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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Jul 20. 2023

내가 받은 은혜를 헤아리며 산다

Amazing grace

 은혜는 값없이 얻는 선물이라 배웠다. 주는 사람이 값을 매기지 않고 베푸는 은혜. 하나 받는 이는 그 값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은혜를 입은 이의 삶에는 자연스레 마음의 풍요감사가 넘친다. 은혜라는 제목의 CCM을 자주 찾아 듣는다.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당연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듯한 내 삶 돌아보면 촘촘한 은혜로 이어져 있다. 하나님은 매일 내게 크고 작은 은혜를 베푸신다. 때론 생판 모르는 남이 내게 값을 매길 수 없는 은혜를 베풀기도 한다.


 초등학생 때 계곡에 놀러 갔다가 물에 빠졌다. 함께 놀던 친구가 힘과 덩치로 나를 누르는 탓에 물속에서 사경을 헤맸다.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쳐봤자 더 많은 물을 먹을 뿐이었다. 온몸에 힘이 풀렸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던 찰나에 젊은 남성분이 나를 급히 들어 올렸다. 친구도 나도 낯선 이에 의해 목숨을 건졌다.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릴 구출하고선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웃으며 돌아서던 그분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분께 입은 은혜 덕분에 두 배로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

 아파트 화재 인해 속에 삼 남매가 갇혔던 적도 있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나는 불구경 가자며 여동생과 남동생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지독한 연기가 눈과 코를 가렸다. 열린 창문을 통해 살려달라고 소리지르자 까마득한 외부에 울부짖는 몇몇 어른들이 보였다. 그 광경마저 연기가 가려버리자 어떻게든 우리 모두 탈출해서 생존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앞장을 섰다. 동생들에게도 이불을 씌우고 따라오라고 소리 지르면서 보이지도 않는 계단을 걷고 또 걸었다. 잘 따라오라고 나를 따라와야 한다고 외치면서 연기가 걷힐 때까지 걸었다. 산소가 들어오는 시점에서 맥이 풀려 발로 쓰러진 나를  남자가 안고 달렸다. 아파트 맞은편에서 새시 가게를 하시는 이웃 삼촌이었다.


 나와 함께 계단을 내려오던 여동생과 남동생은 연기를 이기지 못하고 도로 집 쪽을 향해 갔고 아파트 옥상 문 앞에서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우린 어마어마한 가스를 들이켜고 각막이 손상되고 호흡곤란을 안은 채로 각각 병원으로 이송됐다.

 먼저 구출된 나는 혼자 살기 위해 탈출한 파렴치한 장녀가 돼 버린 것 같았다. 친척들이 "둘째가 막내를 끝까지 챙겼다"는 칭찬을 할 때마다 내가 한심하고 원망스러웠다. '왜 나만 먼저 구출이 되었나. 동생들이 흩어졌을 때 어떻게 그걸 모르고 멍청하게 계속 걸어 내려왔나.' 이따금 화재 사건이 생각나면 우릴 구해주신 의인들을 향한 감사와 동시에 죄책감이 들었다.


 사고가 있고 이십 년도 훨씬 지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벌레 한 마리만 나와도 가장 먼저 도망을 치는 겁쟁이가 화재 현장 속에서는 한치 망설임도 없이 앞장을 섰단 사실을. 겨우 열한 살이었던 나는 어떻게든 동생들을 살리고 싶었다. 계단에서 넘어질까 봐 멈추지 못하고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일정한 속도로 계단을 내려왔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에 온몸이 후들거렸지만 소리 지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잘 따라와야 돼. 잘 따라오고 있지?" 이불의 무게가 동생들의 끌어당김이라고 착각했던 나는 무슨 일을 당해도 내가 먼저 겪고 알려줄 요량으로 앞장을 섰다. 어차피 그들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연기가 목을 긁어대듯 고통스러웠지만 몇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소리를 지르면서 잘 따라오라 했다. 숨통이 끊어질 것 같았지만 홀로 더 빠르게 내려가겠다고 속도를 높이지도 않았다. 나름 최선의 용기와 방법을 동원했지만 혼자 구출됐을 때 일이 크게 잘못 됐음을 직감했다. 기침이 멈추자마자 내가 찾은 이는 부모님이 아니라 나의 동생들이었다. "내 동생들이 없어요. 동생들이 위에 있나 봐요." 그래도 일단 병원으로 가야 한단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가장 먼저 의료진들에게 동생들의 소식을 물었다. 가스로 배가 심하게 부풀어 있는 남자아이를 가리키며 "쟤는 누구예요?" 나에게 알려달라 했다. 그 아이가 내 남동생이라는 소식고 절망하며 “무서워요. 어떻게 해요.” 간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병원에 있던 어른들은 괜찮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내가 울부짖으면 병원에 해가 될까 봐 절규와 울음을 안으로 모두 삼켰다.


 생사를 다투는 상황에서 앞장서는 용기를  건 그들이 내 목숨 같은 존재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아파트의 꼭대기 층이었기에 내려가다 연기가 아니라 불길을 만나게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의 아니게 저 혼자 탈출했던 어린 나를 만나 제대로 대화하고 쓰다듬어 주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짜 용감했구나. 어린 네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구나.”

 우리 삼 남매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부모님과 작은아버지와 이웃들 덕분에 내 삶에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평생에 트라우마를 간직하게 되었지만 우리 삼 남매는 기적처럼 화상 자국 하나 없이, 시력도 잃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빠와 함께 치킨을 다가 본능적으로 바다에 몸을 던져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했던 이야기를 들다. 계곡 사건이 떠올랐다. 아빠가 베푼 은혜 내게 돌아온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나의 베스트 프렌드인 여동생과 남동생표현하지 못했지만 너희가 내 가족이라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즐겁고 행복하다고,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은혜라고 말하고 싶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화재 후유증도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잘 이겨냈.


 열한 살짜리 꼬마는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왜곡된 죄책감을 벗어던졌다. 혹시라도 사고의 현장에서 홀로 빠져나온 이들이 있다면 죄책감에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았으면 한다.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 논리는 아니지만 누군가를 구할 여력이 없었다면 재난의 현장에서 자신이라도 구출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가 살아 나 역시 그만큼 더욱 감사하며 잘 살아내겠다. 내 삶을 엮고 있는 촘촘하고 따스한 은혜가 오늘도 나를 살린다.



-오송지하차도 의인들의 용기와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이웃들을 살려주신 손길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청주 오송 지하차도 희생자 분들, 예천 수색 해병 대원 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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