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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Apr 03. 2024

얼굴 화끈거리는 글짓기 대회

Oh my......

 친구들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던 나를 바꿔준 도구는 책과 글이었다. 입을 꼭 다물고 그림자처럼 살던 아이가 글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다. 이름 석 자 말하는 것도 부끄러워했던 어린 소녀는 여러 글짓기 대회를 도장 깨기 하면서 주목받기를 즐기기에 이르렀다. 교내 글짓기 대회, 도 대회, 백일장 등 글 실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상 맛을 본 내게 글짓기 대회란 자아실현의 너른 벌판이었다. 이런 내게 백일장에 얽힌 오랜 비밀이 있다.


 교내의 전교생이 참여하는 글짓기 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전쟁"이었다. 칠판에 하얀 분필로 크게 적힌 두 글자 '전쟁'이라는 단어를 보며 어떤 글을 쓸까 고심했다. '전쟁. 전쟁이라. 전쟁...' 고민 끝에 요술 연필이라도 쥔 듯 술술 글을 써 내려갔다. 원고를 제출하고 내가 쓴 글이 더 마음에 들어 은근한 미소까지 지었다. 며칠 후 수상자 목록이 발표 됐다.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상을 탄 친구들은 대체 어떤 글을 썼는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수상 작품들은 전시가 되거나 교내 소식지에 실렸다. 수상작이 발표되자마자 재빨리 글을 읽었다.


 헐.

 이런.

 맙소사.


 모든 수상작이 대한민국의 가슴 아픈 전쟁사를 언급하고 있었다. 나란 녀석은 출제 의도를 한참 빗나간 글을 제출했더랬다. 중학생씩이나 됐던 내가 썼던 글은 쉬는 시간의 학교 풍경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부끄럽고 생뚱맞다. 복도를 달려 다니는 학생들, 북적대는 매점, 왁자지껄한 교실 풍경은 우리들만의 신나는 전쟁이라는 시를 썼던 나는 너무 부끄러워 도로 글을 훔쳐 오고 싶었다. 선생님들께서는 알 만한 녀석이 쓴 희한한 글을 읽으시고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을까. 전쟁을 주제로 그토록 독창적인 글을 쓴 놈은 전교생 중에 나 하나였을 것이다. 자격 미달의 글을 쓰고서 남몰래 만족했던 걸 생각하면 자다가도 연필 킥이다.


 혼자 만족스러운 글은 쓰고 싶지 않아서 나름 진지한 심사를 거친다. 일차적 심사위원은 바로 나 자신이다. 주제에 맞는 글을 썼는지 평가하기 위해 미리 써 놓은 글을 시간 차를 두고 읽는 편이다.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싶은가.

여기에 이 문장이 꼭 필요한가?

내가 전달하려는 바는 무엇인가.

 공들여 쓴 문장이라도 전체적인 흐름과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삭제한다. 때론 완성한 글을 통으로 버리고 다시 쓰기도 한다.

 '전쟁' 글짓기 대회와 같은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 내 글과 자주 대화하는 편이다. 최고의 글짓기 공부는 내가 쓴 글 다시 보기이다. 자화자찬과 퇴고의 노력은 구의 비율이 딱이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부족한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있어도 부끄러운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적어도 내가 쓰고 싶어서 쓴 글만큼은 말하려는 바가 정확하며 충분한 설득력이 있어야겠다.

수줍은 노을 (사진: 미세스쏭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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