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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Jun 07. 2023

동심(童心)을 지키는 동심(同心)

네게 달을 따다 주고 싶어

 영상 통화를 하는 도중 조카 담이가 밤하늘의 달을 따다 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이웃집 지붕에 걸려 있는 크고 붉은 달을 따 달라며 큰 상자를 들고 친척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여동생과 나는 달을 담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큰 상자를 이고 지고 작은아빠 댁으로 갔다. 부모님과 친척들은 우리의 발칙한 등장에 박장대소를 하시면서 귀엽다고 웃으셨다. 어른들의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며 어린 마음에 불쑥 민망함과 실망스러움이 찾아왔다. ‘내가 깜박 속았구나’ 빈 상자를 들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면서 보름달 같던 기대가 초승달처럼 힘없고 가늘게 변함을 느꼈다. 그 후로 우린 다시는 달을 따 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게 되었고 달은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음을 배우게 되었다.

  

 다소 엉뚱한 상상이지만 달을 갖고 싶은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순간 긴장하면서 조카에게 물었다. “이모가 달을 선물하면 뭘 하고 싶은데?” 조카는 긴 속눈썹을 두어 번 깜박이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물속에 달을 넣고 연구하고 싶어요.” 답을 듣는 순간 정말 제발, 너무나도 달을 따다가 바치고 싶은 심정이 됐다. 물속에 달을 넣고 연구도 하고 유치원에 가져가서 친구들과 함께 보고 싶다는 조카에게 차마 달은 가질 수 없는 것이라 말하지 못했다. 이모가 다음번에 만날 때 꼭 달을 따서 가져가겠노라 거짓말을 질러버렸다.

 ‘집에 있는 달 조명을 가져가 볼까? 이미 가지고 놀아봤기 때문에 실망할 거야. 달 인형을 사볼까.’ 고민 끝에 달 대신 내가 구매한 건 커다란 우주 그림책이다. 조카가 사랑하는 ‘진짜 진짜 재밌는 그림책 시리즈’는 한 번도 실망을 일으킨 적이 없었기에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 하늘에 있는 달은 모두가 사이좋게 공유해야 하므로 대신 책 속에 달을 담아 왔다고 둘러대면 조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몹시 궁금하다. 물속에 달을 넣어서 연구하고 싶다니 정말 깜찍하고 귀여운 꼬마 박사이다.


 아이들은 동화작가보다 기막힌 이야기를 써내고 지브리스튜디오보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세계를 그리며 산다. 꼬마 작가님들의 세계로 초대될 때는 어른의 이성과 시선을 저 멀리 내려놓야 한다. ‘멋진 생각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맞장구만 잘 쳐도 그들에게서 아름다운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이모는 사마귀가 좋아요? 메뚜기가 좋아요?” 부푼 기대를 안고 묻는 조카에게 “이모는 곤충이 무서워요.” 하고 답했던 순간이 지금도 후회가 된다. 겁이 많은 조카는 순간 얼굴 표정이 공포에 질리며 ‘내가 좋아하는 곤충은 무서운 친구들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듯했다. 여동생의 매서운 눈초리에 얼른 기지를 발휘하여 이모는 사실 모든 곤충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조카는 안도하며 폴짝폴짝 메뚜기 흉내를 냈다.


 뱀의 사진을 보며 아름답고 귀엽다고 표현하는 조카에게 다시는 ‘이모는 뱀이 무섭네. 싫네.’라는 소리 따위는 하지 않겠다. 달을 따달라고 하는 조카에게 귀엽다고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함께 달을 낚을 낚싯대를 만드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에 동화 속에 나오는 악어에게 편지를 썼다가 나의 순수함을 칭찬하는 어른들의 반응을 보고 편지를 꼭꼭 숨겨버렸던 기억이 난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이들 앞에서 "순수하네. 귀엽다."라고 어른의 칭찬을 건넬 바에는 환한 미소를 지어주는 편이 좋으리라.

 아이들의 동심(童心)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심(同心)으로 그들의 내면에 공감하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다. 우리 똑똑함과 해박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잠시 그치고 그들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이여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을 통해 어디서도 체험하지 못했던 멋진 창의력과 독창성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조카가 부디 책 속의 달을 반갑게 친구로 맞아 주길 바란다. 다섯 살 선생님 덕분에 오늘도 나는 두근두근 살짝 설렜다.

'달님, 같이 놀아요' 이 책을 보고 달을 따기 위해 친척 집에 갔던 적이 있다. 동심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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