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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닭 Jan 11. 2019

모스크바로 온 동생

낯선 환경에서 느낀 가족 관계

  


  목요일 저녁에 동생이 모스크바로 왔다. 공항 가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웃음꽃이 피어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서 신났던 걸까. 집에서 그런 얼굴을 본 기억이 많이 없다. 가족 여행 때도 보기 힘들었는데 기뻐하는 얼굴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동생하고는 성인이 되는 시점부터 급격하게 말을 잘 안 하게 됐다. 중학생 때까지는 조금씩 대화를 한 기억이 있는데 어느 순간 아예 끊겼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내 갈 길이 바빠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나에게도 한국에서보다 더 편하게 얘기하고 뭔가를 설명하면 잘 들으려는 모습이 보인다. 생활 부분에서 도움을 주려고 하고 더 살갑게 하려고 하지만 아직은 무심한 모습이 더 많다.

  동생이 어느 한 사람이나 속한 공간 속에서 사랑을 많이 받기를 오래전부터 바랐다. 혼자 남자라서 가족 중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나조차도 외로웠는데 긴 시간 얼마나 답답하고 외로웠을까. 현실을 너무 많이 의식하지 않기를 바랐다. 가령 무언가를 먹을 때 더 먹고 싶어도 눈치 보면서 그만 먹는다거나, 뭔가를 하고 싶을 때나 사고 싶을 때 돈을 먼저 본다거나, 어릴 때부터 필요한 게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거나, 싫은데 거절하지 못하는 것들. 아예 무시하고 살기는 어렵지만 과하면 스스로가 작아져 가는 것을 알기에 그 안에 갇히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동생이 꾸준히 공부하고 있는 것과 유튜브 강의 응원하기, 어디 갈 때 먹을 거 사 오기, 전부 여자인 가족이 남자인 동생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전부이다.

  모스크바에서 본 모습은 그 안에서 조금은 나온 것 같이 보였다. 편안해 보였다. 이모도 그 부분을 도와주시려고 더 살갑게 대하시는 것 같다. 동생을 그렇게 대하는 것도 처음 보기도 하고 과한 게 아닌가 싶지만, 이모에게도 동생에게도 좋게 흘러가는 것 같이 보인다. 우리 가족에게 오랜 시간 결여된 무언가가 조금씩 풀어질 것 같다. 어려운 상황, 낯선 환경 앞에는 인간관계가 좋게 변한다. 앞으로도 그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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