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있잖아 백순대 사건

백수 말고 직장인 말고 직업인

by 미세스쏭작가

여동생이 백순대 볶음이 먹고 싶다기에 인터넷으로 백순대 밀키트를 주문했다. 다음날 새벽 배송으로 도착한 백순대 볶음을 나눠 먹을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있잖아. 백순대."

백순대 밀키트가 도착했다고 말하려는 찰나.

"응. 그래. 언니는 백수지."

동생이 '나 백수인데'로 잘못 알아듣고 재빠르게 팩트 폭격기 급의 응답을 했다. 어이가 없고 재밌기도 한 상황인지라 "아이 씨."라는 반응으로 응수했다. 그러자 여동생은 본인이 통화에 집중을 안 해서 내가 성을 내는 줄 직한 한방을 날렸다.

"왜? 듣고 있었어. 계속 말해. 언니가 백수인데 그게 왜?"


그 후로 '백순대'는 나를 지칭하는 담백한 별명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재취업과 퇴직을 반복하며 수시로 자발적 백수가 되곤 했다. 그래서 백순대라는 별명이 짜증 나면서도 내 차명처럼 느껴졌다.


처음 두세 번 내가 자발적인 백수가 되었을 때 온 가족과 친척들은 나를 걱정하며 우려의 눈빛을 보냈다. 스스로를 깊이 알지 못했던 시절의 나는 남의 시선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고 중요시했다. 그래서 실업자, 백수라고 불리는 것이 너무 싫고 괴로웠다. 겉으로는 "백수 말고 백조라고 불러." 여유로운 척했지만 낙인이 되는 것이 무서워서 얼른 다시 직장에 들어가곤 했다. 재취업을 잘도 하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대체 면접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었다. 많은 지원자들 가운데 나를 채용해 주신 분들께 참으로 감사했다. 그러나 나는 안정적인 직장인보다도 좁은 길을 걷는 직업인이 되기를 갈망했다.


내 꿈은 '작가 강사'이다. 읽고 쓰는 것만큼은 늘 꾸준히 했고 기회를 잡아 강의도 하러 다녔다. 자격증을 따고 CS 강의, 스피치 강의, 연애 강연, 의무 교육 강의, 청소년 지도 강의도 했는데 거의 열정 페이였기 때문에 다시 맞지 않는 직장에 몸을 담그며 일에 치이고 체력은 고갈되고 직업은 멀어지는 쳇바퀴를 돌다.


드라마 '쌈 마이 웨이'서 마이크 또라이로 불리는 최애라를 보며 매회 감정이입이 되고 울컥했다. 프리랜서 직업인이 돼보겠다고 블로그도 운영하고, 추운 겨울날 전단지도 붙이러 다니고 오만 삽질은 다해봤는데 그래봤자 나는 수입이 없는 백수로 머물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직장인이 되고자 했을 때 나를 받아주는 회사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무섭고 암울했을까.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온몸에 강사의 피가 흐르는 면접의 달인 아닌가.


좋은 직장에서 제때에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지만 내게는 직장과 직업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사람들이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게 가장 어려웠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괴로워서 자꾸 편안함을 거슬러 올랐다. 이성과의 연애로도 채워질 수 없는 꿈을 향한 짝사랑. 내 청춘은 꿈 때문에 항상 외로웠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다. 편안하고 쉽게 사는 것 대신 내 속에서 솟아 나오는 것을 따라 어렵게 살고 싶다. 여전히 그러하다.


이토록 장렬한 다짐을 하는 예비 작가(백수)의 눈에 요 며칠 거슬리는 물건이 있어 안 보이는 곳으로 멀리 치워버렸다. 그 물건의 이름은 바로 편백수. 공병에 덜어서 사용하던 '편백수'가 자꾸만 백수로 읽혀 '응? 저요?' 하고 뜨끔했던 것이다. 항상 내편인 남편은 마음 편하게 살라고, 백수가 아니라 주부라고 나를 다독이는데 나는 금전의 유무를 떠나 직업인이 되고 싶다. 반골 기질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 작가의 꿈을 향해 매일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련다. 구하고 찾고 두들기다 보면 열리겠지. 없는 지구력 쥐어짜 내야 하는 회사인이 될 바는 백수(白壽)까지 백수의 삶을 누리 싶다.

백순대 보고 놀란 백수 편백수 보고 놀란다. -미세스쏭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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