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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호 Dec 28. 2017

패션의 민주화, 유니클로와 <1984>_2

빅 브라더와 빅 데이터

비싼 생필품 vs 저렴한 플리스Fleece


외부 당원에게는 일 년에 의복비로 겨우 삼천 쿠폰이 할당되는데, 잠옷 한 벌만 해도 육백 쿠폰이었다. 그는 의자에 걸쳐놓은 지저분한 내의와 바지를 주워 입었다.
-《1984》, 1부, 민음사


나치의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가 떠오르기도 한 《1984》 속 전체주의 삶의 한 장면이다. 이 곳에선 패션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치다. 노동에 대한 가치 대비 생필품의 비용은 턱없이 비싸다. 이는 질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제공하고자 하는 현시대 SPA 브랜드의 행보와 반대 세계다.  

  

패션의 민주화를 그리는 유니클로는 보온성이 탁월하지만 고가였던 플리스Fleece 소재의 생산 가격을 낮춰 고객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한다. 

  

미국의 갭을 모델 삼아 SPA 브랜드로 변화한 유니클로는 1998년, 플리스fleece로 글로벌 브랜드 도약의 발판을 맞이한다. 플리스는 지금의 유니클로를 만든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플리스는 폴리에스테르로 만들어진 유연한 기모 소재로, 보온성이 좋고 가벼우며 세탁이 편한 것이 특징이다.(플리스의 일본식 발음은 후리스다.) 유니클로는 원료와 소재의 대량 발주로 자재 단가를 낮추고,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위치한 공장을 섭외해 제조가를 낮추며 전략적인 선택과 집중을 한다. 플리스는 일본에서만 1998년에 200만 장, 1999년에는 850만 장, 2000년에는 2,600만 장이 판매된다. 언론에서 ‘플리스 붐’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데, 방한복의 내피로 사용되면 플리스를 평상시 입을 수 있는 활동복 형태로 디자인한 것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진, 유니클로 플리스>


가볍고 얇으면서 보온성이 좋은 플리스는 두꺼운 옷보다는 얇은 옷을 겹쳐 입는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는 아이템이 된다. 플리스의 성공은 유니클로가 일본 최고의 패션 회사로 성장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야나이 다다시는 “플리스란 상품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등산을 하는 사람, 윈터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 일부가 아는 상품이었다. 이것을 겨울용 일상복으로 만들어 대대적으로 판매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고, 진짜 가치를 제공했다.” 고 말하며 전략적 판단을 회고한다. 


 유니클로는 플리스를 공전의 히트 상품으로 만들었고, 이를 통해 2001년까지 회사의 매출과 이익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탄력을 받은 유니클로는 2002년에 중국 상하이, 영국 런던 등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글로벌 SPA 브랜드로서 첫 발을 내딛는다.



제복과 유니바레ユニバレ


거의 모든 사람들이 추해 보였다.
푸른 제복 대신 다른 옷을 입었더라도 추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 《1984》, 1부, 민음사


전체주의 사회 속 당원들은 동일하게 지급된 푸른 제복을 입고 생활한다. 그들에게 다른 유니폼을 선택할 선택의 여지는 없다.  

  

유니폼은, 유니폼을 입은 집단 사람들과 외부인을 구별하고 직업 계급과 규범을 수용할 동기를 부여한다. 이를 통해 집단을 응집력 있는 단일체로 통합하려는 목적에 기여한다. 유니폼은 당원의 소속과 계급을 나타냄과 동시에 상부의 당원 관리와 노동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도구로써 존재한다.   

  

여기서도 소설과 브랜드의 반대의 궤가 드러난다. 모두가 동일한 옷을 입은 소설 속 유니폼과 뉘앙스가 조금 다르지만, 유니클로의 옷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입어 유니폼화 되는 현상을 꼬집는 단어가 생긴다.  

  

유니클로는 생산 비용 최소화를 위해 품목을 한정하고 제품 라인을 단순화시킨다. 매장은 확대되어 더 많은 고객 접점을 만들지만, 매출 대비 줄어든 품목으로 유니클로 고객은 필연적으로 주위에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에서 유니클로의 ‘유니’와 ‘비밀, 거짓말 등을 들키다’를 의미하는 일본어 ‘바레루’가 조합된 유니바레ユニバレ란 표현이 탄생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입는 유니클로를 입었다는 걸 들켜서 부끄럽다’의 뜻인 유니바레는 많은 사람들이 입어 유니폼화 되어가고 있는 유니클로의 확장을 말해준다. 이는 《1984》 속 전체주의 사회에서 각 계급과 계층을 구분하는 용도로 규격화된 제복과 유니폼만을 착용하는 부분과 묘하게 의미가 겹친다. 

