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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호 Dec 21. 2017

패션의 민주화, 유니클로와 <1984>_1

SPA 브랜드 유니클로의 시작

패션의 민주화


전체주의 사회가 배경인 소설 《1984》 속 당원들은 모두 똑같은 푸른 제복을 입는다. 계급에 따라 구별 지어진 옷을 입고, 그 옷은 신분과 권한을 상징한다.


윈스턴은 창가로 다가갔다.
당의 푸른 제복 때문에 그의 작고 야윈 얼굴과 초라한 몸집이 더욱 허약해 보였다.
- 《1984》, 1부, 민음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였다면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신발과 생필품을 사용했을 것이다. 개인의 모든 활동은 오롯하게 전체(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개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와 반대편에 있는 개념은 민주주의다. 물고기가 물을 인지하지 못하듯, 민주주의 체제를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의미를 잘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자유롭게 옷을 고르고 입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건 삶의 맥락 속에 체제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체제는 우리의 의복 생활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었을까?


19세기 유럽에선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적 계급이 등장했고, 의복은 신분과 계급을 나타냈다. 당시 노동자들에게 옷은 비싼 물건이었으며 중요한 재산 목록 중 하나였다. 기계의 발달로 직물 산업이 발전하며 옷은 점차 저렴해졌고, 상류 계급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패션은 중간 계급과 노동자 계급에게 점차 확산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사회 계급이 기본을 갖춘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게 되었다. 여기서 고무적인 것은 성평등 개념 또한 발전해 남성과 여성의 옷의 차이가 점차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다이애나 크레인Diana Crane은 이를 ‘패션의 민주화’ 라 정의한다. 이러한 패션의 민주화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썩 괜찮은 퀄리티의 옷을 고르고 입을 수 있다.


<사진, 빅 브라더 형상 포스터>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 패션 산업은 점차 발전했고,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등장한다. 만인이 패션을 향유 할 수 있는 패션의 민주화는 가속화되었고 스웨덴의 H&M, 스페인의 자라Zara, 일본의 유니클로Uniqlo와 같은 글로벌 SPA 브랜드가 탄생하게 되었다. 저렴하고 질 좋은 옷을 생산하고, 편하게 구입할 수 있게 SPA 브랜드는 지금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중 가장 기본에 충실한 유니클로를 대표로 꼽아보았다. 유니클로는 꼭 필요한 일상 아이템에 집중하며 SPA 브랜드 중  우리의 옷장에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트렌드와 이슈를 좇는 다른 SPA 브랜드와는 달리 유니클로는 꾸준히 기본에 충실했고, 이는 패션의 민주화에 가장 근접한 행보로 평가할 수 있다.  


유니클로와 《1984》는 대척점의 의미로 접근한다. 패션의 민주화를 그려가는 브랜드와 전체주의를 배경으로 한 소설 속 파장은 반대의 궤를 그리고 있었다.



SPA의 개념


자라, H&M, 유니클로, 무인양품. 우리에게 친숙한 SPA 브랜드다. 눈과 입에는 익숙한 SPA라는 표현이지만 정작 SPA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SPA는 어떤 의미일까? 


SPA는 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Brand의 줄임말로 미국 패션 브랜드 ‘갭Gap’이 1986년에 선보인 사업모델이다. SPA는 의류 기획·디자인, 생산·제조, 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제조회사가 맡는 패션 비즈니스 형태를 의미한다. 국내 SPA 브랜드로는 삼성물산의 에잇세컨즈8Seconds, 이랜드의 스파오Spao, 신성통상의 탑텐Topten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흔히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라고 불리는 SPA는 백화점, 임대 매장 등의 고비용 유통을 피해 대형 직영매장을 운영, 비용을 절감시켜 저렴한 가격과 빠른 생산을 경쟁력으로 한다. 보통의 의류 소매점은 상품을 판매하는 역할만 하지만 SPA 브랜드는 옷과 관련된 모든 프로세스를 직접 운영한다.


