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패션위크 쇼장 여행_앙팡 테리블
그들을 구원하라!
나에게 이성이 생겨났다. 세계는 선하다. 나는 삶을
축복하리라. 내 형제들을 사랑하리라. 이것은 더 이상 유년
시절의 약속이 아니다. 노쇠와 죽음에서 벗어날 희망도
아니다. 신이 나에게 주었으니, 나는 신을 찬양한다.
- 아르튀르 랭보, 나쁜 피 中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 정조 때, 문인 유한준의 말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장소들을 바라보는 눈길을 달리했을 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는 다를 수 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기만 했던 파리. 무심히 지나쳤던 곳에서 펼쳐진 패션쇼의 화양연화 같은 순간들을 되짚어보자니 다시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싶어 졌다.
길가의 소음이 필름 소리 돌아가는 느껴질 정도 파리는 매력적인 도시다. 영화 같은 이 곳에서 펼쳐진 패션쇼는 어떤 모습일까.
패션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파리는 또한 영화의 도시다. 의례 영화하면 미국 LA가 떠오를 테지만, 영화의 탄생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최초의 영화를 상영한 뤼미에르Louis Lumière 형제의 나라이기도하다. 활동사진에서 영감을 받은 뤼미에르 형제는 재봉틀을 돌리게 하는 노루발을 보고 필름을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게 만드는 시네마토그라프cinématographe를 개발한다. 이후 형제는 1895년 프랑스 남부 리옹에서 최초의 대중영화를 상영해 영화의 역사를 탄생시킨다. 영화를 의미하는 '시네마cinema’라는 단어도 시네마토그라프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영화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애정은 가히 알만하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에게 영화관은 특별하다.
파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영화관은 바로 르 그랑 렉스Le Grand Lex다. 유럽에서 가장 큰 영화관(또는 극장이라고도 불리는) 르 그랑 렉스 1930년대에 지어져 현재까지도 영화 및 전시 등이 열리고 있어 문화 예술의 성지 같은 곳이기도 하다.
이 곳 르 그랑 렉스에서 프랑스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패션쇼가 펼쳐진다.
*그는 고급 기성복Ready to wear을 중단하고 고급 맞춤 의상인 오트쿠튀르에만 전념하기로 한다.
장 폴 고티에가 누군데 그래?
장 폴 고티에는 프랑스 패션계에서 가장 전위적 디자이너로 불리며 '패션계의 악동'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그의 손을 거친 몇몇의 작품들을 보면 아~ 이 사람이었구나 라고 할 것이다. 최근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로 DDP에서 '장 폴 고티에 展' 개최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마돈나Madonna의 콘 브라Cone bra를 꼽을 수 있다. 1990년 월드 투어를 위해 고티에가 디자인한 의상이다. 이 의상을 통해 마돈나에게 도전적이면서 섹시한, 강력한 여성성을 부여했다. 당시 고티에는 코르셋을 바깥으로 노출시키는 전위적인 디자인을 가리켜 "코르셋이 억압과 순종의 의미가 아닌 권력, 노출과 유혹의 연결고리를 상징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레이디 가가의 파격적인 패션의 원류는 바로 마돈나와 장 폴 고티에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제 5원소에서 밀라 요보비치가 입었던 붕대 모티브의 미니멀한 의상 역시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 한 옷이다. 영화도 화제였지만 당시 그가 디자인한 의상 역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주목을 끌었었다. 용기 디자인과 향기로 유명한 장 폴 고티에 향수다. 그의 디자인적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향수병 모양은 용기 디자인의 혁신을 가져오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인 커리어는 역시 에르메스Hermes의 수석 디자이너 경력이다. 다른 명품 브랜드들의 가격을 그냥 고가 기성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브랜드... 의 디자이너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활동했다. 물론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장 폴 고티에'의 컬렉션과 함께 말이다.
