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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호 Feb 15. 2017

샤넬과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신화가 된 브랜드

"You know, they ask questions... What do you wear to bed?

So I said, 'Chanel No. 5!'"

"보통, 사람들은 나에게 묻곤 했다... 무슨 옷을 입고 잠자리에 드는지?

그럼 나는 말했다, '샤넬 No.5'."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2012년, 샤넬에서는 그녀의 육성 인터뷰를 전수 조사한다. 언급한 육성 파일을 찾아 실제 광고로 사용하기도 했다.


샤넬을 갖고 싶다.

샤넬 로고가 붙은 상품이 아니라 샤넬이 주는 브랜드 이미지와 아우라를 갖고 싶다는 말이다. 여자들에게 샤넬이 주는 이미지는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일 것이다. 샤넬백을 들고 있고, 향수를 뿌리고, 립스틱을 바르는 일련의 모든 행위에 샤넬이 붙어있으면 특별한 기분이 드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명품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도, 선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브랜드란 묘하다.


우리에게 코코 샤넬Coco Chanel로 알려진 샤넬의 본명은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1883 ~ 1971)이다. 브랜드만큼이나 그녀의 삶에 대한 전기와 영화들 또한 유명하다. 어떻게 패션을 시작했는지, 가방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향수, 샤넬 라인 치마의 이야기 등등. 그녀를 둘러싼 브랜드와 이야기들은 이미 패션계의 신화가 되었다. 그 신화는 브랜드의 가치를 명품 반열로 올려놓았고 아직도 사람들이 갖고 싶게끔 만들었다.


샤넬, 그녀의 이야기만으로도 책 한 권이 모자랄 것이다. 신화는 계속 확대되고 재생산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폴 고갱_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1891), 오르세 미술관

「달과 6펜스」는 폴 고갱Paul Gogang의 삶과 예술작품을 모티브로 쓰여졌다.

신화가 된 예술가 폴 고갱의 삶은 소설 속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삶으로 변용된다. 이 과정에서 고갱의 삶은 더욱 신화화化된다.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주식 중개인 생활을 하다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 가정을 떠난다. 이는 폴 고갱이 주식 중개인을 하였다는 사실과 동일하다. 고갱이 타히티 섬으로 떠난 이야기까지 소설에서 모티브로 차용된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폴 고갱의 삶의 궤적을 좇는 전기 형식일까?

물론 아니다. 그보다 더 극적이고 강렬하며 예술적이다. 천재란 이런 것인가...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끔 서술한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나도 무언가를 마음에 품게 하고, 실제로 행동하고 싶게끔 만든다. 매혹적인 이야기와 이를 풀어내는 화자의 설명과 해석, 부연은 책을 읽는 또 다른 흥미 포인트다. 고갱의 그림들과 실제 삶을 소설 내용과 비교해보는 방법 또한 또 다른 독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화화된 샤넬과 폴 고갱의 신화를 소설로 담은 「달과 6펜스」.

신화를 담고 있는 두 이야기가 이번 꼭지의 키워드다. 신화는 사람들은 설레게 하고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 브랜드와 책이 담고 있는 신화를 따라가 보면 우리의 삶도 조금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목차

1.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2. 아이콘이 된 샤넬

3. 샤넬과 폴 고갱의 신화




1.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폴고갱 #타히티 #스트릭랜드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소설을 모두 다 베껴 쓰고 싶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와 주인공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의 말들은 나에게 던지는 말 같았고, 적지 않은 울림을 주었다. 문구들 하나하나 탐나는 문장이었다.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말과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작가로 등장하는 화자를 통해 풀이된다. 소설 속에서 작가로 나오는 화자(내레이터)의 표현과 깊이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역시 칭송받는 고전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서머싯 몸은 「달과 6펜스」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전성기를 누린다.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1874 ~ 1965)은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다.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 대사관의 고문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다. 10살 때, 양 부모를 잃고 목사인 백부의 집에서 성장한다. 성장 후 킹스 컬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에서 의학을 공부하지만, 문학에 뜻을 품고 1897년 첫 소설 「램버스의 라이자」를 발표한다. 이후 소설과 희곡을 계속 발표하고 1915년, 장편소설 「인간의 굴레」를 출간한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군의관으로 근무하다 첩보원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19년 「달과 6펜스」를 발표하며 그의 작가적 지위는 확립되고, 이후 단편과 장편, 희곡, 에세이 등을 지속 출간한다. 1954년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명예 훈위 칭호를 받게 된다.


