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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Mar 14. 2024

글을 쓰게 만드는 향기

어떤 향기는 글을 낳는다

 푸른 여름의 베트남을 여행하던 중이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을 올랐다. "우와. 이게 무슨 향기지? 어디서 나는 냄새지?" 를 매혹하는 향기에 한순반한 나는 홀린 듯이 향의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가족들 모두 식사 장소로 이동했지만 한 끼 점심을 포기하더라도 수수께끼를 풀고 싶었다. 한 후각을 이용해 향기의 농도를 따라 걸었더니 양키 캔들 가게가 나왔다. '오호라. 여기였구나!'

 직원에게 좋은 향기를 맡고 왔다며 제품을 권해달라 부탁했다. 캔들 가게 직원의 안내를 따라 별의별 색깔의 초와 스틱을 시향 했다. '윽. 음? 헉. 아닌데. 이것도 아닌데.' 직원이 건네는 제품들은 내가 찾는 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구 섞인 향기 속에서 원인도 이름도 모르는 제품을 발굴하기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다. 시간도 촉박하고 마음도 다급한데 많은 그 제품들 중에는 비슷한 향조차 없었다. '이것도 아니고 저건 더 아니고. 대체 뭘까?'


 가족들 모두 중도 이탈한 나를 기다리고 있던 터라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마지막 향초에 코를 갖다 댔다. "와! 드디어 찾았다." 기쁨과 안도의 환호성이 터졌다. 내가 흠뻑 반했던 향은 양키 캔들의 '세이지 앤 시트러스'라는 제품이었다. 당장 구매하고 싶었지만 작은 크기의 제품이 없었다. 캔들 라지자는 꽤나 무겁고 큰 유리 제품인지라 결국 포기했다. 시향을 허락해 준 직원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향기에 취한 나는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단박에 온라인 구매를 진행했다.


 즐거웠던 여행 일정은 거짓말처럼 순간 지나갔다. 어찌나 아쉽던지 마지막 날의 모든 음식과 풍경이 슬프게 느껴질 정도였다. 돌아가기 싫다는 소리만 줄곧 나왔다. 여행지를 떠나는 나를 위로해 준 건 우리 집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향초였다. 어렵사리 찾은 향기 덕분에 조금은 위안이 됐다. 한동안 여행 앓이를 하며 초를 자주 이용했다. 세이지 향기를 타고 푸른 파다와 짙은 숲 곳곳을 여행하는 상상을 하면서. 그리고 또 한동안은 그토록 애정했던 향기를 잊고 지냈다.


 어느 날 남편의 차에서 몹시 좋은 냄새가 나길래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우와. 이게 무슨 향이야?" 내가 사준 차량용 방향제인데 기억이 안 나냐고 묻는 남편. 결국 또 '세이지 앤 시트러스' 향이었다. 취향이라는 게 참 집요하다. 몇 번을 다시 새롭게 반해도 결국 거기서 거기인 게 취향인듯하다.


 가끔 글이 써지지 않으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바깥공기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짙은 초록색 캔들을 워머로 녹인다. 향이 퍼질 때 글감도 함께 피어오르길 기대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이때 지브리 스튜디오의 노래까지 틀어 놓으면 세상의 모든 공간이 여행지가 된다.

 조향사가 영감을 통해 만든 향기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다채로운 영감을 불어넣는다. 향을 설명하는 문구들을 보면 이보다 낭만적인 시가 어디 있을까 싶다.


 -미드썸머나잇: 한여름 밤의 시원함이 진하게 담겨 남성 스킨처럼 상쾌한 무스크향.

 -클린코튼: 햇볕을 쬐고 있는 새하얀 시트처럼 순수하고 청순한 향.

 -세이지 앤 시트러스: 세이지 향과 라임, 레몬 등의 시트러스 향 조화가 포근하면서 정신집중에 도움을 주는 향.


 향기를 소개하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늘 기분이 좋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설렘을 느끼게 되니까. 그런데 세이지 앤 시트러스 향은 위의 문구로는 설명이 영 부족하다. 이국적이면서도 많이 맡아본 듯한 이 향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개인적으론 라임, 레몬, 시트러스의 향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조금 의아하지만 그래서 더 좋다.

 똑같은 향을 맡더라도 각자 느끼는 바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새이지 앤 시트러스 향기를 우디하고 부드럽다고 설명하고, 어떤 이는 화한 시원한 향이 난다고 설명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향은 그저 글을 쓰게 만드는 향이다. 마음과 몸이 완전히 릴렉싱 된 상태로 포근한 침대에서 맡는 마사지 샵의 향기 같기도 하고. 성공과 여행을 꿈꾸게 만드는 향이다.


 기호와 낭만과 추억과 향기. 이들이 만나면 평생 잊지 못할 향수가 탄생한다. 글 또한 그러하다. 남이 쓴 글에서 내 마음이 읽히고 내 추억이 일렁이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글이 된다. 사람들이 마음으로 킁킁거리며 읽는 글을 쓰고 싶다 고백을 했었다. 나를 제대로 표현하는 최고의 방법은 역시 글이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조향사가 된다. 글을 통해 나의 향기를 발현하는 작업은 언제나 설렌다. 진솔함으로 각 문장을 조향 하며 오늘도 부지런히 나의 글을 세상에 흩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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