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디버깅 가이드 - 떼를 써 보자

왜 내 마음을 몰라주니..

by 잉혀니즘

세상에 AI가 아닌 건 없는 것 같다.

이제는 부모님 집에도 AI 하나 놓아드려야 하나 고민이 든다.

효도도 AI로 대체할 수 있을까?


내가 일하는 분야도 마찬가지다. AI가 다 해준다고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1. 자연어 코딩으로 개발 리소스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다.

2. 사용자가 자연어 질의를 통해 프로그램 없이도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일단 내가 먹고사는 분야니까 차분히 탐구해 본다.


먼저 자연어 코딩이다.

개발 로직은 세부 기술을 보지 않더라도 대충 이해된다.

뭐 어차피 개발하는 과정은 감정이 아닌 논리의 노동이니까 어떻게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궁금한 점은 원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 디버깅을 어떻게 할 것인가다.

(디버깅 : 프로그램 소스 단계별로 실제 데이터를 흘려보며 프로그램의 오류를 찾는 과정)


내가 생각하는 디버깅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비교해 본다 → 프로그램 하나를 만드려다 두 개를 만드는 마법, 디지털 쓰레기 생성으로 지구 파괴에 동참하는 건 덤.

2. 응원을 해본다 → 자기가 잘하고 있는 줄 안다.

3. 뭐라고 혼내본다 → 사기가 저하되고 의욕을 상실할 수 있다.

4.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고 떼를 써본다 → 현실에서 가장 효과가 좋다.


솔직히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요구되는 논리가 간단하고 명확할 때는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얼마나 있을까? 그걸 굳이 AI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냥 최신 자동화 툴이 아닐까?

어쩌면 웃음을 잃어버린 개발자들에게 웃음을 찾게 해 주고 싶었던 누군가의 마음을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쯤 하고, 사용자의 자연어 질의에 대해서도 탐구해 본다.

얼마 전 모 AI 제품의 티저 영상을 봤다. 그 영상에서 사용자가 이렇게 묻는다.

"초특급 슈퍼 울트라 캡짱 AI비서야, 나 오늘 출근해서 뭐 해야 해?"


이 대화를 통해 사용자의 특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1. 기억력 → 좋지 않음

2. 계획성 → 없음

3. 감수성 → 있는 것 같음

4. 성장 가능성 →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맡기겠다.

5. 회사에 있어야 할 이유 → 삭막한 비즈니스 세상에도 따뜻한 웃음은 필요하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어떠한 사람도 일을 잘하게 할 수 있다는 듯 들린다.

모든 회사는 반성해야 한다. 굳이 비용과 사람을 투입해 채용 프로세스 과정을 거칠 이유가 없다.


티저 영상은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다.

회사가 몇 년간 쏟아부은 시간, 돈, 철학을 응축시킨 혼을 갈아 넣는 '비즈니스 아트'다.

저 티저에는 무엇이 있는가? 검증하기 어려운 시스템과 멍청한 사람이 있다.


자연어 코딩과 멍청한 사람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이 지배하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저들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으로 공문서가 작성되고, 이메일이 오고 가며, 계약서가 작성되는 시대...

정신이 아득해져 온다.... 그것은 마치 [성냥팔이 소녀의 리얼] 같은 느낌이다.

도대체 왜 저런 티저를 만들었을까? 한번 유추해 본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은 AI가 있으면 편리하게 잘 사용할 수 있다.

없을 경우 노동 시간은 늘어나겠지만, 필수는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의심이 많다. 자신이 하는 일의 퀄리티를 불확실성에 맡기는 것을 싫어한다.


회사에서 시간 때우는 사람들은 어떨까?

노동의 시간과 노력의 수고를 줄일 수 있다면 뭐든 환영이다.

퀄리티? 잘리지 않을 정도면 된다.


둘 중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AI를 더 원하겠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진심이다.)


저런 티저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지금 AI라고 주장하는 제품을 만든 회사들이 고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고객보다 AI가 더 똑똑하고 성실하다는 착각은 도대체 어디서 생긴 걸까?


기술은 언제나 있었다. PDA도 있었고, 블랙베리도 있었다.

좀 뻔한 얘기긴 하지만, 아이폰이 세상을 바꾼 건 기술 때문이 아니다.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는 철학, 그리고 그 철학이 반영된 UX 때문이었다.

(같은 ENTJ 잡스형... 존경합니다...)


나는 신기술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한다.

덕분에 나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 취미로 글 쓰는 것도 시작할 수 있었다.

블루투스 이어폰도 쓰고, 태블릿도 쓴다.

이들의 공통점은,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효용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모든 AI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신뢰할 만한 검증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는 제품이 얼마나 될까?

디버깅과 검증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성실함', '끈기', 고객에게 최고의 제품을 제공하겠다는 '마음'이다.


현재까지 내가 AI라고 부르거나 유사한 수준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ChatGPT밖에 없다.

하지만 이 친구는 피라미드 같은 친구다.

즉, 현재 인류가 단일 프로젝트에 투입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비용, 인재, 역량을 쏟아부은 그런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비슷하게 생긴 도형을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크기로 만들어 놓고 "나도 피라미드다!!!"라고 우기는 수준이다.


ChatGPT와 AI 코스프레 프로그램들의 차이는.

샘 알트먼이라는 인간을 사랑하는 기술자의 철학과, 상상하기도 힘든 수준의 노력과 디테일을, 현생 인류 중 가장 똑똑한 인간들이 우리보다 성실히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퀄리티와 리소스를 투입할 수 있는 회사? 지구를 통틀어 한 손으로 세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 ChatGPT 역시 패턴 학습 프로그램이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답의 퀄리티와 확률이 개선될 수 있어도, 우리가 상상하는 '인공지능'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이 녀석은, 너무나 뛰어나서 이미 거의 정점에 닿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본질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의미 있는 혁신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광풍은 ChatGPT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짜인 ChatGPT도 이 정도인데, 유료에 이름도 더 그럴싸한 다른 AI들은 도대체 어떤 수준일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우리의 작고 소중한 통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여기까지 하고, 다른 후보들이 생겨나면 다시 탐구해 보도록 하겠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예전에 핵인싸였던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메타버스, 유비쿼터스야, 밥은 먹고 다니니?




keyword