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찹을 통해 아름다운 이미지를 찾은 빅찹 삼총사가 있다. 엄마와 여동생과 나의 남편은 구불구불 한 길을 돌고 돌아 빅찹(Big Chop)에 성공했다. 세 사람 모두 자신의 곱슬머리를 사랑하기까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시간도 꽤나 걸렸다. 빅찹은 자연 그대로의 머리카락 상태를 갖기 위해 열펌, 매직, 염색 등의 화학 시술을 가한 모든 머리를 잘라내는 행위를 일컫는 용어다. 곱슬머리 때문에 짜증 난다고 열변을 토하던 이들이 요즘엔 거울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상한 머리카락 없이 건강하고 풍성한 곱슬로 사는 그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십 대에 빅찹 한 사나이-
남편은 사람들에게 헤어스타일이 멋지다는 칭찬을 자주 받는 편이다. 나 또한 연애하던 시절에 그의 머리스타일이마음에 들었다. 풍성한 머릿숱에 굵직한 펌을 항상 멋들어지게 유지했던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가만 보면 멋쟁이야. 달마다펌을 하는 거야?" 한 달에 한 번씩 헤어 컷을 했던 그였기에 돈과 시간을 적잖이 투자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의 대답은 신기할 정도로 의외였다. "이거 내 머린데?" 타고 난 곱슬머리라가 저렇게 예쁠 수가 있다고? 고데기로 말아 놓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고급스럽기까지 한 그의 헤어가 순도 100%였다니. 반전이었다. 지금도 남편에게 펌 시술에 관련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머리 했네? 어디서 했어?" 남편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이렇게 답한다. "이거 원래 제 머리카락이에요." 사람들의 반응은 역시 비슷하다. "우와. 진짜야? 펌 한 건 줄 알았는데?" 사춘기 학생 땐 곱슬머리가 싫어서 스트레이트 펌을 종종 했다던 남편. 성인이 되고 곱슬기가 완화되자 본인의 헤어가 괜찮게 느껴졌고헤어 시술을 뚝 끊었다고 한다.
-삼십 대에 빅찹 한 여동생-
여동생 역시 곱슬머리 때문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두 아이를 양육하며 미용실에서 펌은커녕 컷도 겨우 하는 신세가 됐다. 열펌과 화학 약품을 삼가니 여동생의 마리칼에는 점점 윤기가 흘렀다. 구불구불한 곱슬은 굵은 C컬이 되었다. 머릿결이 건강해지자 본연의 헤어는 시술을 받았을 때보다 훨씬 빛나 보였다. 가족인 나조차 자주 "고데기했니? 펌 했니?" 하고 물었을 정도다. 내가 단골로 다니는 비싼 미용실에서 손님들에게 참고 차 보여 주는 헤어를 갖게 된 여동생이었다. "네 헤어는 내가 다니는 미용실에서 이십만 원은 족히 투자해야 가질 수 있어. 예쁘다."라고 말할 때마다 무심하게 "그래?" 하고 지나치던 여동생이 며칠 전에 더 짧은 기장으로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난 또 깜박 속아 세팅 파마를 한 것이냐 물었다. "아니. 내 머리야. 나 이번 스타일 완전 맘에 들어." 처음으로 본인 입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칭찬한 여동생이었다. 그녀가 앞으로도 자신 본연의 헤어를 사랑하고 건강하게 관리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육십 대에 빅찹 하신 엄마-
나의 사랑하는 한여사님은 가장 골치 아픈 곱슬머리의 소유자셨다. 인형 머리카락처럼 얇고 힘이 없는 엄마의 헤어는 뭘 해도 스타일이 살지 않았다. 엄마를 위해 두 딸이 여러 미용실을 수소문하고 다양한 스타일을 추천했으나 도대체 묘수가 없었다. "앞머리는 매직으로 펴고 나머지 헤어는 굵게 말아 주세요." 그 누구의 손길을 거쳐도 엄마의 스타일은 딱 일주일 정도만 유지 됐고 금세 더욱 심각한 헤어 상태가 돼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집 푸들 털보다 더 곱슬거리고 정신없었을 정도였다. 엄마의 예쁜 외모를 매번 헤어가 망쳐 놓으니 답답하고 덩달아 속상했다. " 엄마는 미용실에 가서 시술을 받으시는 것 자체가 너무 피곤하고 지친다고 하셨다. 그런 엄마께 빅찹이라는 단어에 대해 설명해 드렸고 여태 시술받은 머리칼을 전부 잘라내고 건강한 두피와 머릿결을 추구하실 것을 제안했다. 남편과 여동생의 헤어를 예로 들었고 엄마도 점차 자연스럽고 차분한 헤어를 갖게 되실 거라 희망을 드렸다. 엄마는 그래?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하시며 도전해 보겠노라 말씀하셨다. 일단 앞에서는반자동 맞장구를 쳐주시는 한여사님이신지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이틀 후, 숏컷의 헤어스타일을 한 중년 여성이 내 앞에 짜잔 나타났다. "헉. 엄마. 숏컷 엄청 잘 어울리는데?" 엄마는 사장님께서 고데기로 스타일을 잡아 주셨기에 멀쩡한 거라 말씀하셨다. 우리는 내심 걱정했다. 이제 머리카락도 짧게 자르셨는데 다시 곱슬곱슬한 머리칼이 푸들 저리 가라 하고 외치면 어떡하지?
그러나 우려와 달리 가장 마지막으로 빅찹에 동참하신 엄마의 변신은 대성공이었다. 심지어 엄마 본연의 머리카락도 알고 보니 마냥 곱슬곱슬이 아니었다. 상한 부분을 모두 자르고 보니 고급스러운 C컬과 뻗침 헤어가 적절히 섞인 예쁜 헤어였다. 엄마의 빅찹 숏컷이야 말로 반전이었다. 크고 화려한 이목구비가 짜잔 하고 드러나서 어째 교수님처럼 뵈는 것 같기도 하고. 차가운 도시 여성 같기도 하고. 엄마는 지금껏 미용실에서 돈 쓰고 시간 쓰면서 고생한 게 너무 후회된다 하셨다.
엄마의 빅찹이 이토록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줄 몰랐다. 미니멀라이프, 무지출 데이, 1일 1 비움, 빅찹 등. 나의 일상을 바꾼 단어들을 떠올려 본다. 새로운 용어에 지적 호기심을 갖고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파헤쳤다. 이로써 나와 주변에 소소하고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빅찹을 통해 세 식구는 자신의 머리카락만이 아니라본연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빅찹의 참의미는 자연적인 머리카락을 갖는 것에만 있지않다. 마음만 먹으면 머리카락, 얼굴, 성별, 발가락 길이(!)까지도 바꿀 수 있는 세상이다.타고난 조건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갈수록 어렵다. 머리카락 외에 내가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며, 본연의 나를 가로막고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 곱슬머리 삼총사께서 내게 또 하나의 글감과 고민거리를 던져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