그를 위대한 작가 반열로 오르게 한, 폴 고갱을 모티브로 한 소설 「달과 6펜스」의 내용은 이렇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작가로서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삶을 좇는 글을 쓴다. '나'가 바라보는 스트릭랜드의 삶 이야기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에서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평범한 가정을 꾸려가는 40대 증권 중개인이다. '나'는 첫 작품을 출판하면서 문학에 관심이 많은 스트릭랜드 부인과 친분을 쌓게 된다. 갑작스레 스트릭랜드는 편지 한 통만 남기고 집을 떠나 파리로 간다. 부인의 부탁을 받고 '나'는 스트릭랜드를 설득하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젊은 여자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 것이었다.

'나'는 스트릭랜드의 예술에 대한 열정에 놀라지만, 가족에 대한 무책임함을 질타하고 돌아선다. 5년 후, '나'는 런던에서 파리로 거처를 옮긴다. 파리에서 스트릭랜드와 절친한 네덜란드 화가 더크 스트로브를 만나게 되고, 더크를 통해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알게 된다. 하지만 당시 스트릭랜드의 그림은 조롱받고 무시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크는 스트릭랜드를 인정하고 친절하게 돌봐준다. 스트릭랜드는 열병을 앓게 되는데, 더크는 그의 아내 블란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집으로 데리고 와 간호한다.

블란치는 스트릭랜드를 돌봐주는데, 그 과정에서 그에게 애정을 품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더크는 아내에게 집과 아틀리에를 넘기고 집을 나간다. 그러나 3개월 후 블란치는 스트릭랜드에게 버림받고 음독자살을 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더크는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스트릭랜드의 행동에 '나'는 분노하지만 이는 작가적 호기심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실제 폴 고갱이 머물렀다던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
이후 스트릭랜드는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떠나고, '나'는 스트릭랜드가 죽고 나서 그가 최후에 머물렀던 타히티로 오게 된다. 그곳에서 지난 시간 동안의 스트릭랜드의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스트릭랜드는 섬에서 그림을 계속 그리다 원주민 여자 아타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평화로운 생활을 하던 중 나병에 걸리게 되고, 자신의 오두막 집 벽에 그림을 그린다. 눈이 멀고 죽음을 맞이한 스트릭랜드는 집을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사후 그의 그림은 걸작으로 인정받으며 미술계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나'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글을 쓰게 된다.


줄거리로 짧게 요약하기에는 아쉽다. 가치 있는 문장과 표현이 넘쳐 밑줄을 가장 많이 그은 소설이다. 어찌 보면 단순하고 보편적인 글이지만, 현재의 심정을 대변했기에 밑줄을 더 긋지 않았을까.


제목인 「달과 6펜스」에서 '달'은 영혼과 관능의 세계, 즉 예술가의 이상과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열정을 나타낸다. 이에 반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를 대변한다. 천박하고 세속적이며 낮은 가치를 암시하는 '6펜스'의 세계에서 '달'의 세계로 탈출하고자 하는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이다.


실제 6펜스는 영국에서 유통되던 가장 낮은 단위의 화폐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제목을 짓게 되었을까. 앞서 나온 서머싯 몸의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1915)의 영향이다. 타임스 문학 부록The Times Literary Supplement에서 소설의 주인공 필립 케어리를 '달을 동경하기에 바빠 발밑에 떨어진 6펜스도 보지 못한' 사람으로 논평한다. 이 논평을 읽게 된 작가는 그 비유를 활용해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대중성을 지향하는 그의 위트가 보이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달과 6펜스」는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역량을 쌓으려 하는 이들이 보면 많은 영감을 얻게 될 소설이란 건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책과 샤넬은 어떤 연계점이 있을까.

