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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닭 Jan 11. 2019

친구 또는 인연에 대하여

나를 스쳐가는 사람

  평소 인연 복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말을 자주 하지만,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 같지만 이번에는 자세하게 자랑을 해볼까 한다. 누군가를 챙기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벅찬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러시아 친구를 만났다. 작년 여름 한국에서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같이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친해졌다. 모스크바에 와서 정서적으로 많은 힘을 받고 있다. 우리의 언어는 영어라 가끔은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나는 러시아어를 배우고, 친구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서로의 나라와 문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친구와 얘기하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이해의 폭이 넓어서 누구와 얘기를 해도 잘 들어주고 치명적인 단점까지도 감싸주는 포용력이 있다. 챙겨주는 것을 좋아해서 많이 받기도 했다. 이 친구와 있으면 긴장하고 있는 내 마음을 놓을 수 있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작은 것에 행복을 찾아가라는 친구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지난주 화요일인가 새벽에 갑자기 보이스톡이 울렸다. 대학생 때 2년 동안 같이 수업 들었던 친구였다. 새벽에 전화해서 조금 의아했다. 한참 종교 수행을 하던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했다. 1시간 후에 카톡을 읽어봤는데 전날 밤에 내 꿈을 꿨다고 했다. 근데 너무 안 좋은 꿈이었다면서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이른 시간인 줄 알지만, 전화를 해봤다는 것이다. 카톡을 읽자마자 속으로 울컥했다. 내가 꿈에 나올 정도면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매일 잘 지내나 생각해보지만 바쁜 친구라 선뜻 전화하기가 망설여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먼저 연락해줘서 미안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 꿈이 얼추 맞았다. 많이 자도 피곤하고 무력하고 스트레스가 가득했다. 지난 금요일, 각자 일상 얘기를 했을 뿐인데 통화하는 내내 나를 생각해주는 게 보였다.

  지난 주말에는 한국에서 나를 보러 온 친구를 만났다. 오래 알고 지낸 건 아닌데 이상하게 편안해지는 친구다. 내가 갔던 관광지, 괜찮았던 식당을 데려갔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를 끄집어내느라 머리가 조금 아팠다. 한국어가 생각이 안 나서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자주 길을 잃었다. 같이 다니면서 그 친구가 전부 사준 것도 고마웠지만 본인보다 내 얘기에 더 귀를 귀 기울여줘서 고마웠다. 저번에도 적었지만 나는 어디서나 제대로 속하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진도를 잘 못 따라가서, 마트나 식당에서는 러시아어를 잘 못 하는 분홍 머리 동양인이라 튀었고, 안과 밖에서는 내 습관과 사고방식이 여기 있는 사람들의 기준과 안 맞는 게 조금 많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내 행동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는 크게 보인다. 그래서인지 적응하지 못하고 겉으로 돈다. 이런 내 모습을 자신의 관점이 아닌 나의 관점에서 얘기해줄 수 있다는 것은 이 친구의 가장 큰 장점이다. 나를 바꿔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기분 나쁘지 않게 온전히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얘기해준다. 이 친구 덕분에 난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주위를 의식하며 비교하지 않아도 멋있는 사람이 되었다.

  서울 팸 친구들도 오랜만에 만났는지 둘의 만남을 계기로 나에게 개인 카카오톡으로 동시에 연락을 했다. 소중한 친구들의 행복하고 안정된 일상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원하는 삶을 그리고 있어 나도 기쁘다.

  아무리 말해도 입 아픈 나와 세월을 공유하는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교당 친구들, 같이 공부하고 일했던 크루즈 동료들, 여행과 SNS에서 만난 인연들 포함.

  내가 좋아서 먼저 다가간 인연을 한순간 혹은 반복되는 실수로 떠나보내기도 했고, 반대로 쉽게 끊어질 것 같은 인연들이 오히려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있기에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 나를 떠나고 싶은 인연이 있다면 보내고 새로운 인연에 지나치게 다가가지 않는다. 놓으려고 하면 가까워지고 붙잡으면 멀어진다는 것을 안다. 끊어졌다고 생각한 인연이 시간이 흘러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도.

  요즘 같이 삭막한 세상에 그들을 내칠 이유는 없다. 솔직히 나에게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다. 나에게 직접 뭔갈 하지 않아도 조금이라도 생각해주고 배려해주는 것 자체가 큰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다가가서 잘하진 못해도 누군가 나에게 다가올 때 최선을 다해 반겨주기라도 해야겠다. 지금처럼. 나는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과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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