1952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18살 때, 당시 최고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men의 눈에 띄어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고용된다. 이후 쿠튀르 하우스에서 독립해 1978년 자신만의 첫 컬렉션을 선보이며 진정한 '패션계의 악동enfant terrible'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남자 모델에게 치마를 입히고, 여자 모델에게는 콘브라를 입혀 여전사의 모습을 구현한다. 마르고 늘씬한 모델만을 런웨이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뚱뚱한 모델, 나이가 많은 모델을 세우며 '아름다움은 한 가지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아름다움이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자신의 철학을 설파한다.
장 폴 고티에는 상업화된 기성복 컬렉션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파리의 르 그랑 렉스에서 마지막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을 선보인다. 이후 그는 오트쿠튀르에만 전념하며 예술적 패션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장 폴 고티에가 마지막으로 프레타 포르테를 선보인 르 그랑 렉스는 어떤 곳일까?
사실 외관만 봤을 때... 그리 특별해 보이거나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건축물이 세워진 당시의 시대상과 영화의 역사의 궤를 함께한 그곳의 상징성을 알게 된다면 꼭 가야 할 곳임에는 틀림없다.
1932년 지어진 르 그랑 렉스는 아르데코artdeco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아르데코 양식은 192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장식 미술 양식으로, 흐르는 듯한 곡선을 즐겨 썼던 아르누보artnouveau와는 달리 기본형의 반복, 지그재그와 같은 기하학적 무늬를 사용한 양식이다. 멀티플렉스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신기하기만 한 곳이다. 그 규모와 양식은 영화를 더욱 영화처럼 느끼게 한다.
영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영감을 받은 옛 그리스 로마의 조상, 모로코의 석고 미장, 야자수, 아케이드와 고전주의 양식으로 장식한 객석은 영화를 보는 경험을 더욱 색다르게 만들어 줄 것이다. 천장을 꾸미고 있는 조명은 밤하늘의 구름과 별자리 모양이라고 하니 암전이 되는 순간이 기다려질 수밖에! 티켓팅을 하고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된다. 본인에게 가장 좋은 뷰를 골라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 언어로 영화를 본다는 것.
파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전방위적인 체험이 아닐 수 없다.
영화뿐만 아니라 르 그랑 렉스의 역사를 보여주는 백스테이지 투어도 있다.
기계식 영화를 보여줬던 당시의 공간을 재현해놓았고, 렉스를 방문한 수많은 스타들의 사진과 싸인 또한 만날 수 있다. 스타들이 머물렀던 개인 방, 영화 특수효과 체험 등 평범한 박물관, 전시관과는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여유 있게 영화관과 투어를 즐길 수 있다. 투어는 40분 정도면 충분히 돌아 볼 수 있어 부담없다.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입모아 추천하는 곳. 영화를 좋아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시네마의 도시에서 시네마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르 그랑 렉스에서 좋아하는 배우, 영화의 흔적을 아로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곳에서 펼쳐졌던 장 폴 고티에의 패션쇼도 떠올리면서 말이다.
르 그랑 렉스Le Grand Lex
1 Boulevard Poissonnière, 75002 Paris
Tel : 08 92 68 05 96 / Homepage : www.legrandrex.com
Open : 10:00 ~ 19:00 (백스테이지 투어는 수요일 ~ 일요일)
투어 입장권: 11€ (18세 미만은 9€)
*파리 패스(교통수단 패스) 교환처가 바로 르 그랑 렉스다. 교환만 하고 갈 것이 아니라, 이 곳을 제대로 즐기고 가자.
*매년 4월, 쥘 베른 어드벤처 영화제Jules Verne Adventure Film Festival 이 곳을 중심으로 열린다. 6일간의 일정으로 약 4만여 명이 오고 간다고 하니 좋아하는 스타를 찾아보도록 하자.
지하철 : Bonne Nouvelle (8,9호선)
옷 읽는 남자,
파리 패션쇼장을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