일단 샤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 아이콘이 된 샤넬

#명품 #워너비 #아이콘


"La mode se démode, le style jamais."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 가브리엘 샤넬




현대 패션의 역사에서 그녀의 이름을 빼고 논할 수 없다.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가 사랑하는 명품 브랜드 샤넬의 이야기다. 패션의 아이콘이기도 하지만 현대 여성의 아이콘이기도 한 그녀와 그녀의 브랜드 스토리는 이제 신화화되었다.


파리의 작은 *아틀리에atelier에서 시작한 샤넬 하우스는 샤넬 No.5, 샤넬 슈트, 리틀 블랙 드레스, 트위드 재킷, 2.55백 등을 만들어내며 세계적인 패션 왕국을 건설한다. 샤넬 룩look, 샤넬 라인line(무릎 아래 5~10cm 정도 내려오는 길이) 등 사전에 등재되는 용어들만 봐도 영향력은 가히 알만하다.


*아틀리에 : 화가에게는 화실, 공예가에게는 공방(工房), 사진가에게는 스튜디오 등으로도 불리며, 각각 일의 성질에 맞추어서 특수한 구조를 갖춘다.


샤넬 이야기만 가지고도 책 한 권 이상이 나올 수 있다. 간략하게 다루는 본 편에서 압축적이고도 핵심적인 내용만 알아도 브랜드를 바라보는데 재밌는 요소가 될 것이다.


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 프랑스 남서부 소뮈르Saumur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다. 12살 때 어머니와 사별하고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생활한다. 보육원에서 직업 교육으로 바느질을 배웠고, 이때 습득한 기술은 훗날 그녀가 패션 감각을 실현시킬 수 있게 한 뒷받침이 되어주었다.

보육원에서 나와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 생활을 하게 된다. 당시 샤넬의 별칭은 '코코'였는데 이는 카바레 가수 시절 샤넬이 불렀던 노래 '누가 코코를 보았니Qui qu'a vu Coco'에서 유래한 별칭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녀의 이름을 코코 샤넬로 알고 있기도 하다. (그녀 자신은 사실상 이름이 되어버린 이 별명을 별로 좋아 하진 않았다.)

속설로는 그녀의 애칭 코코Coco의 'C'는 샤넬 로고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스토리로는 그녀가 자라온 오바진Aubazine 수도원의 비잔틴 양식 스테인드 글라스의 커브 문양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도 한다. 영감의 원천은 그녀만이 알 것이다.
샤넬은 카바레 가수를 하다 명문 재력가인 에티엔 발상Étienne Balsan을 만나게 되고, 그의 지원을 받아 생활하며 패션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샤넬은 당시 발장의 애인이었던 가수 에밀리엔 달랑송의 모자를 만들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다. 당시 여성용 모자는 얼굴을 가릴 정도로 챙이 넓고 과장된 레이스 장식이 유행이었으나, 샤넬은 장식을 과감히 없애고 챙도 거의 없는 단아한 모자를 만들어 귀족들의 사랑을 받는다. 이때부터 그녀는 화려하고 과장된 요소들을 과감히 버리고 자신만의 단아한 스타일을 고수한다.

1910년, 그녀는 파리에 여성용 모자 매장을 오픈한다. 이후 발상의 친구인 영국인 폴로 선수 아서 카펠Arthur Capel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의 도움을 받아 더 큰 매장을 오픈하며 패션 아틀리에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이때부터 샤넬의 패션 혁명은 시작된다. 남성의 속옷용으로 사용되던 저지jersey 소재를 활용해 의상을 제작, 마린룩 모티브를 활용한 세일러 블라우스와 스웨터 같은 편안한 의상을 제작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스웨터는 남성 스포츠웨어로만 국한되어 있던 것으로, 여성복에 이를 도입한 것은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또한 의상에 주머니Patch pocket을 달아 여성들의 손을 자유롭게 하게 했다. 이 또한 남성 노동자의 복식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것이다.

