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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Dec 29. 2023

팬티라도 사야만 했던 여자의 변화

사람이 변하면 더 잘 삽니다

 백화점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한 평일 오후. 요즘처럼 동장군 날씨에는 실내 모임이 제격이지만 견물생심으로 인한 과소비가 우려 됐다. 모처럼 많은 지출을 하게 되리라는 예감에 큰 가방을 들었다가 작은 가방에 에코백을 넣었다가 뺐다가 부산을 떨며 고민했다. 그러다가 결국 아주 작은 크로스백 하나를 매고 집을 나섰다.


 다리가 아플 정도로 층층을 누비며 지인과 함께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아이쇼핑 도중에 귀여운 니트 한 벌을 발견했다. 독특하게 허리를 조여서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짙은 회색라 활용도가 높고, 두께와 사이즈, 가격까지 좋은 제품이었다.

 "우와. 이 옷 정말 괜찮다. 하나 살까." 내가 은근한 동의를 구하자 지인도 "이 옷 진짜 예쁘네." 하며 구매를 북돋다. 어차피 모든 답은 혼자 내릴 거면서 구매 전에 동의를 구하는 쇼핑 습관은 어디 안 간다. 새 옷을 입고 즐거운 외출을 할 나를 상상하며 카드를 꺼내려는 찰나였다.

 '니트 없어? 겨울 옷 아직도 다 못 꺼냈잖아.' 무언의 채찍에 정신이 뻔쩍 들었다. 얼마 전에 대량의 옷을 처리하느라 몸살이 날 뻔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디자인 하나만 보고 새 옷을 구매하자니 미어터지는 옷장을 관리 자신이 없었다. 없어도 되는 물건은 없으면 없을수록 쾌적하다는 걸 배웠기에 미련을 접고 발걸음을 옮겼다.


 장소를 이동하자 이번엔 색깔이 고급스러운 겨울 모자가 나를 유혹했다. 어두운 옷을 자주 입는 겨울에는 색감이 예쁜 모자 하나만 잘 착용해도 분위기가 산다.

 '이런 모자 하나 있으면 좋겠네.' 하는 혼잣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반대편 의견이 고개를 들었다.

 '있는 모자나 잘 쓰. 모자 수납함에 남은 자리 없다.' 곁에서 누군가 나를 감시하며 민첩하게 지도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미니멀라이프의 정신인가. 사사건건 옳은 소리를 내며 현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쇼핑몰을 나오기 직전이었다. 집에서 즐길 과자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온 김에 과자라도 사 갈까?'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를 막아서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에코백 없잖아. 과자 때문에 일회용품을 사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그래. 아무것도 사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자. 집에 돌아오니 정리할 물건이 없어 홀가분하고 좋았다.


 얼마 전에 여행지에 가서도 신기하리만치 물욕이 생기지 않았더랬다. 이게 무슨 일인고 살짝 놀랍기까지 했다. 과거의 나였다면 물가가 싼 곳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바쁘게 쇼핑을 즐겼을 터였다. 그런데 무엇을 사고자 하는 욕망이 구매로까지 곧장 이어지지 않았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데도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가치관이 지갑을 동여맸다.

 몇 년 전만 해도 쇼핑몰에 갔다 하면 하루가 짧았던 사람이 바로 나다. 정신없이 쇼핑을 즐기다가 동행인을 놓치는 일도 허다했다. 딱히 살 게 없으면 억지로 필요한 물건을 발굴하듯 찾아다녔다.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의 성향도 비슷했기에 모여서 "탕진잼"을 외치고 구매한 것들을 자랑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오늘 왜 이렇게 살 만한 게 없어?",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사 가자." 이런 대화를 나누며 (사이즈 측정을 목적으로) 속옷 가게에서 팬티를 목에 두르고 있는 나와 친구를 보고 폭소를 한 적도 있다.


 과거의 나는 물건에서 의미를 찾는 데 주력했다. 여행지에 가면 지역을 대표하는 상품들을 쓸어 담아야 여행을 잘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좋은 추억을 머리로 기억하는 방법 대신 기념품에 의지했다.

 하늘 아래 같은 청바지는 없다는 말을 구호처럼 읊으며 이건 이래서 사야 하고, 저건 저래서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제는 구매에 앞서 세 가지 관문에 답을 내려보려 노력한다.


 반드시 필요한 물건인가.

 관리의 번거로움이 발생하는가.   

 공간을 차지하는가.


 삼단계 심사에서 불합격한 물건은 결코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없다. 기분 좋은 포기가 이어지는 나날들 가운데 내 지갑의 상태는 안정적이다. 마음 언저리에 자리 한 미니멀라이프 정신이 가정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나의 미니멀라이프는 확실히 지구보다는 남편을 웃게 만드는 듯하다. 백화점에 갈 때는 오늘처럼 작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야겠다. 꼭 필요한 것은 에코백에, 욕심은 작은 가방에 들아갈 만큼만 소지하며 살고 싶다.

미세스쏭작가의 아장성큼 미니멀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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