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패션위크 쇼장 여행_첫 직관直觀
나는 걷고 있었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그래서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뮤즈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아르튀르 랭보_나의 보헤미안(몽상) 中
도시 자체가 패션
굳이 패션이 아니어도 예술의 기운이 흘러넘쳐 공기마저 맛이 다른 도시, 파리다.
나처럼 옷을 업으로 했던 사람도 패션위크의 패션쇼를 간다는 건 쉽지 않고, 특별한 일이다. 딱 한 번, 파리에서 패션쇼를 직관한 적이 있다. 눈이 흔치 않은 도시 파리에서 눈 오는 날,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에서 직접 본 패션쇼는 신세계였다. 뉴스와 인터넷에서 보던 패션피플들 사이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었다.
암전이 되고 쇼는 시작한다. 낮은 베이스의 리듬이 쿵쾅대고, 모델들의 워킹 걸음에 맞춘듯한 음악이 흐른다. 순간 관객들은 긴장한다. 쇼장은 카메라 셔터음과 음악만이 공전한다. 난생처음 본 패션쇼가 파리에서 본 패션쇼라니... (파리에서 본다면 촌놈인 나) 나는 입을 벌리고 연신 카메라 셔터만 눌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본격적으로 옷을 업으로 하기 전의 경험이었지만, 문외한이던 당시에도 신기하기만 한 경험이었다.
옷을 업으로 하지 않은 사람들(실제 패션업을 한다고 해도...)에겐 먼 나라,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뉴스와 기사, 연예인들의 이야기로만 전해 듣는 파리 패션쇼장의 현장감은 현실의 우리와는 너무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패션쇼를 한 브랜드들을 알고, 입고, 갖고 싶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우리는 파리를 여행 올 수 있고, 백화점과 면세점, 편집샵에서 그 브랜드들을 살 수 있다.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파리까지 오는데... 단순히 그 상품을 사는 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다. 파리 여행을 하면서 단지 그 브랜드의 상품을 산다Buying라는 것 만으로 파리와 패션 브랜드에 가졌던 환상을 100% 채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뉴스와 기사, TV에서 봤던 그 패션쇼에 입장을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쇼가 열렸던 장소에 갈 수 있다. 꼭 패션위크 기간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다시 가봤다.
처음 가 본 패션쇼장, 퐁피두 센터.
이 곳에서 이브 생 로랑의 마지막 패션쇼가 열렸다.
이브 생 로랑은 프랑스 패션을 세계의 중심으로 이끈 크리스찬 디올, 코코 샤넬과 더불어 20세기 패션 아이콘으로 불리는 디자이너다. 갖고 싶은 워너비 브랜드지만 사실 그와 브랜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일반인들에겐 그저 명품이구나...라는 시선이 대부분. 그에 대한 전기와 영화가 나왔어도 패션에 관심이 많지 않은 이상 찾아서 보기란 쉽지 않다.
이브 생 로랑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 브랜드와 옷들이 조금은 달리 보일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컬렉션을 선보였던 퐁피두 센터에 대한 시선까지도.
이브 생 로랑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57년, 당시 파리 최대 오트쿠튀르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되게 되면서부터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살이었다! 크리스찬 디올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그의 어시스턴트 디자이너였던 이브 생 로랑이 전격적으로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된 것이다.
이브 생 로랑은 당시 첫 컬렉션으로 트라페즈 라인Trapeze Line(사다리꼴 라인, 어깨라인의 폭이 넓고 아래로 갈수록 실루엣이 넓어지는 스타일)의 의상을 선보이며, 고풍스럽고 우아한 스타일에 신선한 감각을 담았다는 극찬을 받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기존의 보수적인 살롱 고객과 경영진에게는 그의 파격적인 행보와 디자인은 위험 요소이기도했다. 1960년 크리스찬 디올에서 마지막 컬렉션 이후, 경영진은 그를 군에 입대시키며 디올의 수석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생 로랑은 20일간 군 생활을 하지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동성 연인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e의 도움을 받아 디올 하우스로부터 보상금을 받고, 투자를 유치해 1961년 자신만의 이브 생 로랑 쿠튀르 하우스를 설립한다.
1962년 1월, 파리의 폴랭 호텔Hotel Forain에서 이브 생 로랑(줄여서 YSL)의 첫 컬렉션을 선보인다. 「라이프Life」에서 '이브 생 로랑은 샤넬 이후에 최고의 슈트 메이커Suit Maker' 라는 찬사를 보내며 성공적인 독립 브랜드 데뷔를 알리기도 했다. 이후 1965년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을 컬렉션에 도입한 컬러 블록Color Block드레스, 1966년 남성용 턱시도에서 영감을 받은 르 스모킹Le Smoking을 선보이며 패션계를 뒤흔든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별다를 게 없는 화려한 옷으로 보이겠지만, 당시 여성의 복식에 큰 파격을 던진 새로운 개념의 도입이었다. 예술 작품을 옷의 모티브로 삼아 전면으로 드러낸 드레스와 여성 정장에 팬츠를 적용시키는 아이디어는 패션계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50여 년 전의 옷들이지만 현재의 시각으로 봐도 촌스럽지 않고 세련됨이 느껴진다. 이래서 생 로랑... 생 로랑... 하는 거다.
