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장아장 미니멀리스트 성장기

맥시미니멀라이프 고개를 넘어

by 미세스쏭작가

사시사철 택배가 끊이지 않는 집.

물건을 사도 사도 필요한 게 많맥시멀리스트.

인터넷 쇼핑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사람.


어려서부터 쇼핑을 좋아했고 물건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나의 성향을 타고난 DNA라 여겼기에 평생 맥시멀리스트로 살 줄 알았다. 적당함을 모르고 쇼핑하다가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되고 눈알이 벌겋게 충혈되는 날이 반복되는 건 기본이고, 택배 상자를 편하게 뜯을 수 있는 아이템까지 구매했던 나. 마치 자랑처럼 숙명처럼 맥시멀리스트로 지내 온 숱한 나날들. 무얼 사든지 많이, 부족하지 않게, 한 번에 듬뿍을 선호했기에 정리정돈은 늘 골칫거리의 대상이었다. 돈보다 값비싼 시간을 정리하는 데 쏟으면서도 지독하게 쇼핑을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치솟는 금리 소식에 묻어두었던 코인과 주식의 계좌를 확인하고서 찌릿한 충격을 받았다. '내 돈이 다 어디로 갔어? 이게 무슨 일이야.' 여태 투자했던 코인과 주식이 모두 폭삭 내려앉았지만 손쓸 길이 없었다. 새파란 바다로 변한 마이너스 포트폴리오.

잘못된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가장 먼저 나의 주특기인 온라인 쇼핑을 끊기로 다짐했다. "여보. 나 이제 쇼핑 그만하려고." 소비 다이어트를 선언하고 집으로 배송되는 택배가 실로 뜸해지자 남편이 매우 놀라워했다. “오. 진짜로 택배가 안 오네?” 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자연히 돈이 들지 않는 취미인 독서와 글쓰기에 시간과 마음을 정진하게 됐다.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대여해 읽었다. 최대 대출 권 수인 일곱 권을 꽉꽉 채워 읽기를 반복하면서 미니멀라이프 에세이도 여러 권 접했다. 관련 도서를 세 권 정도 읽자 ‘어? 나도 이 기회에 맥시멀리스트를 벗어나 볼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살다 살다 내가 미니멀라이프에 관심을 갖게 될 줄이야. 쇼핑을 멀리하자 오히려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적잖은 투자 손실을 입었으나 소비를 줄임으로써 실생활에 가해지는 타격을 막을 수 있었다. 내 마음은 오히려 윤택해지고 삶 곳곳에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택배 기사님의 발길이 뜸한 집.

뭘 사려고 해도 도통 필요한 게 없는 사람.

잠들기 전에 인터넷 쇼핑 대신 글을 읽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지만 여태 미니멀라이프를 너무 어렵고 나와 안 맞는 영역으로 여겼던 게 아쉬울 정도다. 크고 작은 실천을 통해 마음과 주거에 여유로운 공간을 확보하고 있고 전보다 부족한 게 없는 현실이 놀랍다. 맥시멈도 아니고 미니멀도 아닌 맥시미니멀리스트의 면모가 다분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180도 변했다.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 역시 날로 커져 간다.


몇 년째 묶여 있는 나의 투자 자산이 모두 회복되는 날이 오더라도 적게 사고 덜 욕심내면서 나답게 살아가려 한다. 예전엔 뭐가 그리도 살 것, 필요한 것, 쟁여야 할 것들이 많았는지. 미니멀리스트의 근본인 남편은 나날이 배송되는 택배 상자를 보면서 또 얼마나 자주 하고픈 말들을 삼켰을까 싶다. 항상 필요한 게 없다, 갖고 싶은 것도 없다는 남편을 보며 무척이나 신기했는데 나 또한 요즘엔 딱히 필요한 것도 사고픈 것도 없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투자금을 잃고 글을 열심히 쓰게 되었고, 남편과 더 큰 공통분모가 생겼고, 우리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많이 줄었. 건보다 중요한 건 나다운 요소가 발현되는 삶을 사는 것. 소비는 미니멀하게, 마음의 여유는 맥시멈을 추구한다. 투자 실패 이후 생각지 못했던 유쾌한 미니멀라이프의 여정이 열렸다. 전보다 지금이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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