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 아저씨와 대면 후 부동산으로 직행하신 엄마. 빠른 시일 내에 이사가 가능한 아파트를 찾기 위함이었다. 아빠께선 일 때문에 주말에만 집에 오셨기에 이사의 주도권이 엄마의 손안에 있었다. 층간소음에 완전히 지쳐 버린 우리 가족들은 어디든지 좋으니 하루빨리 C아파트를 떠날 수만 있다면 좋겠노라 입을 모아 말했다. 가족들의 바람대로 이사는 속전속결로 진행 됐다. 훨씬 오래된 아파트로 도망치듯 떠났지만 아무렴 좋았다. 소음이 극심한 18층 아래에 사는 건 하루하루가 감옥살이였으니까. 휴식과 심리적 안정이 없는 거처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야.
이사한 집도 층간소음이 심하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어떤 이웃을 만나게 될지 궁금함 반, 두려움 반이었다.
드디어 18층의 소음에서 벗어나는 날. 이사 차량이 도착했다. 조금의 미련도 없이 우린 홀연히 떠났다.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 아파트는 여기가 우리 집이라는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싶을 정도로 외관이 볼품없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아파트 곳곳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17층 살이를 했던 아파트보다 훨씬 튼튼하고 방음도 잘 됐다. 침대에 누워서 베란다를 보면 구름이 노니는 하늘이 보였다. 사시사철 새소리가 들렸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절실했던 조건을 충족시키는 고마운 집이었다. 층간소음이 없는 집! 저녁이면 편안한 마음으로 발을 쭉 뻗고 잤다. 소음 때문에 강제로 잠에서 깨는 일도 사라졌다. 나는 날마다 살 것 같다, 이곳이 훨씬 좋다고 만족함에 노래를 불렀다. 오래된 아파트에서 가족들 모두가 안정을 되찾았다.
집은 좁아지고 건물은 낡았을지언정 층간소음으로부터 해방되니 비로소 집이 집의 역할을 했다. 그곳에 사는 동안 듬직하고 사랑스러운 남자친구가 생겼고, 반려견 자두가 새 식구로 우리 품에 왔다. 가족들과 D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충만히 사계를 느꼈다. 푸른 나뭇가지 사이로 축구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구령이 들렸다. 심심하면 근처 마트에 가서 엄마와 함께 취미 삼아 장을 봤다. 손바닥만 한 자두를 데리고 근처 공원을 다니며 애지중지 산책을 시켰다. 비 오는 날에는 자두와 집 근처 공원에 가서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면서 깔깔거리고 웃었다. 오분 거리에 있는 운동장을 가족들과 거닐며 달밤의 체조도 자주 즐겼다. 귀가하면 편히 쉬고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고마운 집, 웃음 많은 식구들.
그런 나날 속에서 귀 트임 현상은 잠잠해졌다. 평화로운 계절 따라 우리의 시간도 무던히 흘렀다. 남자친구와 결혼하여 새 가정을 꾸리게 된 나는 이제 D아파트를 떠나야 했다. 부모님을 떠나 산다는 게 조금도 실감 나지 않았다.그래도 신혼집이 부모님 댁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다행이었다.
송새댁의 신분으로 이사를 가게 될 H아파트. 이사 준비를 위해 그곳에 갔다. 몹시 시끄러운 층간소음이 들렸다.
'설마... 내가 매일 듣게 될 층간소음은 아니겠지?'
다시 며칠 후, 가전과 가구가 들어갈 공간을 보기 위해 신혼집에 들렀다. 이번에도 광기 어린 층간소음이 나를 맞았다.
'십팔... 층 못지않은데?'
나를 돕고자 H아파트에 동행했던 지인들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 윗집 사물놀이 그런 거 가르치나?"
"여기서 사람이 살 수가 있다고? 너무 심각한데?"
그러게...!?
여기서 어떻게 사람이 멀쩡히 살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가장 달콤하고 즐거워야 할 신혼 초기, 사랑이 피어나야 할 신혼집에 무시무시한 소음이 나보다 먼저 들어가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