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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호 Dec 07. 2017

랄프 로렌과 <위대한 개츠비>의 아메리칸드림_1

같은 꿈을 꾸었던, 랄프 로렌과 개츠비

미국인의 꿈, 아메리칸드림


바로 이 파란 잔디밭까지 오기까지 그는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
이제 그의 꿈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다.
- 《위대한 개츠비》, 9장, 문학동네


폴로, 랄프 로렌을 모르는 독자는 많이 없을 것이다. 말을 타고 폴로 게임을 하는 로고, 바로 그 브랜드다. 이 브랜드를 만든 랄프 로렌Ralph Lauren은 가난한 유대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유한 백인 주류 사회에 들겠다는 욕망 하나로 세계적인 패션 재벌이 되었다. 이번 편은 바로 그 이야기다.


랄프 로렌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이상을 현실로 만든 장본인이다.


이는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 부를 쌓고 상류층이 되어 과거의 연인 데이지를 되찾고자 한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와 닮아 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는 폴로Polo로 대표되는 브랜드 랄프 로렌 브랜드의 창립자 '랄프 로렌'과 함께 미국인의 꿈을 대변한다. 미국인의 꿈을 대변하는 랄프 로렌과 개츠비는 자연스레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 된다.


<사진, 영화 위대한 개츠비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랄프 로렌은 미국발 몇 안되는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다.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라고 하면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도나 카렌Donna Karan과 함께 랄프 로렌을 떠올린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는 명품 브랜드 중 미국에서 탄생한 브랜드는 몇 없다. 명품의 본고장이라 일컫는 구대륙의 프랑스, 이탈리아에 비해 비교적 짧은 문화와 패션의 역사를 지녔기 때문이다.


전 세계 4,500여 개 매장을 운영하며 연간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랄프 로렌은 남성복, 여성복, 아동복, 스포츠, 데님, 향수, 레스토랑, 침구류, 주방 식기, 심지어 페인트까지 생활과 접하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다루는 브랜드 왕국이다. 《위대한 개츠비》가 씌여진 시대에 랄프 로렌 브랜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작품 속 개츠비는 랄프 로렌을 입고다니며 자신만의 아메리칸드림을 구현하려 했을 것이다.



개츠와 로렌


제임스 개츠 - 이게 진짜, 적어도 법적인 그의 이름이었다. 그는 열일곱 살에, 최초로 인생의 경력을 쌓기 시작한 특별한 순간에, 즉 댄 코디의 요트가 슈피리어 호의 가장 위험한 여울에 닻을 내리는 것을 목격하던 그 순간에 이름을 바꿨다.
- 《위대한 개츠비》, 6장, 문학동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개츠비는 우연히 요트를 타고 있는 억만장자 댄 코디Dan Cody를 만나게 된다. 코디의 잡다한 개인사를 돕고 뱃일을 맡아하며 5년 동안을 함께 생활했고, 부자의 태도와 방식을 배우며 보이지 않는 유산을 남기게 된다. 코디를 만나며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이하는 최초의 순간, 개츠비는 자신의 이름을 바꿔 말한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가난한 환경(제임스 개츠)에서 벗어나 능동적 삶과(개츠비)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 표현이었다. 현실을 초월해 지극히 이상적인 자화상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는 랄프 로렌도 마찬가지였다.


랄프 로렌은 처음부터 랄프 로렌이 아니었다. 뉴욕 브롱크스Bronx의 가난한 유대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랄프 로렌의 원래 이름은 유대식 성을 따른 ‘랄프 립쉬츠Ralph Lifshitz’다. 립쉬츠의 집안은 대대로 유명 랍비(rabbi·유대교에 정통한 현명한 어르신)를 여럿 배출했다. 립쉬츠의 부모는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립쉬츠가 랍비로 성장하기 바랐다. 그러나 립쉬츠의 생각은 달랐다.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백인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했다. 기회의 첫 순간을 목격한 개츠비가 이름을 바꾼 것처럼, 가난한 유대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랄프 립쉬츠는 상류계층인 앵글로 색슨 백인의 느낌을 주기 위해 ‘랄프 로렌’으로 이름을 바꾼다. 백인이지만 출신에 대한 차별이 보이지 않게 이뤄지며 놀림을 받았고, 이를 떨쳐내기 위한 랄프 로렌만의 방식으로 성을 바꿨다. 랄프 로렌 브랜드 왕국의 시작은 창립자 랄프 립쉬츠의 개명된 이름에서부터 시작한다.


화가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뛰어난 색채 감각을 발휘하던 로렌의 패션 감각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지역인 브루클린 지역의 또래와는 달랐다. 미국의 명문 사립학교 학생들이 주로 입는 프레피 룩Preppy Look을 주로 입었는데, 특히 잘 다려진 치노 팬츠와 옥스퍼드 셔츠를 즐겨 입었다. 이러한 옷차림은 또래와는 다른 인상을 주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때 로렌은 자신처럼 상류 사회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고, 소위 ‘부자처럼 입는 방법’을 고안해 낸다면 정말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사진, 랄프 로렌>


그는 그곳(루터파 신학교)에 겨우 이 주 동안 머물렀지만, 운명의 북소리, 아니 그보다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대학의 지독한 무심함에 질려, 밥벌이인 관리인 일을 집어치웠다.   
- 《위대한 개츠비》, 6장, 문학동네