<사진, 유니클로 매장>



유니클로의 위치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계를 바꿔 나간다.
 - 유니클로 브랜드 이념


유니클로는 자라Zara의 인디텍스Inditex, H&M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SPA 패션 회사다. 유니클로는 18개국, 1700여 매장에서 2016년 1조 7,900억 엔(약 18조)의 매출을 냈고, 2020년 목표 매출은 3조 엔(약 30조)을 꿈꾸며 진정한 패션 제국을 꿈꾸고 있다. 일본의 대표 브랜드인 유니클로의 창립자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회장 야나이 다다시柳井正의 재산은 약 163억 달러(약 18조 원, 2016년 기준)로 일본 내 최고 부자로 꼽힐 정도다. 편의상 모기업 패스트리테일링을 산하 브랜드인 유니클로로 칭하기도 하는데 기업 매출의 90% 가까이를 유니클로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편의상 본문에서는 패스트리테일링을 유니클로로 표현한다.)  

  

유니클로는 초저가 브랜드 지유GU, 띠어리Theory, 꼼뜨와 데 꼬또니에Comptoir des Cotonniers, 제이브랜드J Brand 등을 보유한 일본의 패션 대기업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패션 회사인 삼성물산 패션부문 매출이 2조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자면, 그의 9배 매출을 만들어가는 유니클로의 규모는 실로 어마 무시하다.



유니클로의 시작


“사장 아들이면 다야? 큰 데 있다가 오면 다야?” 

  

유니클로 창립자, 야나이 다다시가 오고리 상사에 들어가며 생긴 일이다. 오고리 상사의 일곱 명 점원 중 한 명의 점원만 남고 모두 회사를 떠난다. 1972년, 야나이 다다시柳井正는 부친이 운영하던 신사복 전문점 오고리 상사小郡商事에 입사한다. 오고리 상사는 유니클로를 보유한 패스트리테일링의 전신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패션 회사의 조상뻘이 된다. 와세다 대학교 정경학부를 졸업한 다다시는 일본의 유통 대기업 저스코Jusco에 입사해 지점의 잡화 매장에서 일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9개월 만에 퇴사한다. 그의 부친은 야마구치현 소도시에서 신사복 판매점 오고리 상사를 운영했는데, 아들 야나이 다다시를 낙하산(?)으로 꽂아 자신의 매장에서 일하게 했다. 

  

오고리 상사의 점원들은 굴러들어 온 격인 다다시의 ‘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견하고 불평하는’ 태도에 불만을 느낀다. 부친의 매장이라는 배경만 믿고 대기업에서 배웠던 고상한 가치를 오고리 상사에서 써먹으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1949년에 세워져 23년째 원만히 운영 중이던 오고리 상사의 일하는 방식을 부정하는 태도에 점원들은 견딜 수 없었다.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초반의 다다시의 열정을 치기로 느낀 점원들은 한 번에 대거 퇴사한다. 하릴없이 그는 남은 한 명의 직원과 함께 매장의 모든 일을 도맡아야 했다. 이를 통해 사업체를 온전히 운영하며 혼자서 구매, 총무, 회계, 접객 등 다양한 업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유니클로의 사업운영 프로세스를 닦아내는데 도움이 된다.  

  

부친에게 오고리 상사를 물려받은 지 13년째 되던 1984년 6월, 히로시마에 유니클로 1호 매장이 오픈한다. 글로벌 SPA 제국의 탄생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마침, 조지 오웰이 《1984》 소설의 배경으로 하던 그 해다. 일반적인 의류 소매업에 개념과 시스템을 벗어나고 싶었던 야나이 다다시는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를 만들고 싶었다. 남녀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유니섹스 캐주얼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던 그는 새로운 형태의 의류 소매점 이름을 유니크 클로징 웨어하우스Unique Clothing Warehouse로 짓고 캐주얼하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품목을 구성한다. 면바지 셔츠재킷 스웨터 양말 속옷 등을 색상과 사이즈별로 가지런히 늘어놓는 진열 방식을 택하고, 규격화된 공산품처럼 고객 접객이 필요하지 않은 방식을 택한다.  

