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좋게도 사람 나름

층간소음 일타강사 5

by 미세스쏭작가

쿵쿵쿵. 꽈광. 우당탕.

소음과 진동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린다.

윗집이 우리 집 천장을 사정없이 두들기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관리실에 도움을 요청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대요."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는데요."

참으로 교활한 사람들이었다. 집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제 집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이유로 항상 모르쇠와 거짓말로 일관하는 그들은 잡아떼기의 선수들이었다.


거짓말이 주특기인 윗집 여자가 하루는 내게 이렇게 따졌다.

"이전에 살던 사람은 층간소음 가지고 한마디도 안 했거든요?" 예상했던 각본이었다.

"이전에 살던 사람이 우리 남편인데 저보다 우리 남편을 잘 아세요? 층간 소음 때문에 가족들이 따진 적도 있다고 하던데요."

윗집 여자가 얼른 태세를 바꿨다.

"어머.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본인이 판 함정에 빠져 어쩔 수 없이 건네는 썩은 사과를 기꺼이 받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 답하고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회사 동료들을 불러 집들이를 하는 날이었다.

당시엔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만 싶었다.

집들이를 카페에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약속대로 우리 집에서 만나 식사를 했다.

내가 차를 내 오는데 동료 한 명이 우려 가득한 목소리로 층간소음이 너무 심하다는 말을 꺼냈다.

"오늘은 약과야. 평소에는 더 심해. 선생님들 집도 소음이 심한 편이야?" 하고 물었다.

다들 겨우 참고 있었는지 입을 모아 성화를 냈다.

"이건 그냥 일반적인 소음이 아니야. 관리실에 이야기를 좀 해 봐."

"너무 안 됐다. 어떻게 이런 소음을 참고 살아."

"윗집에 뛰는 애들이 한두 명이 아닌가 봐. 이 정도면 일 층으로 이사해서 살던가 주택에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모두 한 목소리로 내 고통을 헤아려 주니 어찌나 고맙던지 우리는 층간소음을 화두로 열띤 토론을 펼쳤다.

밤이 되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층간소음이 잦아들지 않자 동료들이 관리실에 연락을 취해 보라 했다.

망설이다 관리실에 부탁을 했으나 오히려 더 요란한 소음만 들렸다.


호기심 강한 동료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도대체 무슨 일인지 확인을 좀 해야겠단다.

됐다고 손사래를 치는데 동료 어벤저스가 기어코 대문을 열었다.

윗집인지 확인만 하고 오자기에 조심스럽게 뒤따랐다.

겨우 반층을 올라갔는데 아줌마 둘이 딱 버티고 서 있는 게 보였다.

"뭐요."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뭐요? 윗집 여자가 당당한 시비 투로 운을 뗐다. 그와 별개로 아이들이 떠들며 뛰는 소리가 현관에 울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내가 어버버 거리자 동료들이 나를 엄호했다.

"아랫집에 놀러 왔는데 너무 시끄러워서요."

"지금 이게 일반적인 소음이라고 생각하세요? 저희도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이런 소음은 겪어본 적이 없어요."

야무진 동료들 덕분에 말문이 막힌 윗집 여자가 억지 논리를 펼쳤다. "우리한테 절간처럼 살라는 거예요? 밤 열 시까지는 이해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나와 가장 친한 동료 한 명이 야무지게 물었다.

"밤 열 시가 되면 뭐 조용하기나 하고요?" 허를 찔린 여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자기 집을 신고하란다.

"그렇게 시끄러우면 신고하던가요. 층간소음 무슨 센터. 거기에 신고하세요."

"이미 했어요." 이번엔 내가 또 한 번 적소를 맞췄다.

뜨끔 하던 그녀가 "그럼 됐네." 하며 조소를 지었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예상한 윗집 아줌마의 비웃음이었다.


알고 보니 윗집 여자 옆에 서 있던 사람은 윗윗집 여자였다.

윗집 여자가 대문을 꽝 닫고 들어갔다.

윗윗집 여자가 방화문을 꽝 닫고 본인 집으로 올라갔다.

"대박. 십사 층?"

"윗윗집 여자였어?" 나의 동료들이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웃 족보가 엉망으로 꼬여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싸움이 일단락 됐다.

이제 나의 적군이 한 명 더 늘었다. 당장에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웃 복 지지리도 없네. 어떡하냐?" 두 집 어른들의 결속과 적의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동료들의 위로를 받으며 복잡한 마음을 달랬다. 나를 위해 함께 싸워 주는 이들이 얼마나 큰 재산인지 통감하는 사건이었다. 집들이는 생각지도 못한 전개로 마무리되었고 내일 회사에서 보자 인사하며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그들을 배웅했다. '이젠 나 혼자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아파트 근처를 빙글빙글 배회했다.


퇴근한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그 역시 기가 막힌단 반응을 보였다. 윗집에서 함께 뛰던 아이들이 윗윗집에 사는 아이들이었다니. 이전까지의 첩첩산중 공동주택 생활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남편은 13층, 14층 모두 배려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최대한 부딪치지 말고 근처 가족들 집에 머물 것을 권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 그날 저녁은 온 집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들이 잠잠하니 아파트 전체가 고요했다.

며칠 후 다른 이웃에게 들어 보니 윗집 여자가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고 했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신고하면 매트 받고 끝난 대요. 별 거 없어요."

전해 들은 이야기라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다. 중간층에서 학원을 운영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트 하나 깔지 않고 살았던 그들. 층간소음 이웃센터를 통해서 공짜 매트나 받고 끝낼 심산이었나 보다. 감히 흉내도 못 낼 놀부 심보였다.

기존에 이미 아파트 내규와 관리 규정,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처까지 알아 놓았던 상태라 신고는 1+1으로 진행했다.

‘층간소음이웃센터’ 그리고 ‘관할 시 학원지청’.

물론 효과는 후자에 있었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서는 반년이 넘도록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연락이 온들 해당 기관의 공신력을 깡그리 무시하는 윗집엔 별 효과가 없었을 터였다.

간곡한 부탁, 대화, 진심을 담은 메모와 선물. 그 무엇에도 미동조차 없던 윗집 사람들이 학원지청이라는 제삼자의 개입에 얇은 매트나마 깔고 조금은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신고하라고 시원하게 소리를 질러 준 윗집 여자 브라보.

좋게 좋게도 사람 나름이다. 모두와 잘 지낼 수는 없다. 나는 왜 자꾸 이 사실을 망각하는가. 처음부터 단호하고 똑똑하게 대처했더라면 일찍이 건강을 지켰을 텐데 가장 후회가 남는 부분이다.


각성한 송새댁은 홀로 긴긴 싸움을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 웬 여자가 나를 째려보며 자꾸만 시비를 걸었다.

아줌마 정체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