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콘수무스의 삶
요리를 하고 있으면 셰프, 글을 쓰고 있으면 작가다.
그렇다면 쇼핑을 하고 있는 순간, 우리는 누구일까. 흔하고 쉬운 영미권 접미사 er을 붙여 표현하자면 쇼퍼shopper. 우리말 사전에서 쇼퍼를 찾아봤다.
shop·per
[명사] 쇼핑객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을 뜻하는 영어 표현 ‘쇼핑’과 손님 또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인 한자어 ‘객客’의 만남이다. 굳이 섞어 쓰자면, Shopping客.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차가운 핫초코를 주문하는 것 같은 이도 저도 아닌 표현이겠다. 영어와 한자어의 생경한 조합. 게다가 접미사 객客은 주체적 의지를 가진 사람을 뜻하는 뉘앙스가 아닌 방청객, 등산객과 같은 외부에서 찾아온 손님과도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렇다. 조금 게을러도 되는, 외부에서 찾아온 객손님같은 쇼퍼는 주체적으로 물건을 사는 바이어buyer와는 또 다른 개념이다. 그래서 물건을 살 때 우리는 바잉을 한다라기 보다 쇼핑을 한다,라고 표현한다. 같은 구매의 의미지만, 핵심은 다르다.
모니터 위에서 이리저리 발광하는 상품을 마우스로 장바구니에 옮겨 담으며 나는 누구인가 생각했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제1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의 생각을 대충 빌려 존재를 정의해봤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쇼핑을 하고 있는 지금, 나는 고로 존재하고 있다. 물론, 저만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겠죠?
“당신이 사고 싶은 물건은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일인칭 시점의 대답과 삼인칭 시점, 두 대답으로 가를 수 있겠다.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이요.”라는 일인칭 시점과 “저 물건을 가진 내 모습을 보고 싶은, 남들이 나를 봤을 때 어떤 물건을 소유했는지 보게끔 하는 물건이요.”라는 삼인칭의 시점으로.
늘 쇼핑을 할 때 일인칭과 삼인칭의 경계를 넘놀며 소유를 합리화시키고 있다. 머리로는 치열하게, 몸은 게으르게, 마우스를 휘저으며 온라인 쇼핑을 하고 있다. 이때 대부분 소유를 타당하게 셀프 설득하며 정신 승리를 이뤄낸다. 결제하시겠습니까. 예.
내쉬는 들숨 날숨처럼 특별히 인지하지 못한 채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늘 소비하고 쇼핑한다.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 소비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현생 인류의 발달을 표현하는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를 시작으로 무엇이듯 ‘호모’란 수식어를 붙이기 좋아하는 현대 지식인의 말장난 같은 표현. 하지만 이보다 더 있어 보이는 표현은 없겠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쇼핑하는 우리는 "호모 콘수무스로서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 고 말하면 있는 힘껏 멋있어 보일 수 있다. 만화 <슬램 덩크Slam dunk> 속 '정대만'이 산왕 공고와 경기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래,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라고 말했던 것처럼 자신을 확인해보자. (쇼핑에) 포기를 모르는 자신이라고. 자고로 호모 콘수무스는 살짝 뻔뻔해야 한다.
“이런 게 멋진 인생이오, 보스 양반. 살맛나는 인생에다 닭 한 마리까지! 자, 봐요. 난 지금 바로 이 순간 마치 죽을 것처럼 행동합니다. 황천길로 떠나기 전에 후다닥 닭 한 마리를 먹어 치우는 거요.”
-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호모 콘수무스, 즉 쇼퍼에게 세상을 감각하는 방법은 물건을 사고 소비하는 일이다. 이런 감각들은 쇼퍼를 만족시키는 일을 하는 MD에게 필수적 역량이다. 벼르고 별러 길러온 쇼핑객으로서의 감각을 MD의 일을 통해 발현해본다. 덕업일치.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숫자로 매출이 찍히는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문자 한 통을 받고 뿌듯함을 더했다. 주문한 상품이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는 문자. 신난다. MD보다 호모 콘수무스의 삶이 더 재밌는 건 어쩔 수 없다. 묘하게 헛헛한 마음이지만 퇴근길이 기다려졌다. 순간, 통장을 스쳐가는 월급을 떠올랐지만 이미 배송 완료다. 시무룩해지는 통장 잔고 숫자 사이에 엊그제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 속 책 한 문장을 밀어 넣었다. 호탕한 그리스인 조르바의 말처럼. “이런 게 멋진 인생이오.”라고.
Ps. 조르바처럼 치킨과 함께 한 언박싱은 더 멋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