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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이 '채팅방 나가기'를 누르면?

올드 하우스여. 일어나라!

by 미세스쏭작가

올드하우스의 채팅방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주민들의 성향 심히 폐쇄적이고 고요했다. 혹자는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카피바라보다 더 온순하다고 했다. 마치 코알라 집단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극에 둔감하고 잠을 자는지 깨어 있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움직임이 둔한 코알라 말이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일일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이기적인 처사이지만 남의 불편을 보고도 매사 모르는 척하는 것 또한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올드하우스 주민들은 후자였다. 임산부가 관리실에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모르쇠, 관리실 직원들서로 일을 떠넘기고 거짓말을 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주민들을 보니 분통이 터졌다.


미화 직원이 제멋대로 주민들의 우편물을 끄집어내서 가져간 일이 몇 차례씩이나 있었다. 개인 정보가 담긴 우편물과 함께 잠시 보관해 둔 물건까지 사라져 버렸다. 관리실에 문의하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바닥에 버릴까 봐 미리 미화 직원이 손 넣어 빼는 건데요." 그들의 몰상식과 당당함에 기가 막혔다.

"남의 개인정보가 담긴 우편물을 마음대로 처리하시면 안 되죠. 그리고 물건까지 함부로 손대시면 어떡해요?"

"뭐. 저는 모르죠."

이번이 처음이 아닌지라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경찰에 신고했다. 관리실 직원은 오히려 큰소리치며 경찰 분께 난 모르는 일이니 당장 나가라, 뭐 어쩌라는 거냐며 고함을 쳤다. 경찰 두 분이 내게 와서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관리실 직원이 전혀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대화도 통하지도 않네요. 너무 심각하네요. 입대의를 통해 직원들부터 바꿔 보세요." 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경찰 분들께 감사하고 죄송하단 인사를 드렸다.


이런 부당한 사안들에 대해 단체 채팅방에 알리고 반복적인 우편 분실에 관해 건의지만 태반이 겨울잠을 자는 듯했다. 다들 타성에 젖어 답을 찾으려 하지도, 발전을 바라지도 않는 것 같았다.

기운이 쭉 빠졌다. 여태 내가 애써온 건 하등 쓸모없는 짓이었구나. 나는 분노하며 '채팅방 나가기'를 눌렀다. 바이 바이. 잘 먹고 잘들 사슈.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끈하게 방을 나오려고 했는데 핸드폰에 이런 알림 창이 떴다.

"방장은 방을 나갈 수 없습니다."


나는 실소를 터뜨리며 뒤숭숭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또 계절이 흐르고 올드 하우스 채팅방엔 새로운 인연들이 점점 더 몰려들었다. 내가 겪었던 불편을 다른 누군가가 똑같이 겪고 도움을 호소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그때마다 함께 고민하며 이웃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보태기 위해 노력했다. 공감, 위로, 정보 공유, 회의 참여, 민원글 남기기 등등에 동참하며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어 보자 했다.

가장 달콤해야 할 신혼 초기에 관리실의 불친절과 층간소음 고충으로 인해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집이라는 존재 자체가 두렵고 싫어서 홀로 동네를 배회하며 귀가를 미루던 시간들이 많았다. 저기서 뺨을 맞았으면 여기에 한 명쯤은 품어주는 사람이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심정으로 올드 하우스 채팅방을 만들었다.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들길 바라며 익명의 방장은 오늘도 소소한 친절을 베푼다.


"이사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어려운 일이나 궁금한 일 있으시면 언제든지 알려주세요."

"직원 분이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다고요? 속상하셨겠어요. 저도 겪어 봐서 잘 알아요."

"갑자기 온수가 안 나온다고요? 관리실에 문의해 보세요. OOO-OOOO 여기로 전화하시면 돼요."

"베란다가 비 오는 경우에만 젖는다면 실리콘 코킹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보일러 밸브는 싱크대 밑에 있어요. 거실 건 제일 왼쪽 밸브예요."

돈 안 받고도 이렇게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이웃들을 응대하는데 말이야!

웬만해선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움직이면 더 무섭다. 코알라처럼 온순하던 남편이 마침내 정의의 형사 마동석으로 변신하고야 말았다.


뚜둥!(넷플릭스 각이다.)

'시끄럽게 나가기'는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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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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