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일녀 중 장녀이고, 시댁에서는 나이 많은 둘째 며느리인 나. 송 씨 일가에서 여왕벌로 군림했던 첫째 딸은 시댁에 가면 있는 듯 없는 듯한 캐릭터가 된다. 누구 앞에 나서고 남을 이끄는 데 익숙했던 나지만 시댁에서는 오로지 팔로우십만을 발휘한다. 작은 목소리를 내고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섞이려 든다. 이런 내 모습도 이젠 익숙해졌고 그 또한 나라고 편히 받아들인다.
결혼 초반엔 언제 어디서나 더욱 솔직하고 나다워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도 했다. 그러나 친구를 만나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조금씩 처신이 다르듯이 며느리다움, 아내다움, 나다움이 모두 저울에 잰 듯 똑같을 순 없는 노릇이다. 역할과 상황에 따라 장점을 키우고 융통성 있게 처신할 것. 이 명쾌한 해답을 내리기까지 많이도 헤맸다.
본디 우직하고 심성이 고운 남편 역시 친정에 오면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편이기에 앞으로도 쭈욱 부창부수를 실천해 나가련다. 양가 부모님께서 아무리 편하게 해 주신다 한들 너무 풀어지거나 긴장을 놓아선 안 되기에 어르신들 앞에서의 결혼 생활은 어려운 것이 정상인 것 같다.
남해 리조트에서 가족 여행을 하며 단란한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다. 잘 다듬어진 풍경을 감상하며 시부모님과 남편과 함께 커피를 마시던 오후였다. 어머님께서늘 의견이 없는 둘째 며느리에게 넌지시 물으셨다.
"넌 우리에게 바라는 것 없니? 요즘 며느리들은 불만이 있으면 그때그때 말하고 산다더라. 너도 참지 말고 불만 있으면 우리한테 다 이야기하고 살렴."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세 식구 모두 일동 나를 주시했다.
"저요? 음." 잠시 생각을 하다가 시원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없어요. 그런 거."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시던 시부모님께서 그제야 밝게 웃으셨다. 내가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라 좋은 시부모님을 뒀기에라야 가능한 상황이었다.
평생을 서로 다르게 살아온 시부모님과 며느리 사이에 바라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이려나. 적어도 나는 시부모님을 통해 아래로 흘러내리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하는 중이다. 명작도 제 아무리 두터운 관계도 파고들어 보면 아쉬운 점이 보이는 법이기에 좋은 면을 크게 보는 눈을 키운다.
상황을 바꿔 나는 시부모님께 어떤 며느리일까? "어머님, 아버님. 제가 고쳤으면 하는 점이나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부족함이 많은 며느리는 줄행랑을 친다면 모를까 차마 이런 질문을 던질 수가 없다. 연락도 자주 드리지 않는 데다가 여태 시부모님께 내 손으로 지은 따뜻한 식사 한 번 대접해 드린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나무라시지 않고 항상 '너희끼리 즐겁게 지내면 된다' 말씀해 주시는 두 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또 감사하다.
남편은 시부모님의 성품을 닮아 온유하고 배려 깊다. 얼굴은 제 눈에 안경이라 치고, 성격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잘 깎이고 멋지게 다듬어진 조각상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이토록 인정받고 사는 사람은 흔치 않을 터다. 동갑내기인 그는 연애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게 단짝친구이고 닮고 싶은 멘토이기도 하다.
소울메이트 같은 우리도 사소한 문제로 부딪치며 설전을 벌일 때가 왕왕 있다. "내가 고쳤으면 하는 점이 뭐야?" 더 잘 지내보자는 취지로 남편에게 흔한 질문을 던졌다."상처받지 않고 쓴소리를 들을 준비를 하던 찰나에 그가 단호박으로 답했다. "없어. 바뀌려고 하지 마. 지금이 좋아." 아주 기분 좋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답해 준 사람은 남편이 처음이었다.
이런 질문을 하면 바로 이때다 싶어 쥐어짜서라도 답변을 내놓는 게 사람 심리 아닌가.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감동적이고 따끔한 충고보다도 더 노력하고 싶게 만드는 일례였다. 나의 아쉬운 점을 찬찬히 듣고 고치는 과정은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한 필수 관문인 줄로만 알았다.
그를 만나고 나서 인간관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장점과 단점 모두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기.이는 얼마나 어렵고 경이로운 일인가. 시부모님 또한 나를 그런 마음으로 보듬어 주고 계시리라.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대사처럼다 이해할 수 없어도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는 있다. 그 명문을 이렇게 삶 속에서 배워간다.
언젠가 시어머니께서 "며늘님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적이 있다. 아악. 며늘님들이라니. 슬픈 폭소를 터뜨릴 뻔했다. 고된 시집살이를 시키시기는커녕 부족함 마저 떠받들며 가족으로 맞아 주시는 시부모님이시기에 어머님 입에서 나온 며늘님이라는 호칭은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었다.
둘째 며늘님은 이 글을 쓰는 내내 시부모님을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또 연락은 드리지 않았다. 조만간 기차에 몸을 싣고 시댁으로 내려가야겠다. 예쁜 며늘님의 얼굴을 보여 드리고 맛있는 것도 좀 사드려야지. "불만 있으면 이야기하고 살아라" 이 또한 배려 차원에서 마음을 쓰시며 말씀해 주신 것을 안다. 불만은 없고 부족함은 한가득인 며느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어머님, 아버님. 저는 불만 같은 거 앞으로도 모르겠고 많이 사랑합니다. 땀 삐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