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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Sep 20. 2023

안과 오픈런의 결과

작은 병 키워 큰 병 된다

 "여보. 안과 언제 갈 거야?"

 "이번 달 말까지는 계속 바빠. 중요한 일 끝내고 가야지."


 백내장으로 인해 시력 측정이 되지 않은 지 오래된 남편. 일보다 당신 눈이 더 중요하다고 수도 없이 말했지만 안과 검진을 미루고 미룬다. 백내장 검사를 받은 후에 그의 안경을 바꿀 계획이었는데 기다리다 지친 안경이 제 모습을 바꿔 버렸다. 코 부분은 심히 틀어지고 안경알은 닦이지 않는 흠집으로 가득했다. '해리포터야. 뭐야.' 잠든 남편이 탁상 위에 올려둔 안경을 닦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홀로 안경점을 방문했다.

 그의 이름 석 자와 생년월일을 말하고 기록된 도수로 안경을 맞추길 원한다고 직원 분께 말씀드렸다. 그런데 검안사 분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이렇게 물으셨다. "안경도 중요하지만 백내장이 꽤 오래됐는데 혹시 병원을 안 가시는 이유가??" 등 떠밀어도 안 가는 남편 때문에 골치라고 답하며 "몇 년도부터 시력 측정이 안 됐나요?" 하고 되물었다. "오 년이 훌쩍 넘었네요. 백내장 이렇게 방치하시면 실명됩니다. 큰일 나요. 오늘이라도 당장 병원부터 가세요." 직원분은 내게 안경을 팔려고 하지 않으셨다. 대신 우리의 은인이 되어 주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휴가를 쓰라고 강권했다.


 "여보. 우리 내일은 무조건 안과 오픈런 해야 돼." 예약이 불가한 상황인지라 안과 진료 시작 시간 전부터 대기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안과 오픈런 예정과 동시에 엄마의 환갑 모임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얼른 진료를 받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뷔페를 먹으러 갈 계획이었다. 당일 아침이 되자마자 서둘러 씻고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런데 오픈런이 무색할 만큼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안과의 인기에 절망했다. 남편은 눈치 없이 "여긴 돈을 쓸어 담는구나."라는 말만 반복했다. '응. 곧 우리 돈도 쓸어 담을 거야.'

 책을 읽고, 멍 때리기를 하고, 눈을 감았다 떴다가 별 짓을 다 하면서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의 이름이 나란히 불렸다. "두 분 함께 들어오세요." 나는 세 달 전에 은근슬쩍 돋은 다래끼를 방치한 댓가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남편은 아주 많은 정밀 검사를 거쳐야만 했다.


 동공을 여는 약을 넣고 대기 중인 남편을 뒤로한 채 홀로 수술대에 올랐다. "왼쪽 눈 맞으시죠?" 하고 묻는 간호조무사 분께 "네. 맞아요." 답하는 찰나였다. 왼쪽 눈이 아닌 오른쪽 눈에 정체 모를 약이 투여 됐다. "거긴 오른쪽 눈인데요?" 입 밖으로 헉! 하는 소리를 내는 선생님. 하아. 억울함과 짜증이 올라왔다. 마취약을 오른쪽 눈에도 투척한 어리숙한 그녀 덕분에 양 눈이 모두 뻑뻑하고 불편했다. "수술은 다른 분이 하시는 거 맞죠?" 공포감에 사로잡혀 물었더니 곧 의사 선생님이 오실 거란다.


 의사 선생님은 나긋나긋 친절한 목소리로 "조금 아플 거예요. 따끔. 따끔." 주문을 걸며 눈에 마취 주사를 놓았다. 눈을 아래로 깔고 있으라는데 눈알이 이리저리 마음대로 굴러다닐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매직 아이가 된 나는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어떻게든 아래를 보려고 애를 썼다. 뜨겁고 번쩍이는 것이 눈에 몇 번이고 와닿았다. 게다가 다래끼 크기가 많이 커져서 한참을 긁어냈다. 눈꺼풀이 난도질 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큰 통증에 정신이 오락가락. 치과의 공포와 고통은 뭣도 아닐 만큼 아팠다. '다래끼 수술이 원래 이렇게 아팠었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내 눈에 드디어 거즈 안대가 씌워졌다. 수술대에서 내려온 나를 본 남편이 "괜찮아? 많이 아파 보인다. 그냥 약을 먹지 그랬어." 몹쓸 위로를 건넸다.

 남편의 검사는 세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가족 모임은 취소 됐고 우리는 안과를 벗어나지 못한 채 점심시간을 맞았다. 피에 젖은 안대를 한 아내 옆에 동공이 열려 눈이 보이지 않는 남편. 이런 몹쓸 천생연분 같으니라고.

 

 마지막 남편의 상담에는 나도 함께 불려 갔다. "아내 분도 함께 들으세요. 그리고 아내 분 눈에서 피가 계속 나고 있으니 지혈하면서 들으세요." 나는 좌측 눈을 손바닥으로 꾹 누른 채로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남편의 눈은 실명에 이르기 직전인 상태였다. 워낙에 무던한 남편이라 백내장이 심각하게 진행 됐음에도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 이렇게 백내장이 심한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했다. 오십만 원 정도로 예상했던 수술비는 거의 삼 백만 원에 달했다. 남편이 안경을 벗고 건강한 눈으로 생활할 수 만 있다면 돈이 아까울 쏘냐. 안타까운 건 수술 시간과 위험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는 먹먹한 현실이었다. 그가 딱하단 생각이 들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 말을 잘 들으면 나쁠 게 없다는 잔소리 따윈 접어 두고 싶었지만 도무지 안 할 수가 없잖아? "우리 앞으론 병 키우지 말자." 몇 번이고 새끼손가락을 내밀고 도장 쾅을 받아 냈다.


 병을 방치한 결과 나의 콩다래끼는 월 플러스 원의 크기가 되었고 남편의 눈 상태는 말해 무엇하랴. 추석 전에 드디어 그의 수술 일자가 잡혔다. 기대하던 조카의 호캉스 생일 파티에는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 아쉽지만 역시 건강이 먼저니까. 남편의 병 수발에 최선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하며 기진맥진한 상태로 안과를 나왔다. 내일은 내과에 가서 남편 대신 피검사 결과지를 받아와야 한다. 얼씨구나. 이젠 내과 오픈런이 남았구나.


-온찜질을 통해 눈 다래끼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알아도 안 하는 게 문제)

-백내장 소견을 받은 경우 하루라도 빨리 정밀 검진을 받으세요. (당연한 소리)

-병을 키우면 1+1, 1+2, 1+3... 그 이상의 상황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지갑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사진 출처: 미세스쏭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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