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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호 Jun 01. 2020

축소지향의 일본인과 아베 마스크

이어령 전 장관의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축소지향’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는 일본의 고전, 역사, 현재의 과학기술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근본적인 개념이라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하이쿠)안에 언어를 압축하고, 밥상을 아주 작은 상자 모양으로 축소시켜 가동(可動)적인 음식으로 만드는 것들은 일본인의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어떤 것이든 작게 만드는 것에 능하다.


지난 4월. 일본 아베 총리는 코로나19 대책본부 회의에서 일본 각 가정에 천으로 만든 마스크를 2장씩 나눠준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 천 마스크는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세제로 빨아서 여러 번 쓸 수 있기 때문에 급격히 늘고 있는 마스크 수요에 대응하는데 대단히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한 세대당 2장씩이다. 냉정하게 봤을 때, 3인 가족 또는 4인 가족은 외출을 마친 가족이 돌아와서 마스크 세탁과 건조를 마치고 나서야 외출이 가능한 셈이다. 마스크를 쓰고 발표한 날짜가 만우절이라 그럴까. 작은 천 마스크는 우스꽝스럽게 만우절의 의미와 어울려 보인다.

 

얇은 천을 여러 번 겹쳐 만든 이 마스크는 한 눈에 보기에도 크기가 매우 작다. 착용시 코와 입을 겨우 가릴 정도다. 가로 폭과, 주름을 펼 수 있는 세로 길이를 비교해 봤을 때 일반 일회용 마스크의 크기와 상당한 차이가 난다. 실제 마스크를 받은 사람들은 안 그래도 작은 마스크인데 세탁시 더 작아진다며 SNS를 통해 사진을 올렸고, 아베 총리의 마스크 착용 모습을 흉내 내며 비판을 넘어 조롱까지 이어졌다.

 

일명 아베 마스트(아베노 마스크)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곰곰이 따지고 보면 느닷없는 공약과 대책은 드물다. 맥락 없는 대책은 없다. 일본의 마스크 배포 정책은 느닷없이 튀어나온 아이디어가 아닌 현재 일본 정부가 담고 있는 정책적, 지적 담론의 소산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책의 축소지향 일본인의 성향이 팬데믹 시대에 극단적으로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비단 이 정책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여러모로 덕분에 아베 내각의 지지율 또한 ‘축소지향’이다.

 

어떤 물건을 작게 만들어 자기 몸 안에 끌어들이려는 욕망. 일본인 특유의 축소지향적 사고 덕분에 워크맨과 다마고치, 무인양품과 같은 미니멀리즘 브랜드,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 등이 탄생했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은 패션과 소비재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일본의 디자인을 공부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산업 또한 그동안 일본의 디자인 역량을 따라잡기 위해 분주했다. 하지만 이제 흐름이 바뀌고 있음이 눈에 보인다. 역량이 너무도 뛰어나서 따라잡을 수 없는 상대가 아님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도대체 예상 할 수 없이 뛰어난 디자인 역량을 가진 국가가 아닌, 수많은 플레이어 중 하나로 말이다. 엘리트와 수재가 모여있는 정부 기관의 날 선 정책에서 축소지향의 일본의 한계가 보였다고 하면 비약일까. 아베의 마스크는 비약이라고 하기에 까일 수 있는 많은 약점을 쥐고 있는 정책이기에, 패션의 이름을 빌려 축소지향의 한계를 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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