1957년 가을, 랄프 로렌은 뉴욕 시립대학교에 입학한다. 경영학 전공으로 주간 수업을 듣던 그는 실제 업무 현장이 아닌 학교에서 비즈니스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로렌은 한 학기가 끝나자마자 야간 과정으로 수업을 모두 옮기고 낮에는 뉴욕 엘라이드 스토어AlliedStores에서 일했다. 그때 로렌은 바이어로서 소매 의류를 주문, 발주하며 패션 비즈니스 생리를 배웠다.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루터교 재단의 신학교에 입학한 개츠비가 학교의 무심함에 실망하고 2주 만에 자퇴하고 화려한 세계를 꿈꾸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 것처럼, 로렌 역시 패션 비즈니스 현장에서 일하며 패션 감각과 사업 아이디어를 키워가던 1960년, 학업을 그만두고 미국 트래디셔널 브랜드(영국과 이탈리아 전통 복식 스타일을 재해석해 유행에 관계없이 고급스러운 옷을 만드는 브랜드) 브룩스 브라더스Brooks Brothers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패션 산업에 뛰어들었다.



바닥에서부터 기회를 잡다


그는 코디의 잡다한 개인사를 모두 처리하는 일을 맡았다. 댄 코디가 곁에 있는 동안 그는 승무원에, 항해사에, 선장에, 비서에, 심지어 경비원의 일까지 돌아가며 해냈다.
- 《위대한 개츠비》, 6장, 문학동네


브룩스 브라더스Brooks Brothers에 어시스턴트 바이어로 활동하며 패션계에 발을 들인 로렌은 넥타이 제조업체 리베츠 앤 컴퍼니Rivetz & Co의 판매원으로 근무하며 넥타이 아이템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단정한 프레피 룩을 고수하던 그는, 즐겨 입는 옷과 액세서리 모두 자신이 직접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로렌은 리베츠 앤 컴퍼니 사장 노먼 힐튼Norman Hilton과 상사에게 자신이 구상한 아이템을 선보였다. 시제품까지 만드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쉽게 사업화하는 데는 실패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로렌의 이러한 시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사업체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시점이 이때였기 때문이다.


사업 시작을 위해 투자자를 구하러 다니던 1967년, 로렌은 마침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넥타이 제조업체인 보 브러멜Beau Brummell 회사의 투자를 받게 된다. 그가 고안한 디자인은 당시 유행하던 폭이 좁은 스타일이 아닌 그의 갑절은 넘는 4.5인치(약 11㎝)의 넓은 폭을 가진 넥타이였다. 그리고 인도, 스위스, 영국의 원단을 넥타이 소재로 활용해 화려한 장식의 수를 놓았다. 일반적으로 판매되었던 넥타이와는 달리 넓은 폭에도 불구하고 수를 놓은 부분이 허섭해 보이지 않도록 세심하게 바느질했다. 차별화를 둔 곳은 디자인만이 아니었다. 3~4달러에 불과했던 일반 타이 가격의 2배가 넘는 7.5~15달러로 가격을 책정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추구하기 위해 유럽 상류사회의 스포츠 폴로Polo에서 착안해 넥타이에 ‘폴로’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했다. 폴로는 말을 탄 경기자가 자루가 긴 말렛Mallet이라는 나무망치를 채로 삼아 공을 쳐 상대방 골대에 넣는 스포츠다. 폴로라는 스포츠에 담긴 스포티sporty하면서도 상류계층이 향유하는 문화라는 우아한 느낌을 동시에 주는 상징을 만들어 붙인 것이다. 우리가 아는 폴로, 랄프 로렌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진, 랄프 로렌 넥타이 >


최고급 소재로 만들어진 독특한 디자인의 고가 넥타이는 대중에게 ‘신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남들과 다르고 싶고,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미국인들의 신분 상승의 욕망을 넥타이 폭의 차이로 표현한 로렌의 전략이 담겨 있었다. 브랜드 로고가 주는 고급스러운 상징을 통해, 자신이 상류 사회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싶은 대중의 심리를 영리하게 이용한 것이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브룩스 브라더스 사장 노먼 힐튼의 도움으로 5만 달러를 대출받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작은 쇼룸을 얻고, 회사명을 폴로 패션Polo Fashion이라고 짓는다. 그가 만든 넓고 두꺼운 원단에 화려하게 수놓은 넥타이는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 몰이를 시작했다. 뉴욕의 작은 상점들에 판매되던 넥타이는 뉴욕의 니먼 마커스NeimanMarcus 백화점에서 1,200개의 대량 주문을 받으며 업계에 알려진다.


사업 초반에는 자신이 만든 넥타이에 폴로 로고를 넣지 못했던 매장이 일부 있었다. 당시 대형 매장의 경우 입점 브랜드 로고가 아닌 판매되는 매장 로고를 붙이는 게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의 넥타이는 인기를 끌게 되었고 폴로라는 상표는 자연스레 매장의 로고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번지던 폴로는 미국 최고급 백화점 ‘블루밍데일즈Bloomingdale's’에 입점하며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넥타이 사업의 성공으로 로렌은 신분 상승에 대한 대중의 동경을 소비 욕망으로 바꾸는 방식을 익히게 된다.



<계속>


랄프 로렌과 <위대한 개츠비>의 아메리칸드림_2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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