2002년 그의 고별 컬렉션 이후 수석 디자이너로 톰 포드Tom Ford, 스테파노 필라티Stefano Pilati가 이어서 맡게 되었고, 현재는 디올 옴므Dior Homme의 디자이너로 유명세를 떨친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브랜드를 이끌어가고 있다. 2012년, 수장을 맡게 된 에디 슬리먼은 '이브 생 로랑'에서 '이브'를 뺀 '생 로랑'으로 브랜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지금 우리가 '이브 생 로랑' 보다 '생 로랑'이 입에 익숙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화장품과 일부 액세서리는 '이브 생 로랑YSL' 브랜드를 사용하기도 한다.
거대한 '이브 생 로랑' 브랜드 왕국을 만든 이브 생 로랑은 2008년 6월,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스 사르코지, 장 폴 고티에, 존 갈리아노 등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애도를 표했다고 하니... 프랑스에서 그의 위상과 존재감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브랜드 설명에서 돌아와 퐁피두 센터다.
1977년 완공된 이 곳은 조르주 퐁피두Georges Pompidou 프랑스 대통령의 문화정책으로 낙후된 도심을 현대적인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그런 그의 정책은 유효했고, 적확했다.
처음에는 물론 반대했겠지? 지금의 명소인 에펠탑이 흉물이라고 여겼던 당시의 여론처럼 말이다.
그렇다.
공장과 비행기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퐁피두 센터의 외관은 배관 시설을 건물의 외부로 드러내며 기존 건축의 관념을 해체한다. 이런 획기적인 모습은 주변 파리의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대중들은 조롱하며 비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대 문화 예술의 상징이 되었고, 파리를 찾을 때 손에 꼽는 곳이 되었다. 이럴 땐 역시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떠오른다. 시간이 지나야 지혜로운 평가가 가능해진다는 철학자 헤겔의 말이다.
이곳은 단순 박물관이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리 패션위크의 패션쇼뿐만 아니라 미술관, 도서관, 산업 디자인 센터, 영화관, 아틀리에 등... 문화예술의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곳이다.
퐁피두 센터 앞 광장에 앉아 퍼포먼스와 공연을 하는 사람들,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 내가 예술의 도시 파리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단지 파리 여행에서 꼭 들러야 하는 코스로 남기는 게 아니라, 여유 있게 충분히 느끼며 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파리 패션위크 기간에는 패션쇼가 열리는 대표적인 장소이기도 하니, 그 기간에 맞춰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일정을 확인해 꼭 가볼 것을 추천한다. 패션쇼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찾아온 셀럽과 패션 피플들을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좀 꾸미고 간다면... 포토그래퍼의 플래시 세례도 기대해보자.)
파리에 가게되면 너도 가고 나도 가는 퐁피두 센터다. 단순히 유명해서가 아니라 남들과는 하나쯤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방문하게 된다면, 이 곳을 찾는 의미는 돌아와서도 생생할 것이다. 같이 간 동행 또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생 로랑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 던져주면 귀를 쫑긋 하는 이야기 소재가 되지 않을까.
생 로랑의 마지막 컬렉션 장소, 퐁피두 센터다.
퐁피두 센터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 Pompidou
Place Georges-Pompidou, 75004 Paris
Tel : 01 44 78 12 33 / Homepage : www.centrepompidou.fr
Open : 11:00 ~ 21:00 (목요일과 5월 1일 제외)
*파리 뮤지엄 패스를 이용하면 파리 의상 장식 박물관 외에 루프르, 오르세, 퐁피두 등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파리 패션위크 기간을 찾아보려면 www.modeaparis.com 에서 일정 체크가 가능하다.
지하철 : Rambuteau (11호선), Hôtel de Ville (1,11호선), Châtelet (1,4,7,11,14호선)
RER A,B,D 정거장 : Châtelet-les Halles
버스 : 29, 38, 47, 75
*생 로랑의 패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이브 생 로랑 박물관이 리노베이션 중이다. 그가 디자인한 의상, 액세서리, 스케치 및 비디오가 전시될 예정이다.
2017년 가을에 오픈한다고 하니 기간에 맞는다면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참조 : Renovation works: A museum dedicated to Yves Saint Laurent for 2017 공지
피에르 베르제 - 이브 생 로랑 재단 홈페이지 : www.fondation-pb-ysl.net
옷 읽는 남자,
파리 패션쇼장을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