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 붙은 층간소음 쪽지

층간소음 일타강사 7

by 미세스쏭작가

#알고 보니 오랜 누명

저런 쯧쯧. 가엾기도 하지. 모두의 적은 오로지 12층 신혼부부란 말인가.

남편은 실은 아랫집에서 쪽지를 붙인 게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예전부터, 심지어 빈집인 경우에도 몇 번씩이나 층간소음 항의 쪽지를 받은 적이 있었단다. 세상에! 그는 그때마다 무대응으로 쪽지를 떼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다. 대체 왜?

"뭐 어차피 내가 뛴 것도 아니고. 집에서 매일 살았던 것도 아니니까 신경 안 썼지."

아이고 두야. 머리가 지끈. 무조건 피하려는 남편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내는 슬슬 손발을 맞춰 나아갈 수 있을까?


#번지수를 잘못짚은 쪽지

일주일 간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던 집이었다. 제대로 된 확인도 없이 항의 쪽지를 붙여 놓다니. 인기척이 없는 틈을 타 윗집이 얼마나 뛰었을지도 가늠이 갔다. 관리실에 층간소음 관련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윗집이 확실한가요?" 관리실은 윗집이 유감을 표해 힘들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나와 남편은 소음의 진원을 한번 더 확인한 후에 관리실에 연락을 취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우리 집 12층에는 13층, 14층의 소음이 모두 들렸지만 한 번도 14층의 소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13층을 대적하는 것도 충분히 고됐으니까. 그런데 아주 나중이 돼서야 관리실 직원을 통해 분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관리실의 보이지 않는 손

관리실이 13층에 전화로 층간소음 주의를 요청하면,

13층은 14층에도 전화를 넣으라고 항의를 했단다.

관리실에서는 부연 설명 없이 "층간소음 민원이 들어와서. 주의 좀 부탁드립니다."라고 14층에 연락을 취했고 그로 인해 우리는 13층, 14층 공동의 주적이 되었다. 13층에게 유리한 편 먹기 작업이 아주 수월하게 이루어져 버린 게다.

13층, 14층 모두 한창때의 아이들을 키우는 집이었다. 어른들도 워낙 발꿈치를 찍어 걷는 습관이 있었고 아이들 또한 낮밤으로 뛰었다. 분명 13층도 14층 소음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 아무 말 못 하고 참다가 교묘하게 우리를 이용해 민원을 넣어 왔다니. 역시 13층 모략꾼들다웠다.

#중재자의 중요성

"여태 우리가 소음 문의를 할 때마다 여러 세대에 전화를 한 건 가요?"

"네. 다들 윗집 소음 때문에 힘들다고 해서 십삼 층부터 십오 층까지 전화를 돌렸습니다." 관리실의 답변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우리가 항의한 걸로 알고 있고요?"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깐요." 당신들 입장에서는 중요한 게 아니겠지요. 관리실의 중간역할과 재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사례였다. 억울함을 토로한들 들어줄 이 하나 없는 삭막한 현실 어찌하리오.


#나만 아는 비밀

어느 날 윗윗집에 사는 14층 여자가 12층 송새댁과의 대화 중에 이렇게 따졌다.

"어떻게 우리 집 소음이 아래 아래층까지 들릴 수가 있죠?"

이런 물음을 던지는 자체가 대단히 뻔뻔하게 여겨졌다. 본인의 아이들이 우당탕 뛰어다니는 모습을 밤낮 봤으면서도 그런 질문을 던지다니. 매트 하나 깔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사는 이들은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공통주택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본인들 소음이 여러 세대에 들리게 생활할 수 있다. 중량 소음의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게 뛰는데 어떻게 안 들릴 수가 있죠?' 자그마치 5년 동안 미안하다, 주의하겠다는 표면상의 배려 섞인 대답조차 못 들어 봤다. 그나저나 여태 관리실에 민원을 넣은 이들이 우리 세대가 아니라 본인들의 절친 13층이었단 사실을 알렸어야 했는데! 아서라, 권모술수 같은 건 송새댁에게 어울리지 않으니.


#아랫집의 오해

어느 날 11층 아랫집 사람들이 12층 송새댁에게 따졌다.

"발꿈치 소리가 너무 심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저녁에 불 켜져 있던데 밤에 잠 좀 잡시다."

"집에 불이 켜져 있으면 소리가 나나요? 남편이 당직서는 날이라 무서워서 불 좀 켜 놓고 잤습니다. 저도 층간소음에 잠 못 이룬 날 손발을 다 합쳐도 못 셉니다"

아랫집은 12층 젊은 부부가 시끄럽게 해서 못살겠다고 동대표한테 찾아가서 열렬히 항의했단다. 술집을 운영하는지 밤새 영업 준비를 하는 것 같다는 유언비어까지 퍼뜨렸다는 후문. 12층 젊은이들은 술을 전혀 못해서 술집과는 영 거리가 먼데요? 송새댁은 아랫집 아주머니께 여태 수집한 소음 증거물을 보여 드렸다. 그들은 13층을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신고했다. 그간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아랫집 사람들의 대답을 들었고 아랫집과의 충돌은 영영 끝일 줄로만 알았다.


#중량 충격음

아파트의 가장 큰 골치는 중량 충격음이다.

무거운 물건을 바닥에 던지는 소리, 아이들이 달려 다니는 소리, 성인들의 발꿈치 소리 등이 중량 충격음에 속한다. 부드럽고 무거운 것들에 의해 발생하는 중량 충격음은 아랫집은 물론 바로 하층이 아닌 또 다른 세대에도 잔음과 진동을 남긴다.

소음의 주체가 윗집일 수도 있고, 윗집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소음 주체를 확인하고 증명하는 과정은 또 어떠한가.

많은 노력과 비용과 일종의 자괴감까지 투하해야만 한다.

바닥 충격음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는 신소재가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는다.

부디 대한민국 공통주택의 역사가 새로 쓰이는 계기가 되기를.


#이웃의 품격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백방으로 방법을 알아보는 동안 관리실을 통해 윗집의 이사 소식을 들었다. 그들의 이사 여부를 믿을 수 없었다. 또한 이사를 가든 안 가든 그건 우리에게 중요치 않았다. 단 하루를 버티는 것도 곤혹이었으니까. 이사 선포 후 9개월가량을 더 우리와 아랫집 세대가 소음에 시달렸다. 이사 가는 날의 소음이 평소 소음과 비슷했을 정도다. 그들이 떠나고 아파트는 한동한 조용했다. 윗집이 비어 있는 동안 14층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기에 집이 천국으로 변했다. 우리 부부는 "집이 최고네"를 외치면서 집순이 집돌이를 자처했다. 윗집이 사라지자 소음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랫집의 애먼 민원 역시 뚝 그쳤고 우리의 신혼집에 평화로운 봄이 찾아왔다.


#반전

하지만 그건 말이지. 딱 백일의 기적이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