이러한 의상은 프랑스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고, 1918년, 파리 뤼 캄봉Rue Cambon 31에 꾸뛰르 하우스를 오픈하며 샤넬의 명성을 확고히 한다. 1921년에는 샤넬의 대표하는 향수 '샤넬 No.5'를 출시한다. 패션계에서 향수를 만든다는 건 당대에는 상상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향수 업체가 아닌 곳에서 말이다. 게다가 천연향과 인공향 알데하이드Aldehyde을 혼합해 만든 최초의 인공향 향수로 일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1924년 최초의 메이크업 라인 소시에떼 데 빠르펭 샤넬Societe des Parfums CHANEL이 만들어지고, 시그니처인 레드 립스틱도 만들게 된다.

1926년, 지금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를 선보인다. 당시까지만 해도 블랙은 하인들이 입거나, 상복으로 입던 컬러였다. 하지만 샤넬은 저지 소재를 활용해 블랙 드레스를 디자인했고, 이에 레이스 등의 장식을 더해 여성스러움을 배가 시켰다. 여성의 풍만한 라인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남성복에서 차용되던 단순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리틀 블랙 드레스의 단순성과 기능적 디자인은 흉내내기가 쉬워 저지 소재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로 변주되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복제가 더욱 성행했는데, 샤넬은 쿨하게 자신의 디자인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로 생각하며 특별한 반응을 비치지 않았다. 이는 오히려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가치를 소구 하게 되었고, 샤넬 드레스의 희소성을 높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1930년, 미국의 영화제작자인 새뮤얼 골드윈Samuel Goldwyn의 요청으로 할리우드 배우들의 의상을 제작하게 된다. 무대의상과 영화 의상을 통해 샤넬의 옷들은 더욱 각광을 받게 되어 브랜드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꾸뛰르 하우스를 닫고 남부 프랑스로 피신하게 된다. 사실상 강제 폐업 상태였던 시기를 지나 1954년, 꾸뛰르 하우스 직원들을 불러 모아 다시 오픈한다. 남성 디자이너들이 주도하던 코르셋과 페티코트Petticoat(치마 아래에 장착하는 여성용 속옷)에 반발하며 트위드Tweed 자켓과 퀼트 백을 세상에 내놓는다.
트위드 재킷은 실용성과 우아함을 겸비해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템이다. 또한 2.55 백이라고 불리는 퀼트 백은 구매 대기 리스트를 적어야 할 정도로 여성들의 워너비 백이기도 하다. 1955년 2월에 만들어져 2.55라고도 불리는 이 백은 최초로 어깨로 멜 수 있는 가방으로도 유명하다. 가방에 체인을 달아 한쪽 손으로 들 수 있게끔 한 것이다.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당시 불편하게 가방을 들고 다녀야 했던 여성들에게 한 손의 자유를 쥐어준 것이었다.

이후 계속 바느질과 디자인을 놓지 않았고 “내가 만든 전설이 더 발전하고 번성하기를 꿈꾸며, 샤넬이 오랫동안 행복한 브랜드로 남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1971년 세상을 떠난다.

1978년 샤넬 레디 투 웨어Chanel Ready to Wear가 탄생했고, 1983년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독일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1933 ~ )를 수장으로 영입해 샤넬 왕국을 이끌어 간다.


어찌 보면 길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한없이 줄이고 줄인 샤넬의 스토리다.

20세기 여성 해방의 아이콘으로 불리기도 한 샤넬은 의복에 있어 여성 구속의 자유를 구속하던 것들을 하나씩 없앴고,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복식을 여성의 복식으로 끌어왔다. 또한 커리어 우먼으로써 사교계의 중심에 있었던 전형적 여성의 롤모델이기도 했다. 샤넬 브랜드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현대 패션에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여성들이 샤넬을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3. 샤넬과 폴 고갱의 신화

#신화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어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전설적인 사건들은 주인공을 불멸의 세계로 들여보내는 가장 확실한 입장권이 되어준다.

-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신화다.

