 향한 분노가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