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호 Dec 14. 2017

랄프 로렌과 <위대한 개츠비>의
아메리칸드림_2

영화에서 만난 개츠비와 랄프 로렌

비전의 확장


그는 뒤표지를 펼쳐서 내가 볼 수 있도록 빙 돌렸다. 마지막 면지에 ‘계획’이라는 단어와 1906년 9월 12일이라는 날짜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로 밑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기상 오전 6:00 / 아령 들기와 암벽타기 오전 6:15-6:30 / 전기학 등 공부 오전 7:15-8:15 / 일 오전 8:30-오후 4:30 / 야구와 운동 4:30-5:00 / 웅변연습, 자세와 달성방법 훈련 오후 5:00-6:00 / 발명에 필요한 공부 오후 7:00-9:00   
- 《위대한 개츠비》, 9장, 문학동네


제임스 개츠(개츠비의 법적 이름)는 제이 개츠비란 인물을 창조했고, 그 이미지에 충실하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한다. 그가 적은 다이어리에서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결심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집요함은 랄프 로렌도 마찬가지였다.


폴로 넥타이 성공에 탄력을 받은 로렌은 1968년 남성복 라인으로 브랜드 외연을 확장한다. 브룩스 브라더스와 같은 트래디셔널한 스타일과 차별화된 개성 있는 프레피 룩으로 새로운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발표하는데, 그가 즐겨 입고 좋아하던 스타일을 모티브로 삼았다. 기존 트래디셔널 브랜드가 추구했던 무난한 컬러 조합과 몸매가 부각되지 않는 핏fit 대신 유채색의 높은 채도를 사용해 컬러 조합을 만들었고, 몸매 라인을 돋보이게 하는 테일러링을 통해 섹시한 프레피 룩을 연출했다.


남성복 셔츠를 시작으로, 재킷, 바지, 슈트로 품목을 확대해 나갔다. 로렌이 만든 아이템의 인기를 감지한 블루밍데일즈 백화점은 폴로의 다양한 제품군을 한 자리에서 구매할 수 있는 ‘폴로 바이 랄프 로렌Polo by Ralph Lauren’ 남성복 부티크 매장을 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로렌은 1970년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코티상Coty American Fashion CriticsAward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사진, 폴로 랄프 로렌 여성복 매장>


수상에 탄력을 받은 랄프 로렌은 이듬해 자신만의 패션 왕국을 건설하고 싶은 욕망을 담아 여성 라인까지 손을 뻗는다. 본격적으로 여성복 사업을 시작하기 전 시장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남성복에서 제작하던 셔츠를 여성복 사이즈로 조정해 파일럿 상품으로 내놓았다. ‘POLO’라고 이름만 붙였던 남성복 라인과는 달리, 여성복 셔츠에는 채를 들고 공을 치는 폴로 선수를 형상화한 모양을 수놓았다. 옷 안쪽 라벨에서만 볼 수 있던 브랜드 로고를 상대방이 볼 수 있도록 외부로 꺼낸 것이다. 고객이 폴로라는 브랜드를 입었을 때 폴로 공동체로 대표되는 미국 상류 계층에 속한다는 자부심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폴로 선수가 심볼symbol 마크로 새겨진 셔츠는 시장을 정확히 명중하며 대성공을 이룩했다. 이후 폴로의 로고는 신분 상승의 욕구를 채우고 싶은 미국인들에게 널리 소비되며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짓는 기호로써 조금씩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넥타이, 남성복 라인의 흥행과 자수 로고가 박힌 여성 셔츠의 흥행은 자연스레 여성복 라인으로의 확장을 이끌었다. 캘리포니아 부촌인 베버리 힐즈BeverlyHills에 미국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플래그십 스토어Flafship store를 오픈하고, 1972년 여성복 라인을 정식으로 출시한다.


100% 코튼 면과 옥스퍼드 원단을 활용한 블라우스와 셔츠, 주름 바지, 윙 칼라wingcollar 셔츠, 꽃무늬 실크 스커트, 무릎길이로 연장시킨 드레스 스타일의 원피스처럼 평범해 보이지만 자그마한 변형을 준 랄프 로렌의 여성복은 시장의 인정을 받게 된다.