「달과 6펜스」와 샤넬의 공통점은 신화화되었다는 것이다. 「달과 6펜스」를 통해 폴 고갱의 삶은 재조명되었고, 가브리엘 샤넬의 의상을 통해 브랜드 샤넬은 갖고 싶은 워너비 브랜드가 되었다.

마리 로랑생_코코 샤넬의 초상(1923),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이러한 과정에 밝은 면만 있지는 않았다.

샤넬은 '여성의 몸을 자유롭게 하라'는 자신의 철학을 의상을 통해 여성들에게 전파하며 구속되어 있던 여성의 신체들을 옷에서부터 좀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물론 그런 능력은 신화화되고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한계 또한 존재했다.


부자 연인들과의 관계에서 얻게 된 지원 통해 자신의 아뜰리에를 열고 작업을 하게 된 것은 시대적, 환경적 배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으로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한계적 요소가 있었다. 바로 스파이였다는 그녀의 행적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가 나치의 점령을 받았을 때, 그녀는 독일군 장교 바론 한스 귄터 본 딩클라게Baron Hans Günther von Dincklage와 교제한다. 그와 함께하며 나치에 적극 협력해 그녀의 옛 애인의 친구인 처칠Winston Churchill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던 공작에 가담했다고 알려져 스위스로 망명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샤넬과 처칠의 함께 있는 모습

2016년 3월 16일, 프랑스 역사학자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작 기록을 한 문서를 공개하며 의심으로만 여겨졌던 부분이 드러나 많은 이들이게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부분이 샤넬의 신화화에 있어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묘하게도 「달과 6펜스」의 작가 서머싯 몸의 행적과 닮아 있다.

영국 작가 서머싯 몸 또한 첩보활동을 한 요원이었다. 영국 해외정보국(M16)의 요원으로 제1차 세계대전 때 군의관으로 근무하며 첩보 부원이 되었으며, 1917년에는 중요 임무를 띠고 러시아에 잠입하여 활동한 기록이 있다. 비슷한 행적이지만 묘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서머싯 몸은 자국을 위해 활동을 했던 반면 샤넬은 자국을 점령한 쪽의 일을 도왔다는 점이다. 이런 접점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파리의 뤼 캄봉Rue Cambon 31의 샤넬 매장

독일 철학자 헤겔Hegel은 「법철학」을 통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라고 했다. (갑자기 난데없이 철학 이야기인가 싶지만 좀 더 얘기해보자면...)

미네르바의 부엉이(지혜 또는 철학)는 낮이 지나고 밤에 날개를 펴는 것처럼, 역사는 이루어진 조건들이 지난 이후에 그 뜻과 의미가 분명해진다는 의미다. 쉽게 얘기하자면 '거리 두기'다. 당대의 평가는 시간이 지나야 좀 더 명확해지고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신화화되어 칭송받는 샤넬이지만 최근 밝혀진 스파이였던 흔적은 우리에게 브랜드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한계가 있어도, 그녀가 창조한 스타일은 불멸의 이름을 가져가며 패션의 역사에 남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계속 사랑받을 것 또한 틀림없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를 통해 신화화된 폴 고갱과 패션을 통해 신화화된 샤넬을 이야기를 함께 다뤄봤다. 어느 꼭지보다 디자이너의 히스토리가 방대하고 역사적이어서 내용을 모두 전달하기엔 지면이 부족했다.(기회가 되면 좀 더 길게 다루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대략적인 서사만 알고 있어도 쇼핑을 하거나 백화점에 가게되었을때의 재미는 배가될 것이다. 물론 선물할 때 이런 이야기들도 곁들여주면 좋다.


책과 브랜드의 공통된 키워드를 통해 패션 브랜드를 바라보는 시각이 5cm는 더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엮어보았다.(샤넬 No.5의 숫자를 이렇게 인용해본다.)  옷장의 패션 브랜드들이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라는 것에 새삼 놀랄 것이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입고 있는 옷의 라벨을 한 번 들춰보자.

책장말고도 재밌는 이야기들이 옷장에도 숨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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