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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B Oct 20. 2020

소소한 보통날

저녁으로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던 찰나 “띠링 띠링”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뜬 건 T의 이름.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서 전화를 했을까,라고 생각하며 전화기를 들었다. T의 목소리는 여느 날보다 한 톤 올라가 있었다.

“오늘은 요리하지 말고 샤와르마(중동 음식에서 먹는 랩 샌드위치)  먹는 게 어때? 내가 사 가지고 갈게.”


샤와르마를 파는 음식점은 집에서 약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근처에서 살 수 있는 음식 중에 가장 가격이 저렴 함에도 불구하고 맛이 으뜸이라 우리가 애용하는 식당이다. 하지만 T가 뜬금없이 샤와르마를 먹자고 하는 이유는 단지 샤와르마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제안 안에 담긴 그의 속내가 보여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며칠 전 저녁 식사로 햄버거를 만들었다. T를 위해 만든 고기 패티는 두께가 두꺼웠기에 내가 먹을 고기 패티와 굽는 시간이 달랐다. 같은 시간에 햄버거를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여러 개의 알림을 맞추고 정신없이 부엌에서 움직였다. 고기가 완벽히 익기 전에 시간을 맞춰서 빵까지 토스터에 넣고 나니 이제야 식탁에 앉아 있는 T가 눈에 들어왔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하면서 나도 모르게 받았던 스트레스가 T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나 보다. 햄버거가 완성되어 식탁에 올리는 순간 T는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나랑 이야기할 시간도 없이 요리하고, 동시에 스트레스받고. 이럴 거면 차라리 요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그냥 시켜 먹자. 주말에는 내가 요리할게!”




T는 혹시나 내가 요리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까, 우려되어 샤와르마가 먹고 싶다고 말한 게 틀림없었다.


 샤와르마를 들고 문에 들어서는 T의 표정은 밝았다.  

“네가 요리 안 하고 나랑 식탁에 앉아 있으니까 좋다. 고마워. 이렇게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지금이 너무 소중해. 참 행복하다.”

라고 말하며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너무도 소소해서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지나칠 수도 있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T는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에 감사를 표현했다.



Afterlife라는 TV show에서 죽은 아내와 생전에 소파에 앉아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던 보통의 순간들이 가장 그립다고 말하던 주인공처럼, T는 나와 행복하기 위해 화려한 휴가가 필요하지 않다면서 따스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다시금 나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했다.


늘 반복되는 보통의 하루지만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



한참을 조잘조잘 떠들다 Ancient aliens라는 TV show를 보자고 이야기한다는 게 Asian aliens라고 말이 잘못 나왔다. 사소한 말실수 하나가 어찌나 우스웠던지 너무 웃어서 턱이 아팠다. 내가 ”너무 턱이 아파... "하며 계속 웃자  T역시 자기도 턱이 아프다며 계속 웃었다. 그러며 홀마크에서 만드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카드에 이렇게 적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랑이란 보통날에 턱이 아플 정도로 같이 웃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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