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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남편은 멋있었다

by 미세스쏭작가

선선한 가을밤의 공기를 마시기 위해 밖으로 나온 우리 부부. 종이상자를 버리고 아파트 부근을 산책하려는데 매캐한 담배 연기가 코를 찔렀다. 바람이 고요히 잠든 터라 간접흡연의 고통은 더욱 컸다. 남편과 나는 담배 냄새가 나는 쪽을 한껏 째렸다. 익숙한 얼굴의 남성이 담배를 피우며 분리수거 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분리수거 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모자라 이번엔 불붙은 꽁초를 든 채로 유유히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빌런. 공동 주택 단지 내에서 몹쓸 행동을 하는 인간은 다름 아닌 관리실 직원이었다.

'또 저 사람이네!?'

우리와 몇 차례 부딪친 전적이 있는 데다가 불통에 안하무인이던 작자. 더는 말을 섞고 싶지도 않은 요주의 인물이었다. 괜히 큰 싸움이 될 것 같아 말없이 자리를 뜨려는데 남편이 입을 열었다.


"금방 그 사람 관리실 아저씨 아니야?"

"응. 맞아."

"그런데 지금 담배 피우면서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간 거야?"

"휴. 여긴 진짜 답이 없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늘은 그냥 안 넘어가야겠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남편은 지하 주차장에서 아저씨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했다.

"저 사람 말도 안 통하잖아. 괜히 싸움 나는 거 아니야? 나는 자기 옆에 있을까? 아님 다른 데로 가 있을까?"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는 아내에게 "저기로 가 있어. 나 혼자 이야기할게."라고 말하는 남편.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남편의 곁을 비울 순 없었다. 짧은 찰나에 시각과 장소까지 모두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해 두었다. 웬만해선 누구와 부딪치지 않지만, 불의의 상황에서 물러터지게 행동하지도 않는 것이 우리 부부의 공통점이다.


곧이어 문제의 직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편은 굵고 당찬 목소리로 아저씨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선생님. 지금 지하 주차장에서 담배 피우신 거예요?"

"예. 피웠습니다."


왓 더!?

뭐 이리 당당해? 긴장은 십에서 백이 되었고 심장도 마구 방망이질 쳤다.


"그렇게 하시는 게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하세요?" 남편은 아저씨에게 반 발짝 다가가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아저씨가 마른 입을 쓱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남자 둘의 맞대결은 생각보다 빠르고 간결하게 끝이 났다. 입을 꾹 닫고 있던 나는 비로소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주민들한테는 지정 장소에서만 흡연하라고 방송도 하고 아파트 내에 경고 현수막까지 붙이셨잖아요. 그런데 왜 아저씨는 주민들 앞에서 보란 듯이 담배 피우세요? 화재 위험도 있는데 지하 주차장에서까지 흡연하시면 어떡해요. 주민들이 담배 연기 때문에 힘들다고 그렇게 수 차례 고통을 호소했는데. 관리실 직원들이 이토록 멋대로 행동하는 아파트 요즘엔 찾기도 힘들어요." 따발총. 빵. 조준 발사!

아저씨는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제발 부탁 좀 드릴게요. 수고하세요." 나의 인사를 끝으로 상황은 일단락 됐다.


얼마 전 직원들의 흡연 문제로 민원을 넣었을 때 아파트 소장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우리 직원들 중에선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건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런 아파트에서 목소리를 내고 규범을 논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관리실 직원들의 태도나 직무와 관련하여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우리 또래의 주민들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단 소식을 접한 남편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여러 규정집까지 뒤져가며 똑똑하게 맞서는 남편을 보며 올드 아파트 일원으로서 고마웠다. 아내로서는 든든하고 자랑스러웠다. 갈 길이 멀지만 우리가 도움을 청할 때 함께 동행해 줄 수 있는 이웃들 역시 서서히 늘어가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올드 하우스의 기적이다.

최소한의 기본은 지키면서 권리를 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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