  

"옷도 매일 먹는 밥처럼 생필품인데 왜 항상 유행을 따라야 할까" 다다시는 기본 아이템에 중점을 두고 공산품처럼 쉽게 고를 수 있도록 하고, 낮은 가격대로 책정한다. 가격대를 1천 엔(약 1만 원) 아래로 구성하는데, 가격대를 낮추기 위해 유통마진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를 위해 제조 생산 판매 구분을 두지 않고 일괄화 시킨다.



낱말의 삭제 vs 이름의 탄생


자네는 우리의 주된 임무가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네.
우리는 매일 수십, 수백 개의 낱말을 없애고 있지.
말하자면 우리는 말을 뼈만 남도록 잘라내고 있는 셈일세.
 - 《1984》, 1부, 민음사


《1984》 속 전체주의 사회 오세아니아에서는 다른 사상을 갖지 못하도록 다양한 표현을 없앤다. 당원의 효율적 통제를 위해 말의 뼈만 남기고 낱말들을 없애는데, 유니클로는 이와 반대의 목적으로 이름을 줄인다. 이는 고객의 편의를 위해서다.  

  

유니크 클로징 웨어하우스는 말 그대로 대형 의류 창고 콘셉트의 매장을 의미한다. 의류 창고 컨셉의 개방형 매장은 오픈하자마자 인기를 끌었고 고객들은 마치 마트에서 생필품 구입하듯 셔츠와 바지를 사갔다. 매장은 점점 인기를 끌게 되었고, 다양한 고객의 의견의 수렴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는 매장의 이름이다. 고객은 유니크 클로징 웨어하우스라는 긴 이름을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어려워했다.  

  

축소 지향의 일본답게 오고리 상사는 긴 매장명에서 앞 철자 몇 개 씩을 조합해 이름을 만든다. Unique Clothing Warehouse란 이름에서 창고를 뜻하는 웨어하우스를 잘라내고 독특하고, 유일하다 의미의 Unique와 옷을 뜻하는 Clothing의 앞 철자를 따와 UNICLO라는 브랜드 명을 만든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지금의 UNIQLO와 철자가 조금 다르다. 여기에도 에피소드가 숨어 있다. 이는 한 직원의 실수에서 유래한다. 

  

1988년 3월, 유니클로는는 홍콩 합작 의류 구매사 ‘유니클로 트레이딩’을 설립한다. 당시 현지 파트너는 등기 서류에 회사명 UNICLO를 UNIQLO로 잘못 기입한다.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잘못 표기한 서류로 법인이 등록되었고, 이후 서류와 주문을 그 이름으로 주고받는다. 그런데 잘못 표기한 이름이 왠지 더 쿨해 보였다. 오고리 상사는 잘못 기입한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와 일본에 있는 모든 매장의 간판과 브랜드 라벨, 로고를 전부 바꾼다. 직원의 실수를 아이디어로 가져와 브랜딩에 활용한 것이다. 어찌 보면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실수에서도 브랜드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요소를 발견했고, 이에 과감히 투자했다. 

  

UNIQLO라는 이름은 기존의 브랜드 명과 발음은 같다. 하지만 Q 발음의 경쾌함과 유일무이함, 그리고 특별함의 의미를 지닌 Unique가 바로 떠오르는 알파벳 Q가 적용된 현재 이름은 브랜드 방향성과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매장을 늘려가며 회사의 외연을 확장하던 1991년 9월. 유니클로를 운영하던 모기업 오고리 상사는 회사명을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으로 바꾸며, 유통과 속도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다.



<계속>


패션의 민주화_유니클로와 <1984>_2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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