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과 헤어지고 무너지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주로 소설, 에세이를 읽었지만 마음을 치유할 목적으로 심리학에 관련된 책도 읽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심리학자가 쓴 책을 발견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게리 채프만이 저술한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를 추천했다. 이상하게도 읽은 적도 없는 책의 제목이 친숙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집 책장에 꽂혀있는 책이었다.
밴쿠버로 이민을 결정했을 때, 나와 친구 J는 강남역에 있는 중고서점에서 만났다. 우리는 서점에서 서로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한 권씩을 고른 후 표지 뒷 장에 편지를 적어 교환하였다. 그때 J가 내 손에 건네준 책이 바로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였다. 창피하게도 굉장히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날 이후로 그 책을 집어 든 적이 없었다.
'사랑의 언어'는 나에게 생소한 명칭이었음에도 심취한 듯이 책을 읽었다. 게리 채프만은 책 속에서 사랑은 다섯 가지 언어로 나눠진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사람이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사랑을 느끼는 방식에 상대방이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적혀있었다. 게리 채프만은 사랑의 언어를 하기와 같이 분류하고 있다.
인정의 말
함께 보내는 시간
봉사
선물
스킨십
나의 사랑의 언어가 전남편에게 들리지 않았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내 기준에 해당하는 5가지 언어를 전부 이용해서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었다. 당시에는 그에 대한 마음이 너무 커서 내가 사랑을 느끼는 '나의 언어'에까지 내 생각이 미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시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 새로운 사람과 나, 두 명의 사랑의 언어를 모두 사용하여 사랑을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T와의 세 번째 데이트. T에게 사랑의 언어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물었다. T는 미소를 띠며, "당연히 알고 있지요."라고 답했다. 그의 언어가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당신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인가요?."
"저의 사랑의 언어는 함께하는 시간과 스킨십이에요."
"저도 그래요!."
사랑의 언어가 궁금해진 사람을 만났다는 게 나의 첫 번째 기쁨이었다면, 두 번째 기쁨은 T 역시 사랑의 언어를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지막 기쁨은 우리가 같은 언어로 사랑을 말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랑의 언어에 대해 T와 처음 이야기한 날부터 어언 2년이 지났다. T에게 다시 물었다.
"너의 사랑의 언어가 뭐야?"
"아, 사랑의 언어? 난 그거 정말 싫더라. 뭐든 정형화시키려는 사람이 만든 잣대일 뿐이야. 사랑을 하면 온갖 감정과 욕구가 다 생기는 데, 어떻게 그걸 5가지로 구분하고 그중에 하나가 나의 언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만약 2개가 중복된다고 해도, 다른 3개는?
그 다섯 가지에 해당되지 않는 다른 사랑의 방식은?
나는 어느 날은 너와 가만히 시간만 보내고 있어도 좋아.
또 어느 날은 네가 만든 저녁이 너무 맛있어서 내가 사랑받는구나 하고 느껴. 나도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고 싶어 지지.
너에게 사랑한다고 수시로 말하고 싶고, 선물도 주고 싶어.
같이 걸을 때는 꼭 손을 잡아야 해.
내가 사랑을 표현할 때, 모든 언어가 섞여있어.
너에게 뭐든 해주고 싶은걸. 넌 안 그래?"
하하! 2년 전과 너무 다른 반응에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맞아, 사랑하는데 굳이 5가지 언어로 한정시킬게 뭐람. 그냥 사랑하고, 또 사랑받으면 되지. 사랑의 5가지 언어? 갖다 버리라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