  

유니바레란 표현은 수면 아래 일부만 사용하던 단어였으나, 2009년 패션과 트렌드를 포스팅하는 한 일본 블로그에서 표현을 사용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저렴하고 질 좋은 유니클로를 입지 않는 생활을 그릴 순 없었다. 한 매거진에서는 ‘유니클로를 유니클로처럼 입지 않는 방법’이라는 타이틀로 코디와 착장 테크닉을 소개하는 기사가 등장한다. 고가 브랜드 옷과 디테일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기본 셔츠와 팬츠, 스키니 진과 레깅스 등을 다른 브랜드와 섞어 입거나, 옷을 리폼해서 유니클로처럼 보이지 않게 입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극도로 단순화, 규격화된 상품 구성은 유니클로 성장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 유니클로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분할 대화 vs 컬래버레이션


그들은 거리의 인파에 밀려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등대 불빛이 잠깐씩 스쳐 지나듯이 기묘하고도 간헐적인 대화를 했다. 요컨대 당의 제복을 입은 사람이 다가오거나 텔레스크린이 설치된 장소에 가까워지면 갑자기 말을 뚝 끊었다가 몇 분 뒤 대화를 재개하곤 했던 것이다.
- 《1984》, 2부, 민음사


《1984》 주인공 윈스턴Winston Smith은 연인 줄리아Julia와 공개적인 장소에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당원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과 내부 고발자들 사이에서의 밀회는 어려움을 겪는다. 지나가면서 몇 마디씩 끊어서 하는 ‘분할 대화’가 그들의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대화와 만남이 통제된 전체주의 체제 속 그들의 행보와 반대로 SPA 브랜드들은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들과의 자유로운 협업을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 


플리스 붐에 힘입어 유니클로는 중국과 영국에 진출하며 확장세를 넓혔지만 실적은 저조했고, 자국에서의 매출 또한 급락했다. 이에 유니클로는 외부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된다. 2006년, 디자이너 인비테이션 프로젝트Designer InvitationProject로 시작한 유니클로의 컬래버레이션은 패션계에서 활약 중인 정상급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통해 베이직한 디자인에 대한 한계를 타파하고자 기획되었다. 당시 발렌시아가Balenciaga 수석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필립림Phillip Lim 등 당시 새롭게 떠오르는 디자이너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연이어 발표한다. 이는 2004년 H&M과 샤넬Chanel 수석 디자이너 칼 라커펠트Karl Lagerfeld의 컬래버레이션의 영향을 받아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SPA 브랜드와 하이엔드 명품 디자이너와의 협업은 패션계를 뒤흔들 정도로 이슈가 되며 시장에 파문을 던졌고, 유니클로도 이에 영향을 받았다. 

<사진, 유니클로 컬래버레이션>


컬래버레이션으로 소기의 성과를 맛을 본 유니클로는 2009년 독일 디자이너 질 샌더Jil sander와의 컬렉션 ‘+J’를 선보인다 협업은 큰 흥행을 거두며 매출 상승과 브랜드 인지도의 고급화를 이뤄낼 수 있게 했다.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 한정 상품은 순식간에 매진되고, 중고 거래가 활성화될 정도였다.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SPA 브랜드의 개념을 뛰어넘는 순간이다. 지금은 디자이너 브랜드와 SPA 브랜드의 협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나 당시 경영진의 선택을 돌아보면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이를 통해 유니바레라는 부정적 단어의 색을 덜어내고, 매출 반등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유니클로 R&D 총괄책임자 카츠다 유키히로勝田幸宏는 “유니클로는 컬래버레이션으로 디자인과 제작 방법의 과정, 사고방식을 배우고 컬래버레이션이 끝난 후에도 그 정신을 살려나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는 협업 이후 브랜드 내에 다양한 디자이너와의 컬래버레이션 정신이 녹아들었음을 시사한다. 이후 유니클로는 에르메스Hermes 아트 디렉터였던 크리스토퍼 르메르Christophe Lemaire를 영입해 파리Paris R&D 센터를 만들었고, 유니클로 디자인의 감각을 지속 키워나간다. 유행과 평범함 사이를 메우는 정제된 디자인 작업을 통해 세계인의 옷장에 유니클로 옷을 집어넣는 작업을 영리하게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빅 브라더 vs 빅 데이터


층계참을 지날 때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벽에 붙은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것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눈동자가 따라 움직이도록 고안된 포스터였다. 포스터 아래에는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1984》, 1부, 민음사