무리한 사업 확장이었을까? 유명세와 달리, 자금과 유통 관리는 그 답지 않게 허술했다. 여성복 라인을 출시하던 해 경영 상태는 엉망이어서 파산 위기를 맞게 된다. 로렌은 사제 10만 달러와 지분 양도로 사업 파트너를 영입하며 간신히 사태를 수습한다.


경영 미숙으로 위기에 봉착했던 로렌은 이를 계기로 사업 구조에 변형을 준다. 본사는 디자인 역량에만 집중하게 하고, 나머지 제조 판매 부분은 라이선스를 통해 운영하는 방침을 세운다. 디자인 역량에 집중하자 폴로는 여성 고객의 ‘지갑 털이범’이 되었다. 위기를 모면한 랄프 로렌은 1976년 두 번째 코티상을 수상한다. 남성복에 비해 트렌드에 민감한 여성복 시장에서도 브랜드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자신감을 얻게 된 랄프 로렌은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의 확장을 본격 모색한다.



영화에서 만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생각하면 2013년 개봉한 영화에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Wilhelm DiCaprio’가 샴페인 잔을 들고 파티를 즐기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F. 스콧 피츠제럴드 F. Scott Fitzgerald의 원작 《위대한 개츠비》는 이미 그전에 한 차례 영화화된 바 있다.  이때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Charles Robert Redford Jr.가 개츠비 역할을 맡는데, 그가 입은 옷이 바로 ‘랄프 로렌’이었다.


<사진, 위대한 개츠비 속 로버트 레드포드>


1920년대 미국 북동부 상류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 로렌은 자신이 추구하는 상류 계층 의복 이미지를 집어넣었다. 슈트와 럭셔리한 캐주얼, 턱시도, 와이드 카라 셔츠에 폭이 넓은 넥타이, 더블브레스트 베스트double breast vest에 화려한 재킷은 극 중 로버트 레드포드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한 여름이라는 작중 배경을 생각했을 때 배우들의 착장은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는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기 위해 사치와 허황을 상징하는 화려한 옷과 액세서리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로렌은 소설 속 착장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시각화시켰는데, 후에 영화 속 개츠비의 이미지가 더욱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평가받는다. 광이 나는 블랙 턱시도와 보타이, 화이트 치노 팬츠에 스트라이프 셔츠, 어깨에 걸치는 가디건, 꽈배기 니트와 화이트 슈즈 등은 지금의 눈으로 봐도 매장에 걸려있을 법하고 촌스럽지 않다.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 부문에서 수상하게 된다. 그러면서 ‘개츠비 룩’과 함께 당대의 패션 코드를 만들게 된다. 특히 개츠비와 톰 뷰캐넌이 데이지를 놓고 설전을 벌이면서 영화의 긴장감이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개츠비가 입었던 랄프 로렌의 핑크색 슈트는 공전의 인기를 끌게 된다.


로렌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TV, 신문, 매거진에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주인공이 입은 의상’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동시에 상류 사회 영화 주인공이 입었다는 점을 살리면 브랜드 위상과 정체성 확립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영화는 크게 흥행했고, 로렌의 의상은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때 성공을 향한 로렌의 야욕은 부정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로렌은 마치 영화 의상 전체를 담당한 것처럼 언론에 홍보했지만, 사실 로렌이 담당한 의상은 일부였다. 그러면서 영화 의상 담당 디자이너인 테오니 V. 알드리지Theoni V. Aldredge와 마찰을 빚게 됐는데, 영예의 화살은 이미 로렌에게 향해 있었다. 대중들은 로렌의 마케팅에 반응했고, 그에 따른 과실 역시 로렌이 얻게 되었다. 이 모습은 마치 금주법 시대에 밀주 유통 등 불법적 수단을 이용해 부를 좇았던 개츠비의 욕망과 닮아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말했다. 라캉의 말처럼 로렌은 타자의 욕망을 읽었다. 그는 상류 계층에 편입하고 싶은 대중들의 욕망을 읽어내, 소수의 상류 계층이라는 신분을 드러낼 수 있는 심벌을 만들어 대중화했다.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랄프 로렌을 사게 해 ‘랄프 로렌 왕국’을 건설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아메리칸드림을 이뤘다. 금주령이 발효됐던 1920년대 미국인들의 금지된 욕망을 해소해 주며 부를 축적했던 개츠비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브랜드 왕국의 건설


