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태어난 나는 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 여름엔가벼운 티셔츠나 원피스에 귀여운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재미가 있다. 진분홍 장미와 초록색 아크릴 구슬이 어우러진 팔찌는 여름이 되면 보석함에서 기지개를 펴고 나온다. 누구에게나 그 계절을 알리는 상징적인 아이템이 있을 터. 내겐 장미 팔찌가 그러하다. 겨울과 달리 여름은 색감이 톡톡 튀면서도 장난스러운 액세서리를 착용하기에 딱인 계절이다.
액세서리 착용을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여름만큼은 아기자기한 장신구로 마음을 장식한다. 여름 느낌이 물씬 나는 패션 아이템을 걸치면 흥얼흥얼 콧노래가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저 멀리 달그림자 시원한 파도소리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질 않네." 요즘 사람들은 모를 옛날 노래의 가사이다. 초교생 때 담임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노래인데 날이 더워지면 매미소리보다 먼저 내 귓가를 두들긴다. 그러면 나는 또 어김없이 설레고.
휴가 계획이 잡히면 '무얼 먹고 무얼 할까?'를 생각하기보다 '휴양지에 가서 무얼 입을까?'를 즐거이 고민한다. 결국엔 가장 편하고 가벼운 옷가지를 선택하지만 작은 여행 가방에 챙겨 가는 액세서리는 기분을 배로 들뜨게 한다. 쇼핑몰 사이트에서 아크릴 장미 팔찌를 보자마자 어린 시절에 아껴 착용하던 두 가지 액세서리가 생각났다.
어릴 적 엄마께서 시장에서 사주셨던 일명 귀걸이 머리띠. 반짝이는 구슬이 주렁주렁 달린 머리띠는 어린 소녀의 미적 욕망을 제대로 자극했다. 귀걸이 머리띠만 하면 공주나 미스코리아로 변신하는 듯한 착각이 발동해 괜히 눈을 더 크게 뜨고 몹쓸 예쁜 척을 했었다.
여러 개의 작은 조개를 촘촘하게 엮어 만든 목걸이는 나의 여름 아이템 제1호였다. 희소성이높은 액세서리인지라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보물처럼 아끼며간직했는데 이사를 하면서 잃어버렸다. 소중한추억이 서린 아이템들을 대신할 순 없지만 어린 시절의 감성을 끄집어내는아크릴 팔찌는 보기만 해도기분이 좋아진다.
보통 액세서리는 격식을 갖추고 예뻐 보이기 위해서 착용하지만 장미 팔찌는 오로지 내 만족을 위한 아이템이다. 사랑하는 계절을 반기는 마음, 여전히 소멸되지 않고 남아 있는 소녀 감성을 충족하는 키치 한 아이템이 있어 여름 나기가 더욱 즐겁다. 좋아하는 것을 더 열심히 좋아하겠다는 심리를 작은 아이템으로 표현하며 여름을 맞이한다. 싫은 데 이유 없고 좋은 데 이유 없듯이 난 그냥, 언제나 여름이 좋다. 할머니가 돼서도 유치하고 장난스러운 모양의 액세서리를 끼고서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 마음만은 팽팽한 상태로 다시 오지 않을 나의 젊은 계절을 추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