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렉스를 읽다
근래의 아티스트 중 새로운 흥행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 있다. “플렉스(Flex)해버렸지 뭐야.”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플렉스’란 표현이 일반인의 언어생활 속 일부가 되게 한 인물, 래퍼 염따다. 그는 자신의 부를 자랑하며 고급차와 명품 아이템, 돈다발 등을 SNS에 업로드한다. 자신의 개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염따는 롤렉스 시계를 구입한 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고, 래퍼 더콰이엇의 벤틀리와의 접촉사고 수리비를 보상하기 위해 후드티를 만들어 판다. 이런 독특함은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그의 음원 또한 차트의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삶과 작업을 플렉스 해버렸다.
플렉스는 미국의 빈곤층 출신 흑인 래퍼가 음악을 통해 부를 창출해 현금을 뿌리거나 명품을 구입하며 성공을 자랑하는 상황에서 유래됐다. 이 표현은 부와 귀중품을 자랑한다, 과시한다, 뽐내다 정도로 풀이될 수 있다. 국내에선 염따를 중심으로 기리보이, 빈지노 등 래퍼가 플렉스의 의미를 모티브로 한 음원을 발표하며 표현은 대중화되었다.
이런 흐름으로 말미암아 플렉스는 자연스러워졌다. 자랑은 재밌는 놀이가 되었다. SNS에서 자신의 소비를 업로드하는 형태는 플렉스라는 이름으로 단단하고 그럴듯하게 포장되었다. 값비싼 물건을 사고 과시하는 놀이는 플렉스란 표현을 중심으로 일종의 문화가 되었다. 굳이 Z세대나 밀레니얼 세대를 콕 집어 얘기하지 않아도 플렉스는 세대를 아우르는 대세다. 이름 없던 자랑의 사회적 현상은 플렉스란 표현을 인력(引力) 삼아 공전하게 되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 돈을 모아 명품 패딩을 사고, 아르바이트해 모은 돈으로 파인 다이닝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저렴한 SPA 브랜드 옷을 입고 롤렉스 시계를 차고, 톰브라운 슈트를 입고 초록색 마을버스를 탄다. 여기에 다양한 인문 사회적 현상을 읽는 이들의 주석이 주렁주렁 달리는 건 당연지사. 일점호화(一點豪華) 소비, 야누스 소비, 멀티 페르소나 현상의 소비적 발현 등의 설명이 따라온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5+3은 무엇인가? 5에다가 3을 더하는 거야, 라는 자기 꼬리를 집어삼키는 뱀의 말처럼 돌고 도는 말은 실제 삶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럴 땐 고전이다. 그것도 서양 고전이 아닌 동양 고전을 펼친다. 물질 만능 주의를 잉태했던 서양의 그것은 자본주의를 수입해 사용하는 현실의 우리를 관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전은 현대의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사회 흐름에 체했을 때의 바늘로 손가락 따기, 가스 활명수, 훼스탈 정도는 될 수 있다. 그런 의미로 동양 고전의 정수, 논어의 한 구절을 빌려본다.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
- <논어> 옹야편
‘바탕이 꾸밈을 이기면 촌스럽고, 꾸밈이 바탕을 이기면 텅 빈 듯하다. 꾸밈과 바탕이 고르게 조화를 이루고 난 뒤에야 군자인 것이다.’라는 뜻이다. 플렉스로 바탕을 꾸미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한 소비 유발자로 살아가는 현대 노동자로서 소비는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공자의 말마따나 소비로 꾸밈만 채우면 촌스러울 일이다. 진정한 멋은 꾸밈과 바탕의 조화에서 발현되겠다. 바탕(내면) 또한 알맹이를 꽉꽉 채우자는 얘기다. 바탕을 채운다고 실제로 군자가 되는 것은 요원하겠다만, 플렉스를 가치 있게 하는 멋있는 사람은 될 수 있다.
SNS에 이런 콘텐츠가 업로드되길 기대한다. 롤렉스를 채운 손으로 책을 들고, 한정판 운동화를 신고 봉사활동을 하는 이들을. 멘트는 요즘스럽게 적으면 좋겠다. #플렉스해버렸지뭐야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