“대단한 우연인데요.” 내가 말했다.
“우연 절대 아니에요.”
“왜요?”   
“개츠비는 일부러 데이지네가 보이는 만 반대쪽 집을 산 거니까요.”
- 《위대한 개츠비》, 4장, 문학동네


부를 쌓은 개츠비는 사랑했던 여인 데이지가 살던 만灣 건너편 이스트 에그에 저택을 구하고, 성대한 파티를 주최한다. 그녀와 재회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들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철저한 계획과 준비를 통한 재회였다. 로렌 역시 랄프 로렌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철저히 계획하고 구상했다.


넥타이로 시작한 랄프 로렌의 브랜드는 남성복과 여성복의 성공을 바탕으로 아동복, 향수, 침구, 골프복, 운동복, 안경, 가구, 레스토랑 등으로 브랜드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랄프 로렌이라는 브랜드 하에 수많은 하위 계열 브랜드를 론칭하고 단종시킨다. 폴로 랄프 로렌PoloPalph Lauren, 데님 앤 서플라이Denim & Supply, 랄프 로렌 컬렉션RalphLauren Collection, 랄프 로렌 퍼플라벨Ralph Lauren Puple Label, 더블알엘RRL, 로렌 랄프 로렌LaurenRalph Lauren 등이 있다. 나열된 브랜드 외에 유관 브랜드는 30여 개. 이 외에 단종된 하위 브랜드 라인도 꽤 된다. 그의 사업은 자체 공장이 없어 외주를 주어 브랜드 라벨만 붙여 팔던 비즈니스였다. 하지만 그의 감각과 사업적 역량은 글로벌하게 성공하며 전 세계 44개국에 공식 진출, 전 세계 캐주얼 판매 1위에 이르는 지금의 패션 왕국을 만들어 낸 것이다.


세계 주요 도시 사람들은 아침에 옷장을 열어 랄프 로렌의 옥스포드 셔츠를 꺼내 입고 폴로 타이를 맨다. 폴로 향수를 뿌리고, 주말에는 폴로 진 청바지를 입고, 폴로 골프 모자를 쓰고 골프를 치고, 운동을 하고, 아이에게 폴로 키즈 옷을 입히고, 밤에는 폴로 이불속에서 잠이 든다. 랄프 로렌은 의복만이 아닌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걸친 모든 것에 자신의 철학을 입히는 데에 집중해 완벽한 토털 패션을 구현해 냈다. 삶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서 전통적이면서 실용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의 이미지를 연출해 낸 것이다.


2015년 CEO 자리에서 물러난 로렌은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상', '여성복 디자이너상', '공로상' 등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가 수여하는 다섯 개 부분 상을 수상하며 미국 패션계의 상징이 된다.



꿈에서 깨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지기만 하는 황홀한 미래를.
이제 그것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뭐가 문제겠는가.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 《위대한 개츠비》, 9장, 문학동네


개츠비의 사랑과 이상은 그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개츠비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화려했던 생을 뒤로하고 생을 마감한다. 넥타이 매장 점원에서 ‘랄프 로렌’ 브랜드 왕국까지 만든 로렌 역시 ZARA, H&M 등 SPA 브랜드의 역공에 밀려 구조조정을 진행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상황이 긴박해지자, 로렌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2015년 후임 CEO로 SPA 전문가 스테판 라르손Stefan Larsson을 임명한다. 정통성을 고집하는 브랜드 랄프 로렌의 정체성과는 다른 행보다. 하지만 랄프 로렌의 변신은 시장을 사로잡지 못했고, 2017년 5월 라르손마저 사임하기에 이른다. SPA 전문가도 브랜드 체질 개선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2017년 7월, 랄프 로렌은 프록터 앤 갬플P&G의 패트리스 루비트Patrice Louvet을 새로운 CEO로 임명한다. 소비재 회사 출신과 함께 다시 미국인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려는 행보다.


