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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Nov 07. 2023

옷 47kg을 버렸다

비우면 비로소 얻는 것들

 옷 47kg을 정리했다. 집이 훤해진 느낌이다.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도 이 뻥 뚫려가는 것 같단다. 삼식이 삼순이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착각의 늪에 빠져 있다. 겨울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일주일이 넘도록 옷 정리에 매진했다. 베란다와 수납함을 몽땅 뒤져 옷과 씨름하는 일은 옷 가게를 하나 차리는 듯한 행길이었다. 사계절 옷을 모두 꺼내 입을 옷 세탁하고, 버릴 옷은 종량제 봉투에 담고, 방문 수거로 처리할 옷가지는 따로 분리했다.


 남편의 휴식을 위해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처리했건만 방문 수거를 접수하고 나자 그가 아쉬운 속내를 비췄다. "그 가방 버리려고? 왜?", "이거 내 스키복인데. 버리려고?" 자그마치 팔 년 동안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한 번 찾지 않았던 스키복이었다. "그래. 안 버릴게. 자기 다시 입어. 사이즈는 맞으려나?" 내 낡아빠진 가방도 모두 물려줄 참이었는데 그가 이렇게 답했다. "하긴. 스키장에 가지도 않는데. 생각해 보니 안 입을 것 같다. 버리자." 실용성, 사이즈, 의류 상태 등을 이미 고려하여 분리한 것이라 설명했더니 그도 더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내 몸무게와 비슷한 중량이지만 옷 47kg이 차지하는 부피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정리 옷을 한데 모았더니 성인 몇 명이 차지하고도 남는 크기였다. 다 입지도 못 할 그 많은 옷을 여태 뭐 하러 이고 지고 고이 간직해 왔는지.

 미니멀라이프를 선포한 후로 '물건에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 삶'이라는 생활 철학이 확고히 생겼다. 무조건 버리는 것만이 미학이 아니다. 쓰임에 비해 나의 공간과 손길을 많이 빼앗는 물건들은 오히려 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쾌적한 삶을 위해 계속 버리고 비우기를 실천하는 중이지만 언젠가는 유지가 목표인 지점에 다다르리라.

 매번 세탁하고 어쩌다 한 번 입까 말까 했던 옷들은 아지만 모두 보내주었다. 옷장에 옷이 너무 빼곡하게 걸려 있으니 당장에 필요한 옷들이 얼른 보이지도 않는 데다가 구김이 가서 입지 못하는 경우비일비재했다. 게다가 옷 먼지 건 악영향을 끼치므로 버림으로써 얻는 가치는 공간 편리함 그 이상이다.


 헌 옷 수거 방문 전날이었다. 남편의 야간근무로 인해 강아지와 나 둘 뿐인 집. 독서하고 글도 쓰고 반신욕도 좀 즐겨 볼까. 정리를 막 마친 침실 불을 끄려는 찰나였다. 우리 집에서 가장 덩치 큰 수납형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말이 수납형 침대지 옷 창고나 마찬가지인 대형 가구. 매트리스를 치우고 수납 뚜껑을 열면 트리플 놀랄 노 자 상황이 펼쳐지겠지. 잠시 망설였지만 오늘 너 죽고 나 살자는 기세로 장갑까지 꼈다. 매트리스를 엉덩이로 밀고 두 손으로 장풍을 쏘고 생쇼를 해서 옮기기에 성공했다. 영치기영차. 벽에 세운 매트리스를 보고 보통 상황이 아니라는 걸 감지한 반려견 자두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거실로 도망쳤다.


 90리터짜리 대형 봉투 안에 그간 입지 않았던 옷과 불편한 옷, 철이 지난 옷 등을 빼곡히 담았다. 물건과 헤어지는  제법 능숙해진 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값을 더 쳐서 따로 팔고 싶은 옷도 있었지만 또한 통 수고로운 이 아닌지라 과감히 작별을 고했다. 대형 봉투 두 장을 더 채우고서야 복구된 침대 위 몸을 뉘었다. 천장이 빙글빙글 온 삭신이 쑤셨다. 몸살이 까 걱정했는데 기사님이 오신다는 생각에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당직을 서고 온 남편이 피로에 절은 몰골로 집에 왔다. 손을 빌릴 새도 없이 곯아떨어져 버린 그위해 살며시 방문을 거실로 나왔다. "십오 분 정도 후에 도착합니다." 헌 옷 수거 업체 기사님의 전화였다. 긴장과 함께 마음이 급해졌다. 내 몸통보다 몇 배로 큰 옷 보따리를 질질 끌고 겨우 들어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옮겼다. 아이고 허리야, 팔목아. 내가 또 무분별하게 옷을 사면 자두의 자식이다!


 이전에는 비대면 거래를 했으나 이번엔 대면 거래를 해 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구태여 밖으로 따라 나올 것 없다며 그냥 집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어? 에?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두둑이 쌓인 옷들과 사장님과 엉겁결에 헤어지고 대문을 닫았다. 어찌나 고되고 무겁고 힘들었는지 체육대회를 치른 느낌이었다. 다행이다. 해냈다. 끝냈다. 날 보고 휑한 미소를 짓는 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다. 거실로 통하는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며 내게 속삭였다. "여기에 뭘 들여놓으면 좋을까? 협탁? 수납? 새 옷?" 아악. 또 시작이다! 내 몸에 여전히 급류처럼 흐르는 맥시멀리스트의 기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고작 18,800원을 벌었는데 이를 기념하고자 마트로 달려가 노란 지폐를 헌납할 뻔했다.


아장아장  미니멀 라이프 야매 TIP

1. 성가시게 하는 옷은 버리세요. 옷이 나를 입도록 만들지 맙시다.

2. 버리고 다시 살 셈이라면 는 옷을 잘 관리합시다.

3. 처리 옷이 많다면 대형 봉투를 사용하는 것이 용이합니다.

4. 헌 옷 수거 절차:

1) 검색 후 연락- 2) 주소, 연락처, 물품, 요청일 등기재- 3) 기사님과 일정 조율- 4) 대문 앞으로 수거물품 이동 -5) 대면 혹은 비대면 거래 진행 -6) 수거 후 현장 사진, 옷 무게 사진, 영수증 등을 전달받음 -7) 거래 계좌 송부.

(업체마다 진행 방법 및 가격 상이)

5. 이전에는 키로 당 200원으로 거래했지만, 이번엔 카카오톡 채널 접수 이벤트 통해 1kg 당 400원으로 거래했습니다.

가만... 내가 니들 호주머니를 확인 했던가?
수거 후 증빙 사진을 보내 주셨습니다. (47kg x 400원 = 18,800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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