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세스쏭작가 Nov 07. 2023

옷 47kg을 버렸다

비우면 비로소 얻는 것들

 옷 47kg을 정리했다. 집이 훤해진 느낌이다. 남편이 보기에도 이 뻥 뚫린 것 같단다. 새 계절을 맞는 기념으로 일주일이 넘도록 옷 정리에 매진했다. 베란다와 수납함을 몽땅 뒤져 옷과 씨름하는 일은 몹시 고됐다. 부부의 사계절 옷을 모두 꺼냈더니 옷 가게를 하나 차리고도 남았을 만큼 방대한 양이었다. 옷더미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을 넘어 다니며 입을 옷 세탁하고, 버릴 옷은 종량제 봉투에 넣고, 헌 옷 방문 수거로 처리할 옷가지는 따로 분류했다.


 남편의 휴식을 위해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처리했건만 막상 방문 수거를 접수하고 나자 그가 아쉬운 속내를 비췄다. "그 가방 버리려고? 왜?", "이거 내 스키복인데. 버리려고?" 자그마치 팔 년 동안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한 번 찾지 않았던 스키복이었다. "그래. 안 버릴게. 자기 다시 입어. 사이즈 맞는지 한번 입어 봐." 내 낡아빠진 가방도 모두 물려줄 참이었는데 그가 이렇게 답했다. "하긴. 스키장에 가지도 않는데 생각해 보니 안 입을 것 같다. 버리자." 실용성, 사이즈, 의류 상태 등을 이미 고려하여 모아둔 것이라고 설명했더니 그도 더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내 몸무게와 비슷한 중량이지만 옷 47kg이 차지하는 부피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정리 옷을 한데 모았더니 성인 몇 명이 차지하고도 남는 크기였다. 다 입지도 못 할 그 많은 옷을 여태 뭐 하러 이고 지고 고이 간직해 왔을까.

 미니멀라이프를 택한 후로 '물건에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 삶'이라는 생활 철학이 확고해졌다. 무조건 버리는 것만이 미학이 아니다. 쓰임에 비해 나의 공간과 손길을 많이 빼앗는 물건들은 오히려 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쾌적한 삶을 위해 계속 버리고 비우기를 실천하는 중이지만 언젠가는 유지가 목표인 지점에 다다르리라.

 매번 세탁하고 어쩌다 한 번 입까 말까 했던 옷들은 아지만 모두 보내주었다. 옷장에 옷이 너무 빼곡하게 걸려 있으니 당장에 필요한 옷이 얼른 보이지 않는 데다가 구김이 가서 입지 못하는 경우비일비재했다. 게다가 옷 먼지 건 악영향을 끼치므로 버림으로써 얻는 가치는 공간 편리함 그 이상이다.


 헌 옷 수거 방문 전날이었다. 남편의 야간근무로 인해 강아지와 나 둘 뿐인 집. 독서하고 글도 쓰고 반신욕도 좀 즐겨 볼까. 정리를 막 마친 침실 불을 끄려는 찰나였다. 우리 집에서 가장 덩치 큰 수납형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말이 수납형 침대지 옷 창고나 마찬가지인 대형 가구이. '저 밑에도 버릴 옷이 꽤 있을 텐데.' 망설이다가 매트리스를 엉덩이로 밀고 두 손으로 장풍을 쏘고 생쇼를 한 끝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트리플 놀랄 노 자 상황이 펼쳐졌다. 오늘 너 죽고 나 살자는 기세로 장갑까지 꼈다. 벽에 세운 매트리스를 보고 보통 상황이 아니라는 걸 감지한 반려견 자두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거실로 도망쳤다.


 90리터짜리 대형 봉투 안에 그간 입지 않았던 옷과 불편한 옷, 철이 지난 옷 등을 빼곡히 담았다. 물건과 헤어지는 일에 제법 능숙해진 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값을 더 쳐서 따로 팔고 싶은 옷도 있었지만 또한 통 수고로운 이 아닌지라 과감히 작별을 고했다. 대형 봉투 두 장을 더 채우고서야 복구된 침대 위 몸을 뉘었다. 천장이 빙글빙글 온 삭신이 쑤셨다. 다음날 아침. 몸살이 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드디어 헌 옷 방문 수거 기사님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밤새 당직을 선 남편이 피로에 절은 몰골로 집에 왔다. 손을 빌릴 새도 없이 곯아떨어져 버린 그. 조용히 움직이랴 무거운 것 들어 나르랴 정신이 없었다.

 "십오 분 정도 후에 도착합니다." 헌 옷 수거 업체 기사님의 전화였다. 긴장과 함께 마음이 급해졌다. 내 몸통보다 몇 배로 큰 옷 보따리를 바듯이 시간에 맞춰 엘리베이터 앞으로 옮겼다. 아이고 허리야, 팔목아. 옷 47kg보다 더 무거운 욕심도 함께 처분하고 싶었다.


 첫 번째 거래 때는 비대면으로 옷을 팔았으나 이번엔 대면 거래를 해 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구태여 밖으로 따라 나올 것 없다며 그냥 집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어? 에?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두둑이 쌓인 옷들과 사장님과 엉겁결에 헤어지고서 대문을 닫았다. 장시간의 체육대회를 치른 느낌이었다. 다행이다. 해냈다. 끝냈다. 날 보고 휑한 미소를 짓는 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다. 거실로 통하는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며 내게 속삭였다. "여기에 뭘 들여놓으면 좋을까? 협탁? 수납? 새 옷?" 아악. 또 시작이다! 내 몸에 여전히 급류처럼 흐르는 맥시멀리스트의 기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고작 18,800원을 벌었는데 이를 기념하고자 마트로 달려가 노란 지폐를 헌납할 뻔했다.


아장아장  미니멀 라이프 야매 TIP

1. 성가심이 가득한 옷은 버리세요. 옷이 내 주인 행세를 하도록 만들지 맙시다.

2. 버리고 다시 살 셈이라면 는 옷을 잘 관리합시다.

3. 처리 옷이 많다면 초대형 봉투를 사용하는 것이 용이합니다.

4. 헌 옷 수거 절차:

1) 검색 후 연락- 2) 주소, 연락처, 물품, 요청일 등기재- 3) 기사님과 일정 조율- 4) 대문 앞으로 수거물품 이동 -5) 대면 혹은 비대면 거래 진행 -6) 수거 후 현장 사진, 옷 무게 사진, 영수증 등을 전달받음 -7) 거래 계좌 송부.

(업체마다 진행 방법 및 가격 상이)

5. 이전에는 키로 당 200원으로 거래했지만, 이번엔 카카오톡 채널 접수 이벤트 통해 1kg 당 400원으로 거래했습니다.

가만... 내가 니들 호주머니를 확인했던가?
수거 후 증빙 사진을 보내 주셨습니다. (47kg x 400원 = 18,800원을 받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