그럼에도 랄프 로렌은 여전히 사랑받는 브랜드임을 틀림없다.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과 대통령 후보도 입는 브랜드가 랄프 로렌이다. 개츠비의 꿈은 무너졌지만, 랄프 로렌은 여전히 아메리칸드림을 상징한다. 전 세계에 거리에서 랄프 로렌을 입은 사람들이 활보한다. 가치와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랄프 로렌은 개츠비의 결말과는 다를 것이다.


랄프 로렌의 또 다른 꿈을 기대해본다.





랄프 로렌Ralph Lauren


<사진, 랄프 로렌>

출생 : 1939년 10월 14일, 미국

학력 : 뉴욕 시립대학교 경영학 중퇴

수상 : 2010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2009년 미국패션협회CFDA 인기투표상 Popular Vote Award

2007년 미국패션협회CFDA 아메리칸 패션 전설 American Fashion Legend Award

1997년 미국패션협회CFDA 인도주의 리더십Humanitarian Leadership

1995년 미국패션협회CFDA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

1992년 미국패션협회CFDA 공로상

1981년 미국패션협회CFDA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

1976년 코티상Coty Award 남성복 명예의 전당, 여성복 수상

1970, 1973년 코티상Coty Award 남성복 수상



위대한 개츠비

<사진, 스콧 피츠제럴드>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 F. ScottFitzgerald(1896 ~ 1940)는 1896년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났다. 1920년, 자전적 소설인 「낙원의 이쪽」을 발표하면서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는다. 이후 단편과 장편을 이어 발표하는데, 우리에게 유명한 영화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또한 그의 단편집 「재즈시대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다. 이후 1925년 「위대한 개츠비」를 발표, 1927년부터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한다. 1940년 연인인 셰일라 그레이엄의 집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스토리 요약

주인공은 개츠비지만 소설은 3자인 닉 캐러웨이NickCarraway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중서부 출신의 닉 캐러웨이는 증권업을 배우려 동부 뉴욕 외곽의 웨스트 에그로 건너온다. 그의 옆집은 제이 개츠비의 호화로운 대저택. 부호인 개츠비는 밤마다 저택에서 성대한 파티를 연다. 사치스럽고 방탕한 파티의 이유는 만灣 건너편 이스트 에그에 살고 있는 데이지와 재회를 위한 수단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개츠비가 군인이던 시절 사랑했던 데이지는 그의 전쟁 파견 기간 중에 조건이 좋은 톰 뷰캐넌과 결혼을 하게 된다. 개츠비는 그의 부富가 데이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생각한다. 갖은 수단을 써 부자가 된 개츠비는 닉 캐러웨이와 친해진다. 닉은 데이지의 사촌이자 톰 뷰캐넌의 대학 동창이었기 때문이다.


닉을 통해 개츠비는 데이지와 재회한다. 이를 눈치챈 남편 톰은 호텔 스위트 룸에 모인 지인들 앞에서 개츠비의 정체를 폭로하고,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톰을 떠나 자신에게 돌아오라 말하게 한다. 데이지는 이에 대답을 피하고, 개츠비와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데이지가 운전하던 차에 톰 뷰캐넌의 불륜 상대인 윌슨 아내가 치어 사망한다. 톰은 윌슨에게 개츠비가 윌슨 아내의 불륜 상대가 개츠비이며, 그가 윌슨 부인을 죽게 한 차를 운전했다고 말한다. 윌슨은 범인을 개츠비라 믿고 그를 죽이고 자살한다.


데이지는 톰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개츠비의 장례식 때 조문조차 하지 않는다. 닉 캐러웨이는 이러한 현실에 환멸을 느껴 고향으로 돌아간다.



전편을 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거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