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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May 22. 2023

이상한 놈과 보디가드 남편의 촉

나의 눈치코치를 믿지 말자

낯선 남자와 남편과 나 이렇게 셋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이동하는데 뭔가 살벌한 느낌이 들었다. 암흑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울 속을 이끌리듯 응시했다. 거울 속에는 나를 쳐다보는 낯선 남자의 눈과 이글이글 불타는 남편의 눈이 있었다. 흠칫 놀라는 나와 낯선 남자의 눈이 거울 속에서 마주쳤다. 딩동. 드디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단둘이 있게 되자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왜 그렇게 남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봐?” 저 새끼 뭔 새끼 하며 조심하라고 씩씩거리는 남편 때문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뭐 이리 심각해. 그 사람이 나를 매번 뚫어져라 쳐다봤다고? 내가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상황이 그랬다면 진작 알고도 남았겠지.”

남편은 답답하다는 듯이 앞으로 그놈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지 마라, 그놈이 보이면 무조건 피해라, 조심해라 신신당부했다.

‘아. 우리 남편은 정말 나를 너무 사랑한단 말이야.’ 도끼 병에 젖어서 신이 난 내 뒤통수에 대고 남편은 문단속도 잘하라고 단단히 일렀다.


친구 결혼식에 가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한껏 꾸미고 외출했니 기념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고 싶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나무와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다. 우리 남편은 사진을 매우 잘 못 찍는 편이다. 빛이 부신지 눈을 반쯤 뜨고 연속 사진을 찍듯 버튼을 눌러대는 남편. “됐어. 그만 찍어.” 이번에도 건질 사진이 없겠다 싶은 마음에 핸드폰을 확인하지도 않고 가방에 넣었다.

그런데 며칠 후 사진을 확인하고서 적잖이 놀라버렸다. 남편이 찍어준 사진마다 문제의 그놈이 곳곳에  숨있었다. 앞모습, 옆모습, 특히 뒤돌아서 나를 보는 표정과 얼굴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남편은 분명히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냐며 CCTV 설치까지 논했다.

놈은 전부터 나를 지켜봤고 남편은 전부터 놈을 지켜봤단다. 남편의 촉에 흠칫 놀랐다.  눈치코치도 이제는 믿을 것이 못 되는구나.


내 시야에도 어쩔 수 없이 그놈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버스를 타러 갈 때마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던 놈. 산책 갈 때마다 어슬렁거리며 따라오던 놈. 그게 전부 같은 놈이었다니.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놈의 기괴한 모습 곳곳에서 포착되었다. 남의 가게 뒤 창문으로 염탐을 하는 수상한 행태, 아파트 주민 중 여자만 골라 관찰하는 모습, 여성이 보이면 담배 한 대를 새로 꺼내 물고 따라가는 추태까지. 놈은 나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젊은 여자들만 보이면 눈이 뒤집혀 버렸다. 몹쓸 광경을 목격한 후로 나는 놈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흡사 관음증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놈을 긴 시간 방관해야 하는 주민들의 심정이란. 본인의 몹쓸 행동을 다들 경계하고 있건만 갈수록 돋보이는 짓을 골라서 하는 놈이다. 그를 무방비 상태로 만날 때마다, 과민반응을 하며 나를 바라볼 때마다 애써 외면하지만 속은 어벤저스 헐크로 변신하는 심정이다. 그나저나 아파트에서 놈과 마주치면 눈에 쌍불을 켜고 레이저를 발사하 남편이 왜 이렇게 웃기는지 모르겠다. ‘우리 와이프 절대 지켜’ 하는 표정으로 눈싸움을 하는 남편에게 이제는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여보. 사실은 내가 그놈보다 더 쎄. 나 발차기도 잘하고 호신용품도 가지고 다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도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항상 경하며 남편에게 걱정 끼치지 않아야겠다. 혹시라도 놈이 선을 넘어오거든 제대로 정신교육을 해줘야지. (엄마식 표현: 아주 직사박사오박사를 내버려 콱 그냥!)

조심해. 너만 지켜보는 눈이 있는 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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