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세스쏭작가 Jan 05. 2024

사는 것과 사는 것

live and buy

 잘살기 위해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있고, 잘살아 보이기 위해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있다. 잘살기 위해 물건을 합리적으로 잘 사는 사람이 있고, 잘살아 보이기 위해 물건 맹목적으로 는 사람이 있다. 전자의 주인은 나요, 삶의 중심도 나다. 후자의 주인은 물건이요, 삶의 중심은 타인이다. 과거의 나는 전자와 후자를 갈팡질팡 오가는 사람이었다. 후자의 삶을 살기에는 배포도 가진 재물도 적었기에 통장 잔고가 소비 패턴을 좌우했다.

 사는 것(buy)에 기울어 있던 중심이 사는 것(live)으로 옮겨진 요인 책과 글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영향 또한 컸다. 어딜 가나 단출하게 입고 기죽지 않으며 당당하게 행동하는 남편을 보면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글과 가까이 지낼수록 물질적으로 필요한 목록대거 줄었고 남편의 소비 패턴에 발을 맞추면서 미니멀라이프에 눈을 떴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건을 사기 위해 갖은 고생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각종 브랜드를 망라하며 웃돈을 주고 물건을 사들이고 명품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사람들. 인생은 어차피 자기만족이라지만 어떤 물건도 결코 내면까지는 채워주지 못다. 비싼 물품을 걸치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 있고 멋진 사람이 카드 빚의 노예를 자처하는 걸 보면 못내 아쉽다.


 남 이야기 할 것 없이 뒤늦게 명품에 눈을 뜨고서 하나를 입어도 비싼 것을 입고, 하나를 들어도 비싼 것을 들겠노라 다짐했던 . 고가품에 없던 욕심이 생기자 하나를 가지면 내게 없는 아홉이 더 크게만 보였다. 그런 나를 묵묵히 지켜보 반려인과 함께 명품숍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백화점에 들어가려는데 방방곡곡 여행을 다닐 때마다 함께했던 그의 가방이 눈에 밟혔

 "그 가방 들고 가려고?"

 "응. 왜?"

 "혹시 물건 소지할 거 있으면 내 가방에 넣어 줄까? 자기 가방은 두고 가자."

 "내가 내 가방 들고 가겠다는데 ? 부끄러워?" 아니. 그런 게 아니고. . 조금 부끄럽고 거슬리.

 남편이 고 있던 건 추억이 가득 서린 여행용 커플 가방이었다. 내가 선물한 가방을 어찌나 요긴하게 잘 들고 다니던지 번번이 칭찬했는데 얄궂은 내 행동에 가 찼을 것이다.


 결국 내 가방 하나만 들고 나란히 매장에 들어갔다. 사람을 위아래로 훑는 직원들의 시선이 낯 뜨겁게 전졌다. 여성 직원 한 명이 다가와서 자신이 값어치를 매긴 그대로의 서비스를 선보였다. 몹시 불친절한 어린 직원을 뒤로하고 다른 매장으로 가서 가방 하나를 구매했다. 커다란 쇼핑백에 정성스럽게 포장된 가방을 얻으니 기분이 들다.

 새 명품백을 들고 남편과 함께 멋진 레스토랑에 갔다. 입구를 통과하는데 세상에! 최신식 소독기기가 내 가방에 소독약을 시원하게 쏘아댔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가죽 가방에 얼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조심하라는 후기가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부모님 댁에 갔는데 엄마께서 배추김치 한 포기챙겨 주셨다. 안 가져가겠다고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잘 먹겠다고 말씀드리고 김치와 함께 귀가했다. 나의 백 옆에 김치가 든 종이가방을 나란히 둔 채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세탁실에도 다녀왔다. 이제 김치를 냉장고에 넣어 볼까 콧노래를 부르던 찰나였다.

 빨간 김치 국물이 가방 코앞까지 흘러내려가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김치 따귀만큼이나 아찔한 상황이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벌건 국물에 흉하게 물든 가방을 보고 득음을 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자 음식을 꾹꾹 눌러 담으시는 부모님의 사랑 덕분에 전에도 몇 번 같은 고생을 했었다. 만일 김칫국 반신욕을 당하고 있는 명품백을 목격했다면... 공포영화 한 편을 찍고도 남았을 것이다. 제목은 '악마 프라다를 버릴 때' 쯤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들의 베풂 속에서 더할 나위 없는 사치를 누리고 있는데 명품백이 무엇이기에 내 간덩이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인지 스스로가 한심스러웠.

 "호호. 엄마. 김치국물이 흘러서 비싼 백을 버렸요. 그래도 김치는 감사히 잘 먹을게요."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처지의 딸에게는 가히 공포스러운 체험이었다. 명품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사는 나의 반려자 역시 이 상황을 보고 나직 한 마디를 읊었다. "진짜 큰일 날 뻔했네." 행여 이런 일을 겪고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명품을 사겠다고 결심했다. (고로 다시 명알못이 되었다.)


 남을 배려하는 데 수준급이지만 타인의 평가에 연하지 않는 남편과 함께한 지 십 년이 돼 간다. 그의 소탈함에 동화되는 맛이 인생을 더욱 풍미 깊게 만든다. 얼마 전 여행 사진을 정리하다가 남편의 옷차림 웃음이 터졌다. 미국, 멕시고, 대만, 일본, 코타키나발루, 이탈리아, 베트남 등등. 어디에서 그의 차림새는 한결같았다. 짙은 색 티셔츠에 편안한 면바지를 입고서 수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남편을 보고 한 번 더 다짐했다. 그와 발을 맞추며 지금처럼 욕심 없이 즐겁게 살겠다고.

 로 다른 두 사람의 삶의 기준과 목표가 이젠 제법 심동체의 목소리를 낸다. 남들과 우리 가정을 비교하지 않기,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기. 살림보다는 리 부부의 억과 행복이 늘어갈 때에 아주 잘살고 있 확신 든다. 유행에 좀 뒤처지면 어떠하랴. 지구에 남길 나의 흔적이 줄어든다면 칭찬받을 일이지. 남들 눈에 다소 부족해 보이면 또 어떠하랴. 내가 괜찮으면 그만이지. 사는 것(buy) 보다 사는 것(live)이 먼저 된 삶 생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고 나름의 재미있다.

나를 잘 사는 여자에서 잘사는 여자로 만들어 준 반려자 제법일세.
매거진의 이전글 팬티라도 사야만 했던 여자의 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