《1984》 속의 오세아니아에서는 빅 브라더라는 허구적 인물을 내세워 독재 권력을 극대화한다. 이를 위한 장치로 텔레스크린Tele screen,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서로를 의심하고 옥죄는 시스템을 통해 체제를 견고히 한다. 이런 빅 브라더는 비단 전체주의에서만 경계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 검색 서비스,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좋아요 등은 빅 데이터라는 명분으로 데이터베이스화 되고 있고, 관리자 혹은 의사결정권자(빅 브라더라고 불릴 수도 있는)는 이를 통해 독점적인 정보와 권력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SPA 브랜드에서 활용하는 빅 데이터는 빅 브라더와 유사해 보이지만 결이 다르다. 당원들의 행동정보를 모아 빅 브라더라는 권력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는 것과는 달리, 빅 데이터는 고객이 도처에 남긴 구매 패턴 및 검색 데이터들을 분석해 상품의 수요와 공급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저렴한 가격대 상품을 빠르게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お客様からの声はビッグデータとして分析され、すぐに商品化されます。
고객의 소리는 빅 데이터로 분석되고 곧 상용화된다.
- 야나이 다다시, 경영 메시지


유니클로는 SNS를 활용, 외부에서 얻은 정보를 상품 생산에 반영했다. 고객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을 분석해 날씨, 유행에 맞춰 팔릴 만한 상품을 한 발 앞서 선보이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로 나온 히트 상품이 '히트텍Heat Tech'이다. 전 세계에서 약 4억 장이 판매될 정도로 글로벌 히트를 만들어낸 히트텍은 유니클로 빅 데이터 활용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유니클로는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 추운 겨울, 가볍고 편하게 이너로 입을 수 있는 옷에 대한 니즈를 파악한다. 고객의 니즈를 바탕으로 2008년, 몸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소재가 흡수해 자체적으로 발열과 보온을 하는 히트텍을 개발해낸다. 당해 가을과 겨울 상품으로 전략적으로 2,800만 장의 대형 물량을 준비하고, 전폭적 마케팅을 통해 가을이 채 끝나기 전에 준비한 물량을 모두 판매한다. 플리스에 이은 두 번째 메가 히트상품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사진, 유니클로 히트텍>


유니클로는 어떻게 패션의 민주화를 만들어가는 것일까? 19세기 중반 재봉틀의 발명과 면직 산업의 발달로 의복 생산에 드는 노동과 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의복 가격은 하락했고, 대중들의 의복 구입은 전보다 수월해 졌다. 생산기술의 발달로 의복 구입에 대한 진입장벽은 낮아졌고, 신자유주의를 통해 가장 극대화된 방식의 패션의 민주화는 SPA 브랜드에 의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비평가 보리스 그로이스BorisGroys는 "패션이 지향하는 끊임없는 변화가 미래를 결정하는 보편적 진리의 가능성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패션은 본질적으로 반유토피아적이며 반전체주의적"이라 말했다. 옷을 고르고 입을 수 있는 자유와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법을 배웠다 말할 수 있다. 비단 SPA 브랜드 유니클로만 패션의 민주화를 그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베이직한 아이템으로 무리 합리적인 가격과 디자인을 발현하는 브랜드 임에는 틀림없다.  


소설은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반대의 궤를 그려가는 유니클로는 죽음이 아닌 패션에 대한 새로운 탄생이 되길 기대하는 바이다. 




유니클로UNIQLO


<사진, 야나이 다다시>


모기업: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 Co., Ltd.

창립자: 야나이 다다시

창립: 1949년(오고리 상사 개업을 기준으로 카운팅) / 유니클로 1호점은 1984년 오픈

진출 국가 : 18개국(대한민국, 일본, 중국, 미국, 프랑스 등)

매장 수: 일본 830점 / 해외 950점 (2016년 8월 기준)

국내 진출 : 2005년 FRL Korea 설립(롯데쇼핑 49.0%, 패스트 리테일링 51.0% 합자회사)




1984

<사진, 조지 오웰>


《1984》은 1949년 조지 오웰 GeorgeOrwell(1903~1950, 영국,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가 발표한 소설이다. 1933년 그의 첫 작품 「파리와 런던의 바닥 생활」을 발표하며 필명을 사용했고, 실제 작품을 위해 파리 빈민가와 런던 부랑자들의 극빈생활을 체험하기도 한다. 이후 작품들을 통해 정치적인 성향이 짙은 작가로 알려지며, 현실세계를 풍자한 소설 「동물농장」을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 대열에 오른다.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스탈리니즘의 본질을 간파하고 비판하며, 현대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악몽과 같은 전체주의의 풍토를 특유의 유머와 비유로 표현한 작가다.


스토리 요약

극단적인 전체주의 사회인 오세아니아. 이곳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당원들을 사상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과거를 끊임없이 날조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반역자 골드스타인을 내세워 사람들의 증오심을 집중시키는가 한편,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 같은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끼고 저항을 시작한다. 그는 지하 단체인 '형제단'에가입해 당의 전복을 기도하지만 함정에 빠져 사상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윈스턴은 모진 고문과 세뇌를 받은 끝에 연인마저 배반하고 당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가치를 상실한 채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되고, 조용히 총살형을 기다린다.



전편을 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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